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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참고래 Jul 14. 2021

지난주에 산 구두가 필요 없어질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면접이 연기됐다.

시험이 끝난 직후 고향에서 일주일 동안 있었다. 일주일 내내 자소서를 쓰느라 맘 편히 쉬지 못했다. 나에게 광탈의 설움을 안겨 준 학생부 종합 전형 이후로 처음 쓰는 자기소개서는 나에게 정말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다들 몇 년 동안 시험공부만 하느라 쓸 것이 없는 건 피차일반일 텐데. 뭐,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 어딜 가나 군계일학과 같은 사람들은 있으니까.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시험을 함께 준비한 친구와 정장을 샀다. 나는 머리통이 워낙 커서 어울리는 정장이 거의 없었다. 한 메이커의 옷이 그나마 어울려서 다행히 정장과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장에는 구두를 신어야 하니, 구두도 하나 장만했다.


부모님은 뭘 그렇게 급하게 준비하냐며 의아해하셨지만, 회사 한 곳의 면접 일정이 상당히 빨라서 빨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이건 옳은 판단이었고, 나는 제주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면접이 연기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서울시는 지금 비상사태다. 확진자수는 매일같이 올라가고, 오후 6시 이후에는 2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는 특단의 조치까지 내려졌다. 당연한 수순으로 회사에서는 대면 면접의 위험성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면 면접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줌이나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비대면 면접을 진행하는 것을 고려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러면 하반신은 전혀 보이지 않으니, 구두는 필요 없어지겠지.


흠, 정말 모든 회사에서 비대면 면접을 추진하게 된다면 저 구두는 평생 신을 일 없이 구석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언젠가는 신게 되려나?




헬스장에서 무지성으로 쇠질을 하고 있던 나는 면접이 연기되었다는 연락을 받고는 크게 허탈해졌다. 


면접 연습을 하다가 옆 방의 항의도 받고(옆 방에서 전등 스위치로 화려한 난타 공연을 들려주더라), 집에서는 할 수 없겠다 싶어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면접 연습도 했는데.. 무얼 위한 연습이었는가..


.. 그래서 곧바로 면접 때문에 미루고 있던 보컬 학원에 등록했다. 오늘은 기본적인 이론과 복식호흡 훈련을 배웠다. 복식호흡을 열심히 해 오면 진도를 빠르게 나갈 수 있다고 하시니 열심히 해 봐야겠다.


그리고 턴 챗(영어 회화 스터디 어플)도 가입했다. 듣자 하니 어떤 법인의 설명회에서는 영어를 엄청 잘하는 게 아니면(토익 만점 수준) 자소서에 어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워낙 쓸게 없어서 그나마 있는 스펙인 영어랑 일본어 점수를 엄청 어필했는데.. 내 손가락이 재앙을 불러오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지금이라도 매일 생각만 하고 있던 턴 챗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8시와 저녁 9시를 신청할 수 있길래 바로 아침 8시로 신청했다.


언제쯤 완전히 맘 놓고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면접이 다 끝난 후에야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올해 입사하고자 한 나의 선택이 정녕 옳았던 것인지 의심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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