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 상황의 변동으로 정부가 다시 지역 활성화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을 대비해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 지역활성화 사업에 대한 평가와 대안 제시다.
지역 활성화의 전통적인 모델은 마을에 커뮤니티 시설을 조성하고 그 운영을 마을 주민에게 위탁하는 공동체 사업이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전문가나 기업이 설계와 기반 조성에 참여하되, 최종적으로 주민 단체가 완성된 시설을 운영하는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최근 주목받는 커뮤니티 디자인과 로컬 브랜딩은 이와 다른 접근을 취한다. 두 방식 모두 브랜딩 전문가나 전문 기업이 사업을 설계하고 집행할 뿐 아니라, 브랜드의 지속적인 관리와 발전에도 깊이 관여한다. 브랜딩 사업을 통해 지원된 시설과 사업체는 민간 운영을 원칙으로 삼는다. 브랜딩 사업은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공이 설계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구조를 채택한다
이러한 브랜딩 전략은 크게 커뮤니티 디자인과 로컬 브랜딩으로 나눌 수 있다. 커뮤니티디자인 연구소 이상환 대표에 따르면, 커뮤니티 디자인은 로컬 브랜딩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정체성(Locality)을 강화하여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Loyalty)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목표는 동일하지만, 접근 범위와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브랜딩을 진행한다. 이상환 대표는 커뮤니티 디자인을 세 단계로 설명한다. 의성성냥공장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첫째, '커뮤니티스쿨' 단계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대상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고 해석한다. 의성성냥공장의 경우, 주민들이 성냥공장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특히 과거 근로자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했고, 이는 "성냥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브랜드 스토리의 기반이 되었다.
둘째, '커뮤니티디자인' 단계에서는 발견된 가치를 바탕으로 공동체 자산화를 진행한다. 의성에서는 버려진 산업시설을 문화예술 거점으로 전환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 성냥 생산 노동자들이 '성냥 극 해설사'로 변신해 공간의 스토리텔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자신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달한다.
셋째, '커뮤니티비즈니스' 단계에서는 이를 경제적 가치로 발전시킨다. 의성은 숙박시설과 카페를 운영하며,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식음료를 개발했다.
로컬 브랜딩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브랜드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로컬 브랜딩 사업을 세 가지 구성 요소로 분류한다. 에피그램의 로컬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첫째, '로컬 컨셉 잡기'를 통해 지역 전체의 브랜드 방향성을 정립한다. 에피그램은 강진의 청자색, 하동의 벚꽃색, 고창의 복분자색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컬러를 선정하고, 이를 패션 디자인과 패키징에 반영한다. 또한 각 지역의 스토리를 담은 스토리북을 제작해 에피그램 매장에서 소개한다.
둘째, '건축디자인 지원'으로 지역 정체성이 반영된 물리적 환경을 조성한다. 대표적으로 '올모스트홈' 스테이는 한옥을 에피그램의 미니멀한 스타일로 리모델링하고, 지역 특산품으로 만든 어메니티를 제공하며, 지역 식재료로 조식을 준비한다. 피크닉 세트와 자전거 대여, 체험 클래스 같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로컬 콘텐츠와 브랜드 발굴・육성' 사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한다. 에피그램은 2017년 이후 제주, 경주, 광주, 하동 등 전국 12개 소도시의 로컬 브랜드를 발굴하고 육성했다. 선정된 지역 상품의 3분의 1 이상에 대해 패키징 디자인을 지원하고, 이를 자사 매장에서 판매한다.
커뮤니티 디자인이 특정 대상의 가치를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브랜딩 한다면, 로컬 브랜딩은 지역 전체의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하는 접근이다. 의성성냥공장은 주민 참여형 상향식 접근으로 깊이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냈고, 에피그램은 전문가의 체계적 접근으로 지역 전체의 브랜드 생태계를 변화시켰다.
두 방법은 상호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컬 브랜딩으로 지역의 큰 방향성을 설정하고, 개별 자산은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해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이처럼 각 접근법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역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지역 활성화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