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만 가중시키지는 말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A라는 한 CEO가 있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재직했고, 그곳을 나와 한두 번 이직을 통해 창업을 했다. 애초에 하고자 했던 사업 아이템이 있었지만 우연히 정부사업을 수행하면서 직원 1명을 채용했는데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계속해서 정부사업 수행에만 몰두하다 보니 하고자 했던 아이템 사업은 다소 요원해졌다.
어쨌든 회사는 계속해서 승승장구했다. 몇 년 전부터는 회사의 외형 매출도 매년 두 배씩 상승했다. 모두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며 부러워했다. 직원의 규모도 이제는 40명 규모에 매출도 100억 원에 육박한다.
이 A를 만나면 그는 언제나 그 사업 아이템을 아직까지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그 사업 아이템이란 정부수주사업이 아닌 직접적으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B2C 서비스 사업이다. 나는 그에게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나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또한, 정부수주 사업의 성격과 B2C사업은 결이 달라 일하는 방식과 전략, 조직구조와 인력 구성에 꽤 많은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A의 답변은 항상 비슷하다.
회사 통장에 잔고는 있으니 투자도 좀 하면서 가려고요.
그런데 직원들 역량이 부족해서 걱정이에요.
A대표는 작년 1월에 조직을 개편하고 서비스 사업의 의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한다. 그리고 해당 팀은 곧장 사업계획에 착수했고 사업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 예산과 인적 구성 전략등을 담은 내용을 보고 했다. 그렇게 사업이 잘 출발하나 싶었다.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그 팀을 맡았던 B임원과 우연히 마주할 일이 있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었다. 놀랍게도 그는 A로부터 권고사직을 요구받고 직장을 구하는 중이었다.
하도 많이 결정이 바뀌어서 도무지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어요
약간 우려스럽게 바라봤던 A에 대한 생각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전 계획을 마치고 개발 업체 선정이 되고 나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시스템 자체는 복잡할 것이 별로 없다. 해당 시스템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분야여서 업체 소개도 도와주고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A는 해당 임원 B를 불러 업체를 변경하라며 지시를 내렸다. "내가 알아보니 다른 업체가 더 좋다네요. 거기로 바꿉시다" 이미 다른 업체와 계약을 했는데 바꾸라니 난감할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해지가 마무리되었다. 새로운 업체와 계약을 진행하고 시스템 구축을 거의 마쳤을 즈음 A대표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는지 살펴봤다. 그런데 A대표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즉시 B임원을 불러 질타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결정이 바뀐다.
이거 그냥, 임대로 갑시다. 지금까지 했던 거 걷어내고 상용 서비스로 제공하는 임대로 갑시다. 그리고 시스템 유지/운영시키려던 인력은 정리합시다.
3개월 간의 노력과 수고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B는 황당했지만 항변할 수는 없었다 했다. 이미 보고를 다 했고 다 오케이 승인을 받고 진행했음에도 이렇게 결정을 일순간에 바꿔버리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A대표가 이유를 설명하기는 했지만 돈은 돈대로 날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내쳐버리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무엇보다 구성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또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다다랐을 때, 처음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시스템 문제로 3개월을 보낸 이후 또다시 시스템과 인적구성 문제로 수시로 의사결정이 바뀌었단다. 그리고 A대표는 B임원을 불러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 회사랑 작별합시다. 그동안 믿고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네요.
물론 내가 결정을 몇 번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 사업은 보다 더 전문가를 찾아서 맡길 생각입니다.
B는 그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단순하다.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A대표는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도 아니다. 그저 관리되지 않고 있는 서비스 사업 홈페이지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일관성과 신뢰'에 대한 부분이다.
A대표가 가장 큰 실수를 한건 분명 여러 차례의 의사결정 번복이다. 의사결정은 번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전혀 일관성이 없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의사결정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 당사자는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안되면 빨리 바꾸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빨리 바꾼다는 것은 목표가 분명하고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분명할 때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유효하다. 애자일이 유행한다지만 그것도 이루고자 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의사결정이라는 건 그 일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실무진에서 결정을 하고 추진을 하더라도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CEO의 결정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의사결정을 자주 번복한 건 사업 아이템에만 관심이 있을 뿐, 본인 스스로 그려놓은 청사진이 없었던 거 아닐까 싶다. 그저 뭉뚱그려 이런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거다. 애초의 사업계획에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지침을 준 바도 없었다. 그러니 "한 번 해보세요"라며 반신반의하며 지켜본 거다. 어디로 어떻게 갈지에 대한 그림이 없다 보니 여기서 이 말 듣고, 저기서 저말 듣고 와서 그때그때 생각에 따라 움직이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관성 없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또, 위에서 말한 것처럼 늘 직원들의 역량이 부족하다 한탄했던 것도 쉽사리 납득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게 느껴진다. 아울러 그들의 역량을 키울 기회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가장 큰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음에 있다.
일관성이 무너지면 덩달아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한다.
어차피 또 바뀔 텐데 뭐 하러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 구성원이 있을까 말이다. 단지 '나 일 하고 있어요~'라며 최소한의 보고만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이번주에는 시스템 변경 계획안 수립, 다음 주에는 시스템 변경 계획안 검토, 또 그다음 주에는 시스템 변경 계획안 내부 의견 수렴 중.. 등등 텍스트만 바뀔 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리더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그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팀을 구성하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모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 노력한다. 당연히 의사결정이 번복될 수 있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바꿀 수밖에 없다고도 항변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채로 변경되는 상황인 거다. 그저 눈에만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절대 중요할리 없다. 눈 속임일 뿐이다. 그래서 리더의 방향제시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의사결정할 때 어떤 것을 고민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리더는 그 일을 시작할 때의 생각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방향을 생각하면서 '왜 이것을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떠올리다 보면 어느 정도는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늘도 수많은 리더들이 의사결정을 한다. 의사결정 하나에 돈과 시간과 인재들의 모습이 달라진다. 인재들의 역량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과연 그들에게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는지, 가려는 최종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제대로 전달했는지부터 살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