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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Dec 06. 2023

리더가 공정함을 잃을 때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100여 명의 직원으로 제조업을 하고 있는 CEO A가 있다.


A는 지방의 작은 전문대를 나와 악착같이 일을 했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모습을 이루어냈다. 그를 붙잡아 준 것은 종교(교회)의 힘이었다. 개인적으로 식사를 할 때면 그는 늘 직원들을 아끼고 모두가 세상의 리더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하게 이야기했다. 


기독교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회사 내엔 신우회가 조직되어 A의 주도아래 매월 모임을 진행할 만큼 애착이 강하다.


그 회사에는 여러 개의 팀이 나뉘어 있는데 그중에는 온라인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B팀장과 C팀원이 있었다. 그들 모두 A대표에게는 소중한 직원이었고 특히나 B팀장은 A대표가 가장 이뻐하는 직원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회사에서 HR 임원을 맡으며 그 팀에서 올라오는 결재건은 전폭 지원을 했더랬다. 


그런데 문제는 C였다. C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재치도 있었고 마케팅 업무도 잘 수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기가 있었던 건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소식이 전파되는 중심이었고 회사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HR을 맡고 있는 나나 B팀장의 눈에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 달 출근일이 20일 정도인데 그중 절반 이상은 지각이었고, 사무실에서는 1~2시간 정도는 꾸벅꾸벅 졸기 일수다. 심지어 내일이 회사 사업성과를 리뷰하고 다음 사업계획을 공유하는 중요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나타난 적도 있다. 알고 보니 그 전날 회사에는 아프다고 휴가를 내고 속초 여행을 갔다가 늦잠 자는 바람에 지각을 했었다.  본인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B팀장이나 HR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저렇게 하지는 않을 텐데 라는 아쉬움과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C가 어느 날 나에게 조용히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사직을 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 이유를 물었다. "저랑 회사는 안 맞는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했다. 30분 정도 면담을 하면서 내가 느낀 건 본인이 편하게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B를 불러 이 일을 논의했다. 역시나 B는 C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고 사직을 하겠다면 당연히 팀장인 자기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C는 결재시스템을 통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다.


B와 나는 사직서 승인 결재를 했고 A대표에게 결재가 올라갔다. 안 그래도 보고하러 올라가려던 차에 A대표는 나를 호출했다. 무슨 문제가 있었냐며 나에게 물었다. 난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고 승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A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번 만나 볼게


사직서 승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C는 회사에 남게 됐다. A대표가 직접 나에게 던진 말이다.


C와 C의 어머니는 나랑 같은 교회에 다녀.....


5분여간의 말이 이어지며 A대표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됐다. 하지만 난 A대표를 믿었다. 내가 보지 못한 C의 의 장점을 끌어내고 C의 행동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B를 설득했다. 


한동안은 C의 모습이 무척 달라졌다. 지각도 없었고 졸지도 않았다. 성실하게 일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이후 3번의 사직서가 올라왔다. 그때마다 A대표는 C를 눌러 앉혔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사직서 사건에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C는 내가 다시 한번 만나서 이야기할게. 그리고 B는 권고사직 처리 해


팀원 관리 잘하지 못한 책임이고 그 팀 모두가 B를 싫어한다는 이유였다. 일주일 동안 A대표를 설득했다. 이럴 거면 B나 C 둘 중 하나를 다른 팀으로 보내던지 해야지 내보내는 게 말이 되냐며 설득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대표이사인 A의 의사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HR 일을 하며 수많은 순간들을 만났지만 이런 벽을 느낀 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C는 자기 팀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늘 B와 마찰을 일으켰고 A대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C가 아직 팀장을 맡을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수락하지는 않았다. 결국 B는 회사를 나갔다. 나가기 며칠 전 B와 술자리를 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다음날 A대표에게 말해 위로금을 3개월에서 5개월치로 늘려달라 부탁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동안의 수고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는 없었다.


물론 B와 C, A사이에서 조율을 잘 못했던 나의 책임도 분명 있다. 나름 관심 가지고 몇 차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불편함은 없는지를 묻긴 했지만 더 구체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갔어야 했는데 부족했다.


B가 나가고 나서 회사 내에는 이야기가 돌았다. 

대표님이랑 같은 교회 다니면 무슨 짓을 해도 잘리지는 않는구나..
나도 교회 옮겨 볼까 봐

뿐만 아니라 잡플래닛에는 같은 뉘앙스의 회사 리뷰들이 올라왔다. "교회 다니면 잘리지 않음", "대표랑 같은 교회 다니면 팀장도 내보낼 수 있음" 등등이었다. 


나도 얼마 후 회사를 나오면서 지금 B와 C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B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여전히 크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A대표는 다른 임원에게 B에게 너무 미안하며 나에게도 이해하지 못할 의사결정 탓에 힘들게 했다며 속상하다고 했다 한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담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다.


팀장, 임원, 대표는 의사결정을 하는 역할이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혀있고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회라지만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더 우선인가는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가슴은 뜨겁게 하되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회사의 방향성과 주변환경을 고려해 최종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편향된 모습이 지나치게 비쳐서는 안 된다. 직원들이 불만을 이야기할 때 바라는 것은 결국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불편하게 일해도 좋은데 나만 피해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고,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는 대안을 제시하고 합의하고 그러면서 회사는 성장한다. 그리고 합의한 것을 지키는 모습 속에 상호 간의 신뢰도 쌓인다.


사람이기에 100% 공정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납득이 갈 만한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들이 가득해지고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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