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남자의 관처럼 보였다.

흰사월_관 속의 피아니스트

by 고필찬

(내가 알기로) 2024년 12월 신간 중 최다 판매고를 기록한 소설. 큰 일을 겪고 한 풀 제대로 꺾인 웹소설 시장에서 당당히 4.9 평점에 천 단위의 리뷰를 보유한 소설의 아성이 궁금하여 읽어봤다.



줄거리


한국대학교 피아노과에 재학 중인 주인수 이은건은 지도 교수의 도움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주인공 한유안의 페이지 터너로 일하게 된다.



피아노는 남자의 관처럼 보였다.



1등, 최고, 월드 클래스, 망명 높은 예술가 집안의 후계자. 여느 천재들이 그렇듯 유안 역시 무심하고 사납고 예민한 걸로 모자라 낯선 은건에게 강한 경계심을 표출한다.


어색함이 쌓여가던 어느 날, 유안은 은건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날 이후, 유안은 은건의 연습을 은근히 봐주며 둘의 사이가 (아주) 조금씩 가까워진다.



“난 피아노 안 좋아해. 증오하는 것에 가깝지.”
“좀 증오하면 어때요.”
“……뭐?”
“세 살 때부터 피아노만 쳤으면 좀 증오해도 돼요. 그때부터 내내 좋기만 했으면 오히려 미친놈 아닌가.”




단 한순간도 피아노를 즐기지 못했던 유안과 달리, 피아노를 향한 은건의 마음은 가뿐하다. 이게 아니면 다른 걸 하면 된다, 는 은건의 마음 가짐은 유안에게 오랜 시간 억눌러온 자유를 대리 경험하게 한다.




“내가 모든 걸 망치고 내려와도, 너는 괜찮다고 해 줘.”



실은 피아노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누구보다 피아노를 사랑하지 않았냐는.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외로웠던 천재 한유안은 평생 감내한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본 은건에게 점점 끌린다.





감상


치명적인 결핍과 대체 불가한 능력.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은 대체로 이 두 가지만 갖추면 ‘먹힌다’. 한편 상대 역은 주인공의 결핍을 채워주고, 능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맡으며 이야기에 필연적인 긴장과 균형을 더한다.


<관 속의 피아니스트> 유안은 은건의 이해와 격려 속에서 부담을 극복할 힘을 얻고, 은건은 유안의 지원으로 유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외로운 천재 피아니스트' 한유안과 '즐기는 천재 고학생' 이은건이야 말로 위에 언급한 교과서적인 가장 완벽한 상성을 보여준 예시가 아니었을까.


연말은 유독 지치기 쉬운 시기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한 해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탓인지 모를 일이다. 그런 때일수록 우리에겐 '온기'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이 사회에 닥친 정치적 위기로 연대와 공감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히 요구되었다. 그런 시점에 <관 속의 피아니스트>는 "희망은 힘이 세다"라는 가치를 증명한 소설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내가 온갖 자극적인 서사들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기도 하다.


머지않아 나도 세상에 이런 온기가 가득한 이야기를 써 내고 싶다. 그런 온기와 희망을 담아,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