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역발전에서 가장 절실한 가치는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보면 지역의 자생력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를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지역 공동체의 자생적 성장을 위한 노력은 미비한 채, 중앙정부 주도의 국가주의적 발전론이 지역발전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표면적으로는 부인하려 하지만, 지역발전은 결국 국가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지역의 기저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이러한 인식은 무엇을 초래했는가? 현재 제시되는 지역발전 방안들은 본질적으로 중앙의 자원 재분배에 의존하고 있다. 행정통합, 규제특혜, 중앙산업 이전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는 행정구역을 확대하여 중앙정부의 예산과 규제 완화 혜택을 얻거나, 중앙의 산업 자원을 유치하려는 방안으로 요약된다.
물론 예외적인 접근도 있다. 국세와 지방세의 재조정(현행 8:2에서 6:4), 지방 SOC 투자, 지역대학 중심의 혁신생태계 구축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조차도 지역의 풀뿌리 역량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광역 단위의 국가주의적 접근으로 지역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발상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 지도자들은 자신의 지역을 '작은 국가'처럼 운영하는 초광역 경제권 체제를 주장한다. 메가시티 구상이 주목받는 것도 이 같은 발상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우리는 메가시티 구상이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심도 있게 논의하지 않는다.
과연 창원-마산-진해의 통합이 창원특례시의 경쟁력을 높였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기는 어렵지만, 마산과 진해의 정체성이 훼손된 것은 명확하다. 서울-인천-경기의 수도권 통합이 인천과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인구와 일자리가 늘었다고 하지만, 정작 삶의 질이나 지역의 매력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만약 메가시티로의 전환이 초광역적 정체성 형성에는 실패하면서, 오히려 기존의 소지역 정체성마저 약화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일부 소지역에서 추진 중인 크리에이터 타운과 같은 혁신적 시도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 연결성이 부족한 지역에서 메가시티를 통해 초광역 경쟁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무분별한 메가시티 구상은 지양하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역사적 맥락이 뚜렷한 지역(경북-대구, 경남-울산-부산 등)의 광역단체 통합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반면, 수도권과 강원도 통합, 경상남북도 통합과 같은 제안은 역사적 맥락에서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지역 정체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특정 지역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행정구역 재편도 필요하다. 제주도나 강원도는 규모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경기북부 지역의 분리 독립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역발전이 진정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가주의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자생적 혁신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행정구역 개편도 지역 정체성을 보존하고, 지역 고유의 산업과 문화를 활성화하는 도구로 작용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정체성 기반의 행정구역이야말로 지역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다른 지역이 복제할 수 없는 독창적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지역은 이미 그 지역만의 특수한 환경을 반영한 지역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국가산업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이러한 지역 고유의 자산을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제라도 각 지역의 정체성, 문화, 환경에 기반한 산업을 복원하고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