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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완벽히 후련한 이별은 존재할까.

이별은 때로는 후련함을 주지만 또 다른 긴장의 순간을 만든다.

by SOJEONG

그렇게 야심 차게 준비했던 사업은 결국 종료되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사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이전, 우리는 정부과제사업을 준비했다. 거기서 수익으로 남는 자금을 가지고 그 이후의 사업을 추진하려 했었다.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정부과제를 준비하는 동안 수 없이 많은 협력기관을 만났고 함께 사업을 추진할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제안서의 방향을 확정하고 나서, 메인 파트너를 선정하는 절차뿐만 아니라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했다. 제안 마감일을 2주를 앞두고서야 대학교 한 군데와 함께 하기로 합의를 했다. 많이 늦어져서 걱정하던 차에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과거와 달리 과제 수행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된 채로 공고가 나온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심지어 인건비 예산을 줄여봐도 도무지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였다.


교육 사업을 한다는 것이 이럴 때 참 힘들다. 공공재 성격을 가진 교육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사업으로써 수행한다는 것이 때로는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수익이 나야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즈니스의 원리에 따라, 그리고 교육이란 것이 한 인간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정부과제 사업이라는 것이 안정된 매출을 가져다주는 장점도 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수익성을 생각할 때 많은 부분에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어쨌든, 제안서 초안을 마무리하고, 사업 수행 예산안과 예상 수익을 보고했다. 대표의 얼굴은 굳어졌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센터장님은 저랑 점심식사 같이 하시죠"


솔직한 심정으로 그냥 다 내던지고 싶었다. 파트너 선정을 최소 한 달 전에는 구성해 놓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 역시 A고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머릿속에 든 생각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막판에 가서야 부랴부랴 서두르는 모습에 실망만 더해졌을 뿐이다. 30년 넘게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PM 경험도 어마어마하게 많다며 자랑하던 모습 뒤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점심식사 후 A고문은 나를 따로 불렀다. "이번 사업 접기로 했다. 이후로는 대표가 따로 이야기할 거야"


순간 직감했다. 어느 기업이든 임원이라는 자리는 철밥통 소리를 듣기는 힘들다. 나 역시 과거에 인사업무를 하면서 나보다 대 선배였던 임원분들께 죄송하다 머리를 숙이고 내일부터는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했었으니 그 감은 어딜가지 않는다.


사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마친 상태였다. 앞으로의 생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 두려움은 일단 뒤로했다. 여기 더 있다간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을 더 보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대표는 내게 그만 회사와의 관계를 종료하자 이야기했다. 그래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센터 구성을 그렇게 한 자기 책임도 있으니 3개월의 여유를 주겠다 했다. 먼저 이야기할까 했는데 스스로 화두를 꺼내 주니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센터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다 했는데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를 역설하며 온갖 항변을 할까, 억울하다 호소할까... 등등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그냥 담담한 척, 쿨한 척 받아들였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따지고 보면 회사의 입장에서 입바른 소리, 자기 소신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라고 하지만 대표도 사람이기에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표현은 거칠었지만 소신 있게 생각을 이야기했다 생각하고, 후회는 없었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측면도 있다. 또한 리더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리더십이란 무엇일까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배우고 일깨워주는 경험을 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어쨌든, 나는 3개월 동안 지낼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혼자 지내기 시작했다. 일단 2주 동안은 무조건 쉬자였다. 앞으로 계획을 세우고 이러쿵저러쿵 미래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당시의 나에겐 다 사치였고 불필요한 존재들이었다. 몇 달 동안 그 고생을 하고 밤잠 설쳐가며 고민하던 순간들을 뒤로하니 세상 편해질 수가 없다. 노트북을 켜고 하루 종일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까지 그동안 보고 싶던 드라마, 영화들을 섭렵했다. 집에 있으면 아이들 눈치도 보이고 할 텐데 혼자 있는 공간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그 순간들을 즐겼다. 한마디로 속이 후련했다. 아름다운 이별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후련함은 순간일지라도 안식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할 차례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장장 2주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으니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가 왔다.


몇 년 전 지인과 공동창업을 하면서 어이없이 지게 된 빚이 아직 남아있는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사실도 말하는 것이 미안하거니와 커가는 아이들의 양육비, 교육비 등등... 닥쳐올 금전적인 부담들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마련되어야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였다.


후련함 덕택에 입은 웃고 있지만, 왠지 눈에서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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