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은_ 오키나와 바캉스
좋아하는 글일수록 말을 아끼고 싶은 법. <오키나와 바캉스>는 말을 보태는 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내게 완벽한 소설이었다.
줄거리
주인공 한영권은 제대 후, 중국집 금동원의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영권 앞에 좌로 보나 우로 보나 깡패 같은 남자, 주인수 백청기가 나타난다. 자신을 '매니저'라고 소개한 남자는 영권에게 기상천외한 일자리를 제안한다. 바로, 자신의 '선생님'을 위해 매주 수요일 오전 7시에 어떤 방에서 30분 동안 짜장면을 먹으라는 것.
일주일에 하루, 30분만 짜장면을 먹으면 한 달에 200만 원. 120분 일하고 200만 원.
영권의 대답은 당연히 yes!
한편, 청기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남자, 곽종춘은 젊은 남자애들의 평범한 일상으로 보며 성욕을 채우는 변태 중의 변태다. 일찍이 집을 나와 방황하던 청기는 자신을 걷어 준 종춘 밑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종춘의 은밀한 취미를 위해 판을 깔고 인력을 관리하고 있던 것이었다.
곽종춘의 보석상자 속 뉴페이스 영권은 생각보다 성실했다. 청기는 영권이 끼를 더 맘껏 펼칠 수 있게 밑도 끝도 없는 칭찬을 마구 퍼붓는다. 기실 영권은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청춘이었다. 자연스레 저를 좋게 봐주는 청기에게 스며든다.
쟤는 최대한 갖고 놀아보고 싶은데.
한편, 청기는 칭찬과 장난스러운 스킨십을 반복하며 순진한 영권의 반응을 십분 즐길 뿐이었다. 그것이 영권과 자신에게사랑의 불씨를 당기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처음에 청기는 영권의 난데없는 애정 공세에 당황한다. 영권은 곽종춘의 물건이었고, 이치상 청기는 그런 영권을 취할 수 없다. 그렇게 영권을 적당히 달래면 떨어져 나갈 줄 알았지만 웬걸.
매니저님 잘 계십니까?
너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잘모루겠습니다
전화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참아서 안할수잇지만
이거는 어떻게 참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저어떻게해야되는지 알려주시면 안됩니까
죄송합니다
청기가 밀어낼수록 영권의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은 더욱 굳세어진다.
결국 청기는 영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원하게 되는 걸로 모자라, 종춘의 눈을 피해 영권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데.
과연 청기의 계획은 성공할 것인가?
감상
<오키나와 바캉스>는 쓴은 작가의 글 중 가장 특이하고 가장 신나고 가장 웃기고 가장 정신없는 글이다. 그와 동시에 가장 외롭고 가장 안타깝고 가장 로맨틱한 글이기도 하다.
온갖 멍청하고 무익하기만 짓을 저지르게 만드는 사람.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소설은 두 남자가 곽종춘을 따돌리고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데서 끝이 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앞두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쩐지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결말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둘의 도피가 꼭 비극 또는 새드 앤딩으로 규정되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홀로 살아가던 영권과 청기는 서로를 통해 진정한 애정을 채우고 베풀며,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관계. 이거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부부 아니냐고요.)
부디 영권과 청기가 오키나와에 무사히 도착했길 바란다. 홀로 지나온 길이 외롭고 고통스러웠다면, 함께 통과할 앞으로의 길은 부디 온전히 사랑이 가득하길. 그렇게 생각하면 수많은 추적자가 따라붙은 도피일지라도, 영권과 청기는 반드시 행복하게 살 길 바란다. 결국 <오키나와 바캉스>의 핵심은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한 감정의 확인이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