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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참고래 Mar 27. 2021

나 자신을 온전히 통제하고 싶다

2차시험 D-92,이제는 속도를 내야 할 때

하루에 4시간만 공부하면 붙을 수 있다며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 4시간조차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도 않는데,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이러다 내가 그 0.9%의 사나이가 되는 게 아닐까?


오늘 친구와 술을 한잔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정한 계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법인에 입사하고 나서는 그 살인적인 스케줄을 과연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2년 전 내가 CPA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시간을 관리하려고 했다. 


8:00~9:40 세법 공부
9:40~9:41 화장실
9:41~12:30 세법 공부
12:30~12:59 점심식사


이런 식으로 노트에 공부한 시간을 직접 기록해 가면서 공부를 했다. 어머니의 생신이었던 3월 1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 한 달간은 공부를 하다 피곤해지면 잠에 드는 하루를 반복했다. 하루에 적어도 10시간 정도를 순수하게 공부에 몰입했던 것 같다. 이때처럼 하루하루가 보람찬 적이 없었다. 부모님도 이런 나를 보면서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셨다. 속으로는 뿌듯하셨겠지. 물론 이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곧 나는 웹소설의 세계에 빠졌고, 값진 1년이라는 시간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게으름의 대가로 안구건조증을 얻었다.


이 한 달의 기간은 내게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는 했다. 이게 착각인걸 깨닫기 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두 번째 1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번에는 보다 편리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공부시간을 측정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것이다. Focus Timer라는 애플리케이션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학교 커뮤니티에서 듣고 사용해 봤는데,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여러 부가 기능도 유용했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realnumworks.focustimer&hl=ko&gl=US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스마트폰을 뒤집어 두기만 하면 뒤집어진 순간부터 공부시간을 측정한다.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할 때에는 다시 휴대폰을 뒤집으면 된다. 굳이 귀찮게 어디에 적을 필요도 없고, 주 단위로 시간 합계를 표시해주거나 그래프로 보여주는 등 정말 편리한 애플리케이션이었다.


다만, 나는 원래 공부할 때에는 휴대폰을 저 멀리 치워 놓는데, 이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휴대폰을 가까이 둬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역시는 역시라고, 휴대폰이 눈에 보이니까 자연스럽게 휴대폰으로 손이 갔다. 딴짓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니 더 이상 이 방법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보다는 아날로그적인 방법이 좋겠다고 판단한 나는 쿠팡에서 스톱워치를 하나 구매했다.

나와 2차 시험장까지 함께한 소중한 녀석이다. 지금도 잘 쓰는 중이다.

시간 측정이 끝날 때마다 경쾌하게 버튼을 누르는 맛도 있고, 전체적인 공부 시간을 측정하면서도 별도로 단 기간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한 문제 풀 때마다 따로 시간을 잴 수 있어서 정말 편했다. 이 녀석을 구매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는 이 녀석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루 12시간이라는 순공부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일단 스마트폰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주요했다.


이 시기 나는 9시에서 10시 사이에 느릿느릿 일어나서,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한 후 30분 동안 소설을 본 뒤에 잠들었다. 12시에 점심을 가볍게 먹고, TV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면서 30분 정도 스쿼트를 비롯한 여러 운동들을 했다. 이런 규칙적인 일상은 내게 충족감과 더불어 자신감을 주었다. 물론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주말 동안 소설을 조금 읽었더니 그 뒤로는 이전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순공부시간은 이 날 이후 쭈욱 하락곡선을 그렸다. 하루 3~4시간까지 갔다가, 1차 시험 직전에는 하루 5시간에서 6시간을 겨우겨우 달성했다. 합격하고 나면 다를 줄 알았는데, 2차 시험 준비기간에도 다를 게 없었다. 열심히 놀다가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5시간에서 6시간을 내리 공부했다. 나는 이 공부방법을 죄책감 메타라고 불렀다. 근데 이게 은근 효과적이었는지 준비한 모든 과목에 합격했다. 시간이 부족한 걸 알다 보니 무조건 효율적인 방법만 찾았던 게 먹혔던 것 같다.




2년간을 내리 공부해오면서 느낀 점은 보상을 최대한 미루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내의 열매는 달다고, 열심히 공부한 후 가지는 30분의 휴식 시간은 긴 주말의 휴식보다도 달콤했다. 이 진하고 깊은 맛의 휴식은 다음날 공부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참는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남이 정해준 계획을 따르는 것보다 내가 정한 계획을 따르는 게 더 쉬울 텐데, 이것조차 못하면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나 싶기도 하다. 뭐 내가 10시간씩 공부하자는 것도 아니고, 넉넉히 5시간에서 6시간씩만 채우면 되는데 말이다.


생각이 들었으면 바로 실천해야지. 사실 당장 오늘부터 11시 반 취침을 하기로 계획했는데, 글만 후딱 쓰고 잔다는 게 벌써 1시간이 넘게 지났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구나. 아 모르겠다. 내일부터. 내일부터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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