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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참고래 Apr 02. 2021

안구건조증아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안구건조증이 나았다.

안경을 쓰고 산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력이 악화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하루는 안과에 시력검사를 하러 갔다.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자니 의사가 다가와 눈에 무언가를 넣었다. 의사는 내게 눈을 비비지 말라고 했고, 나는 눈을 비볐다. 그날부터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다음날 일어나니 눈이 너무 부셨다. 체육시간에는 눈이 너무 부셔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여자아이가 내 손을 잡고 이끌어줬던 게 기억이 난다.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그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잘 살고 있니?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도. 그래서 너무 억울하다. 이게 사실인데! 난 의료사고로 안경잡이가 되었단 말이야. 하도 주변에서 부정하다 보니 나도 이게 진짜 기억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매일 깜깜한 방에서 밤새 휴대폰 게임을 하기도 했고, 닌텐도를 하기도 했으니까. 내 잘못으로 눈이 나빠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게임도 많이 하면서 야외활동은 안 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안경렌즈의 두께는 내 뱃살과 비례해서 두꺼워져 갔다. 그래도 시력만 나빴지 다른 문제는 없었다. 휴대폰 밝기는 무조건 최상으로 했고, 블루스크린 필터 같은 건 존재조차 몰랐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 폰을 보고는 눈이 아프지 않냐고 물어봤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정말 멀쩡했다. 쉬는 시간마다 산책도 했고 기숙사에 갇혀있다 보니 평일에는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아서가 아녔을까. 아니면 그냥 어려서 회복력이 좋았거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던 건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1학년 때 십자인대를 다치고 나니 야외활동은 현저히 줄었고, 매일 집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원래는 노트에 손으로 필기를 했는데, 노트북으로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눈이 뻑뻑해지는 증상이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눈이 너무 아파서 수업을 못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수업은 싹 다 빠지고 쉬었다.


이때부터 컴퓨터를 오래 하면 눈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통제가 되는 수준이었다. 눈이 아파서 사회생활을 못하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으니까. 눈이 아프면 그냥 쉬고 안약을 좀 넣거나 친구랑 좀 놀고 나면 괜찮아지는 정도였다. 문제는 휴학 후 CPA를 준비하고부터였다.


인강이 워낙 많다 보니 하루 대여섯 시간씩 컴퓨터 화면을 보는 건 예삿일이었는데, 눈에 조금씩 부담이 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때는 종이책으로 공부하는 시간도 있었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했고 낮잠도 가끔 자 줘서인지 그래도 견딜 만했다. 그러다가 친구가 달빛조각사라는 소설을 추천해줬다. 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한 달을 공부, 운동, 잠으로만 채우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가 웹소설이라는 신문물을 접하니 뇌와 몸이 고장나버린 것 같았다. 나는 몇 달을 밤을 새 가며 소설을 읽었고, 공부를 등한시했다. 불이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을 눈에 갖다 대고 밤을 새우는 나날이 계속됐다. 첫 CPA 시험을 응시하러 간 시험장에서 꿀잠을 자고 나오기 전까지.


이때부터 눈이 아파서 사회생활을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너무 부셨고, 아팠고, 안면에 마비증세도 나타났다. 입꼬리가 바닥에 처박혀서 올라오지를 않았다. 문제를 느껴서 낮잠도 많이 자고 소설도 끊었지만, 스마트폰은 조금만 봐도 눈이 너무 아팠다. 공부할 때는 스마트폰을 못 보는 게 도움이 되었지만, 복학 후에는 아무래도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못 보는 건 큰 문제였다. 당연히 종종 스마트폰을 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안구건조증에 시달렸다. 인강을 볼 때 이외에는 컴퓨터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매일 기회가 될 때마다 수건을 데워서 눈 위에 올려 찜질을 했다. 아 그래도 소설은 못 끊어서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것 같다..


한 학기가 끝났고, 나는 다시 CPA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컴퓨터를 보지 않고 책으로만 공부를 하고 낮잠을 충분히 자면 눈이 잠시 좋아졌는데, 스마트폰을 조금이라도 보면 바로 말짱 도루묵이었다. 도저히 좋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과를 자주 찾아갔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의사도 의아해했다. 혹시 눈을 혹사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시험공부를 하는 중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혹시나 싶어 신경과에도 찾아갔지만, 틱이 아니냐는 소리만 듣고 나왔다.


항상 눈이 아프고 표정관리가 안 되니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만나야 하는데,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이렇게 고통받으면서도 소설을 끊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열심히 관리해서 조금 좋아지면 소설 때문에 다시 나빠지고의 악순환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CPA 2차 시험까지 견뎌냈다. 2차 시험날에는 친구의 안경을 잘못 쓰고 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도수가 안 맞는 안경을 쓰니 눈이 더 아파서 진짜 너무 난감했다. 시험이 끝난 후 친구 집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코로나 시국이라 외출을 하기도 힘드니 매번 집에 박혀서 유튜브를 봤다. 


집에 돌아오니 눈 상태가 더 안 좋아져 있었다. 

불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유튜브와 동거 동락한 시간의 대가였다. 아무리 컴퓨터를 안 보고 스마트폰을 안 봐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안면마비증세가 계속 지속되었고 컴퓨터를 조금만 해도 눈이 아팠다.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울산에서 가장 큰 안과병원을 다녔지만 증세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이러다가 평생 못 고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차 저차 해서 소개팅을 나가게 됐다(?) 




눈도 덜 나았는데 솔직히 상도덕이 아니긴 했으나, 어쨌든 이를 계기로 이것저것 준비해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방에만 박혀있다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눈이 이전보다는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야외생활을 안 한 게 문제였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산책을 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걸으면서 최대한 먼 곳만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안구건조증 증세가 점점 호전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하루는 렌즈를 낄 일이 있어서 원데이 렌즈를 착용했다.


급하게 마련하느라 난시교정이 없는 렌즈를 착용했다. 원래 교정이 없는 렌즈를 끼면 뚜렷하게 보이지 않거나 사물이 겹쳐 보였다. 그런데 그런 증상이 마지막으로 원데이 렌즈를 착용했던 2년 전보다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진짜 난시가 개선된 건지는 많이 의문이 들지만..). 눈이 아팠던 게 난시 때문이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난시에 대해 찾아보니 내가 겪은 증상들과 많이 흡사했다.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하기 시작한 지 4년 만에 원인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컴퓨터를 오래 쳐다보고 있어도 안구건조증 증세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매일 아침 꾸준히 산책을 나가서 눈을 풀어주는 덕이다. 이걸로 몇 년을 고생했는데, 한 달 만에 나아버린 게 허탈하기도 하다. 교회에 나갈 때마다 눈 좀 고쳐달라고 빌기도 했는데, 기도 덕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 같다. 뭐, 여하튼 가장 큰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니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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