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참고래 Mar 28. 2021

나다운 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D - 90 , 취미 탐색

게을러 빠졌다.

지인의 지인 중에 감사 한 과목을 남기고도 불합격한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친구가 전해 주었다. 사람은 어떤 시련을 겪었을까. 그냥 게을러서 떨어진 걸까? 나도 게으른데. 일이 아니게 될 지도.




웹소설은 끊었고, 유튜브도 줄였다. 대신 브런치 하는 시간이 생겼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운동 중 휴식시간에 브런치를 돌아다니다가, 나 다운 것이 중요하다는 글귀를 봤다. 어떤 분의 자기소개 문구 중 일부였는데, 그 말에 꽂혀서 나 다운 게 뭔지 고민해봤다. 그리고 모르겠다는 답이 나왔다. 나 다운 게 뭐지? 나는 뭐지? 나는 취미가 그 사람을 규정짓는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굳이 꼽자면 웹소설을 읽는 것 정도였는데 이제 놓아주기로 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영화도 안 좋아한다.
몸이 이러니 스포츠를 즐기기도 어렵다.
음악 감상에도 취향이 없다.
그림도 못 그린다.
술도 안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어려워한다.
먹는 것도 체중관리 때문에 특별한걸 잘 안 먹게 되었다.
자전거 타는 걸 조금 좋아하긴 하는데, 다리가 이래서 참.
한때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수중에 돈이 없고, 걷는 걸 두려워하니 여행도 딱히 즐기지 못했다.
게임도 하다 보면 시간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잘 안 하게 되었다.
피아노,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지만 특출하게 잘하는 것도 없다.


나를 더욱 심란하게 만드는 건 나열한 것의 대부분이 한때 내 취미였다는 거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게임이라도 열심히 하는데, 이대로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언제부터였을까. 적어도 대학교 2학년 때에는 마블사의 히어로 영화를 챙겨보기라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취미조차 자기 계발에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아니면 남에게 자랑할 수 있던가. 이것도 낮은 자존감이 원인인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뭔가 취미로 삼아 보려는 노력을 해오기는 했다.


저번 달까지만 해도 넷플릭스로 미드를 보곤 했다. 영어공부의 일환으로. 물론 얼마 가지 못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찾기가 힘들기도 했고, 점점 취미보다는 공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편하게 즐기지 못했다. 영어공부를 취미로 삼아보려고 했는데, 최근에 벽을 느낀 기분이라 그냥 놔버렸다.


최근 취미 후보였던 녀석이 하나 있었다. 기억력 스포츠다. 말뚝어도 만들고(*1부터 100까지 단어를 하나씩 정해두고 이미지화 해 두면, 나중에 기억하고 싶은 사물을 해당 이미지와 조합해서 100개의 사물을 순서대로 기억할 수 있다), 트럼프 카드 52장도 10분 만에 순서대로 외울 수 있게 되었고, 기억의 궁전도 몇 개 만들었다. 대회도 나가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흥미가 다 떨어졌다. 역시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기억의 궁전은 시험공부에 써먹고 있다.


한동안 오토바이가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조금 알아본 뒤에 바로 접었다. 아픈 건 싫으니까...


요즘은 브런치를 많이 보다 보니 글쓰기를 취미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글을 보다 보면, 다들 책도 많이 읽으시고 글도 잘 쓰셔서 자신감이 없어진다. 몇 년 동안 이상한 번역체의 CPA 참고서나 보던 나 나부랭이가 무슨 글쓰기야... 


요즘 들어 굳이 공부를 따로 더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드는데, 정작 뭔가 떠오르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같이 든다.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나란 놈은 뭐가 문제인 걸까. 취미도 없이 평생 이렇게 살기는 싫은데. 지금과 같이 무미건조한 삶이 이어질까 봐 두렵다.




책이나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 어머니와 도서관을 갔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빌리고 싶어서 책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이동했다. 그런데 그새 누가 대출해갔다. 궁금했던 다른 책들도 하나같이 대출 중이라 그냥 신간도서 코너에서 괜찮아 보이는 걸 집었다. 근데 어머니께서 그 책 그냥 그렇더라 라는 말을 하셔서 별로 기대가 안된다.


취미 말고 또 나다운 걸 구성하는 요소가 뭐가 있을까. 더 써보자니 이미 1시간이 넘게 흘렀다. 내일 고민해야지. 내일은 좀 덜 게으른 하루가 되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의 나는 조금 더 게으를 것 같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