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가족은 짊어져야 할 짐 보다는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주는 존재가 아닐까

by SOJEONG

어차피 회사는 내가 매일 출근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어졌다.


회사의 그룹웨어, 슬랙 메신저를 PC와 휴대폰에서 삭제했다. 이러쿵저러쿵 공지사항이나 나를 참조로 해서 전송되는 이메일은 더 이상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 사전에 몇몇 직원들에게는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따로 전화를 주거나 카톡을 통해 알려달라고 이야기해 두었다.


이 현실을 어떤 순간에 어떤 말로 전해야 할까.


아이들이 유아시절이었다면 모를까 각종 학원 교육비가 더 많이 투입돼야 하고, 관리비 등 생활비는 지속적으로 투입이 돼야 하는 시기에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살이를 언제 회복될지도 모른 체 함께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가장 많이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로는 설명될 수 없다. 더욱이 몇 년 전 지인과 창업하고 나서 겪었던 그 혼돈의 시기를 또 지나야 할 수 있기에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를 D-day로 삼았다. 그동안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어떤 계획이 있는지를 설명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전날 저녁.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빠는 내일 휴가입니다. 아빠에게 휴식을 좀 줄 거예요"라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전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고, 아내는 강의 준비를 했다.


점심시간이 오며 아내는 오랜만에 백화점에서 점심식사 데이트를 하자며 재촉한다.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오랜만에 가지는 둘 만의 시간이라 아내도 짐짓 기대가 되었다 보다. 손을 꼭 잡고, 팔짱을 끼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에 앉아 차를 나누며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나 회사를 그만둬야겠어. 내가 너무 힘이 드네... 그만두어서는 안 될 시기인 건 알지만 다 뒤로하고 내 정신상태가 회복이 되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전에 상의하지 못하고 혼자 결정해서 미안해. 그 밖에 모든 게 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놀라웠다.


"그렇게 해. 그동안 밤잠 못 자고 힘들어한 거 알아. 자면서도 계속 뒤척이고 끙끙대고... 그거 보면서 나도 불편했어. 이참에 좀 쉬어.... 알아서 잘 해보슈^^"


걱정부터 쏟아낼 거라 생각했던 아내의 반응은 밝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마냥 그렇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긴장하고 걱정되는 것이 왜 없을까. 가뜩이나 생활비도 넉넉하지 않은데... 그러나 그보다 우선인 건 나를 위로하고 안정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하나의 큰 산을 넘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웠다. 아니 감사했다. 고마움과 감사함의 차이는 의미는 같지만 감사함이라는 말은 존중과 존경의 의미가 더 깊다.


그날 저녁,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더 멀리 뛰기 위해 한번 움츠러드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야기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때로는 손에서 놓아주고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했다. 아이들은 나를 응원했다. "아빠가 잔뜩 힘든 얼굴로 집에 들어오는 것보다, 내가 학교 다녀올 때 아빠가 집에 있는 것도 되게 좋을 것 같아"라며 위로의 말도 전해준다. (위로 일지, 같이 놀고 싶은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침대에 누워 '존재'라는 것을 떠올렸다.


인간은 서로에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24시간 내내 함께 있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존재. 더욱이 생면부지로 30년을 넘게 살다 사랑 하나만 가지고 평생을 함께 하자며 가족을 이룬 아내. 그리고 본인의 동의 없이 세상에 나온 두 아이들의 존재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결혼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 그리고 세상에 막 태어나 울어재끼는 아이를 볼 때 가졌던 마음가짐은 기쁨이자 무한한 책임이다. 누가 가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스스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이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절대 후회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함께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며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가족과의 행복이라는 체계가 완성된다. 그러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성해야 할 목표가 생긴다.


오랜만에 기도를 드렸다.


감사하다고, 이렇게 사랑스럽고 함께 하고픈 가족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행복이 깨지지 않도록 새로운 길을 보여주시고 함께 곁을 지켜달라고 빌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편안한 잠자리였다.


fde55cbb-36dc-4a36-9bb9-f29a25abaaf8.jpg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곳. 초록색 잔디와 호수가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커다란 나무 한그루는 나의 마음을 대변하며 꿋꿋하게 서 있는 곳이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 완벽히 후련한 이별은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