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시티: 메가시티의 새로운 모델
메가시티 논의가 한국 도시정책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메가시티가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부족하다. 단순히 행정구역을 통합하고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대 도시문화의 큰 변화, 즉 크리에이터 역할 증가와 노마드 라이프스타일 확산에 주목해야 할 때다.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의 본질은 유연성과 이동성이다. 디지털 노마드, N잡러,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등 새로운 직업군은 고정된 일과 장소를 탈피해 다양한 일과 경험이 가능한 작업 환경을 선호한다. 특히 한 달 살기와 워케이션 같은 경험이 정규직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생활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도시에 유연화, 창조화, 개인화, 압축화, 네트워크화라는 다섯 가지 주요 변화를 가져온다. 도시민들은 더 이상 고정된 생활양식이나 근무 장소에 구속되길 원치 않으며, 개인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과 커뮤니티를 요구한다. 또한 효율적으로 압축된 도시 서비스와 도시 간 강화된 네트워크를 기대한다.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수용하는 도시 모델이 바로 '노마드 시티'다. 노마드 시티의 핵심은 크리에이터 타운 네트워크다. 도심, 부도심, 교외에 걸쳐 직주락이 내부에서 가능한 다수의 크리에이터 타운이 형성되고, 이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구조다. 각 크리에이터 타운은 공유 작업 공간, 협업을 위한 커뮤니티 센터, 문화예술 시설 등 창의적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갖춘다.
노마드 시티로의 변화는 이미 미국의 엑서브(exurb)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은 대도시 중심에서 60마일(약 97km) 떨어진 엑서브들이다. 뉴욕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다운타운 노동자들이 교외로 이주하면서 엑서브들이 독자적인 다운타운을 보유한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변모하고 있다. 텍사스 달라스-포트워스의 애나(Anna),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의 포트밀(Fort Mill) 등이 비슷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플로리다의 폴크 카운티는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 유입(약 3만 명)이 일어난 지역이다.
한국의 메가시티도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과 같은 메가시티 구상은 단순한 행정통합을 넘어 노마드 시티로서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메가시티 전체와 소지역의 산업적 분담이 중요하다. 메가시티는 국가산업, 대학 중심 혁신 생태계, 스타트업 커뮤니티 등 광역권 산업 정책에 집중하고, 소지역은 지역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생활산업과 창조산업을 육성하는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둘째, 크리에이터 타운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고속철도, 광역급행철도와 같은 물리적 연결뿐 아니라, 5G 기반의 디지털 인프라, 통합 플랫폼 구축 등을 통해 크리에이터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협업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크리에이터 타운의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예산 구조가 필요하다. 공동 프로젝트 지원, 인재 교류 프로그램 등 기본적인 협력 사업을 넘어, 메가시티 예산의 상당 부분이 개별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분산되는 분권적 예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크리에이터 타운의 우선 순위는 크리에이터 육성과 지원과 더불어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정주 여견 조성이며 이는 거점 도심에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을 요구한다.
넷째, 크리에이터 자원의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각 크리에이터 타운의 발전 수준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대한 집중 지원을 통해 네트워크 전체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한국이 더 많은 메가시티를 만들고자 한다면, 노마드 시티 모델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행정구역 통합과 규제완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형 메가시티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다.
참고자료:
1. Schneider, M. (2024, November 16). Going downtown or to the 'burbs? Nope. The exurbs are where people are moving. AP News.
2. 모종린. (2024).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