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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r 05. 2019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이 나이키를 품다


운동화 수입로 시작한 나이키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기업이 있다. 미국 포틀랜드에 본부를 둔 나이키다. 세계 160여 개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나이키는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시장으로서 미국에서 5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나이키도 라이프스타일을 판다. 나이키 덕분에 스포츠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나이키는 우리에게 생각만 하지 말고 즉시 행동할 것을 권유한다(“Just do it!”). 건강, 레크리에이션, 활동적인 삶, 단련된 몸 등이 우리가 나이키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나이키의 브랜드 파워와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에어 조던 시리즈’가 출시될 때면 나이키 매장은 경비가 삼엄해진다. 신상품을 훔치려는 강도를 막고, 신제품을 사기 위해 서로 몸싸움을 벌이는 소비자들의 폭행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이키 운동화는 초·중등학교 남학생의 패션과 유행을 주도하기도 한다. 그 또래의 청소년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증명하기 위해 나이키 운동화를 찾는다. 신상품이 출시되는 날이면 나이키 매장 앞은 수많은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심지어 신제품을 사려고 결석하는 학생이 늘자 일부 학교는 신제품을 주말에만 판매하라고 회사에 요구하는 일도 일어났다. 학생들은 최고의 스타가 신는 나이키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도 그들과 같아진다고 믿는 듯하다.


나이키의 역사는 1962년 포틀랜드에서 시작됐다. 오리건 대학의 육상부 코치 빌 보워먼(Bill Bowerman)은 선수의 기록 향상을 위해 새로운 육상 신발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가 만난 신발 제조업체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는 당시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의 러닝화를 수입해 판매하던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둘은 1964년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를 설립했다. 사업 초기에는 일본 신발을 수입해 판매했으나, 1972년에는 지금의 나이키를 탄생시켰다.


나이키는 초창기부터 유명 선수 마케팅으로 유명했다. 조깅 붐이 일었던 1970년대의 유명 육상 선수는 모두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 이후에도 1980년대의 마이클 조던, 1990년대의 타이거 우즈, 2000년대의 샤라포바 등 각 분야의 최고 선수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새로운 운동화를 개발하고 스포츠용품 시장을 개척했다. 나이키는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등에 업고 최고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탄탄히 구축해 나갔다.





1990년 나이키는 포틀랜드 도심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비버턴(Beaverton)에 새로운 본사를 짓고 이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 같이 도심 외곽의 넓은 장소를 선택한 것이다. 본사 단지는 호수, 건물, 정원, 운동 시설이 조화를 이루고, 운동화로 시작한 회사답게 조깅 트랙으로 둘러싸여 있다.


나이키 본사를 방문하는 일은 조금 까다롭다. 공식적으로 외부인에게 공개하지 않으며, 방문객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구에서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인도 자동차를 타고 본사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나이키가 건설한 본사 일대의 조깅 트랙은 지역 주민에게 일부 공개된다고 한다. 본사 내부에 들어가면 나이키 설립자 등 기업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관은 물론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던 등 나이키를 대표하는 스타를 기념한 시설을 관람할 수 있다. 직원 상점과 카페테리아에서 회사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본사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업무는 마케팅이다. 회사 전체 비즈니스에서 보자면, 본사는 두뇌에 해당한다. 마케팅, 기술개발 R&D, 재무 등 핵심 부가가치 활동을 수행한다. 제품 생산은 세계 곳곳의 하청 업체가 담당한다. 나이키는 우리나라와 한때 인연이 깊었다. 1980년대에는 한국 협력 업체들이 나이키 운동화 대부분을 생산했다. 그러다 우리나라 임금 수준이 높아져서 협력 업체들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조던처럼, 신지 않은 듯한 자유로운 신발처럼


굳이 본사를 방문하지 않아도 포틀랜드에서 나이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나이키가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성공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해 보여주는 매장)로 운영하는 나이키 타운 매장이다. 나이키는 일반적으로 백화점 등 유통 시장을 통해 운동화를 판매하지만, 주요 도시에선 상품을 전시한 나이키 타운을 열어 판매와 마케팅의 중심지로 활용한다. 포틀랜드를 찾은 관광객에게는 나이키 타운이 곧 나이키의 박물관이다.


포틀랜드의 나이키 타운은 도시 중심지인 사우스웨스트 5번가에 있다. 나이키 타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 매장의 규모, 디자인, 공간에 압도당한다. 상점 구석구석에는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나이키를 대표하는 스타 농구 선수들의 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나이키 모델로 선정될까? 수많은 스타 농구 선수 중 극히 일부만이 나이키 모델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San Antonio Spurs)의 팀 덩컨(Tim Duncan)은 선택되지 못했다. 덩컨은 기본기와 몸싸움에 충실한 스타일로, 우리 시대 최고 농구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매우 훌륭하고 존경받는 선수임은 틀림없지만, 나이키 모델이 되기에는 2퍼센트 부족하다. 왜 그럴까? 그는 지극히 성실하고 조용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소비자가 좋아하는 스타는 ‘성실맨’이 아니다. 나이키는 소비자를 매료시킬 화려한 매력을 가진 선수를 원한다.


나이키가 꼽은 스타 선수도 영원히 나이키와 함께하진 않는다. 현재 나이키 타운을 장식한 선수는 모두 현역 선수다.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매직 존슨도, 래리 버드도 보이지 않는다. 나이키 타운에 영원한 것이 있다면 딱 하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에어 조던 운동화 조각품이다. 마이클 조던만이 나이키 타운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과거 스타다.


마이클 조던은 대학 시절부터 이미 스타였다. 그는 대학 1학년이었던 1982년에 전미 대학농구대회 결승전에 출전해, 소속팀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우승을 이끌었다. 별명은 ‘점프맨’이다. 단순히 높이 뛴다는 이유로만 붙은 별명이 아니다. 그는 너무 쉽게, 그리고 우아하게 하늘을 날았다.


마이클 조던의 1984년 NBA 데뷔에 맞춰 개발한 에어 조던 농구화로 나이키는 오늘날의 위상을 구축할 수 있었다. 처음 에어 조던 제작을 망설이던 회사를 설득한 사람은 조던의 에이전트인 데이비드 포크(David Falk)였다. 그는 나이키 대표인 필 나이트에게 조던이 가진 상징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제시했다. 필 나이트는 그에게 설득당했고 나이키의 수석 디자이너 피터 무어(Peter Moore)는 ‘에어 조던 1’을 만들었다.


처음에 나이키와 5년에 250만 달러로 계약을 맺은 조던은 1987년엔 7년 연장 계약과 함께 켤레당 인세를 받는 나이키의 동업자가 되었다. 지금도 매년 출시되는 에어 조던 농구화에는 점프맨 로고가 장식되어 있다. 조던이 덩크슛을 하기 위해 공을 들고 하늘에 오른 모습을 담은 로고다. 하늘 속 조던의 모습은 아주 자유로워 보인다.


자유, 그렇다. 자유는 새로움과 함께 나이키를 상징하는 가치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자체가 우리에겐 자유다. 일상으로부터의 자유, 자연을 향한 자유, 혼자만의 자유. 나이키는 끊임없는 자유를 상징하며 우리 곁에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2005년 나이키는 ‘나이키 프리(Nike Free)’라는 새로운 조깅화 라인을 출시했다. 많은 육상 선수가 맨발로 훈련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든 상품이다. 신발을 신지 않은 듯한 자유로운 신발, 그것이 나이키 프리가 추구하는 가치다. 소비자도 나이키 프리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새로움과 자유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포틀랜드의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삶을 반영한 나이키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활기찬 아웃도어 활동은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다. ‘미국에서 가장 푸른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도시 전체에 산책로와 조깅 코스가 잘 꾸며져 있다. 포틀랜드의 도보 지수(Walk Score)는 70점대에 육박해 미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자전거를 즐기기에도 최적의 도시로 알려졌다.


포틀랜드는 나이키가 강조하는 ‘스포츠는 곧 일상’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는 도시다. 따라서 나이키 창업자 보워먼과 나이트의 고향이기도 한 포틀랜드는 나이키 기업 문화와 전통을 꽃피우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은 한마디로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삶’으로 요약된다. 책임 있는 삶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상적인 포틀랜드 사람은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섭취한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사회의 건강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포틀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을 보호하는 일에도 철저하다. 재활용 비율이 63퍼센트가 넘는 오리건은 미국에서 재활용을 가장 많이 하는 주다. 포틀랜드 사람은 자연을 즐기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인권 등 기타 사회문제에도 적극 참여한다.


포틀랜드 사람들의 진보성에 부응하여 나이키도 환경, 인권, 자선사업 등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트레이시 카바쇼의 저서《열정으로 시작해 꿈이 된 기업 나이키 이야기》에는 나이키 CEO인 마크 파커(Mark Parker)의 포부가 소개되어 있다. 마크 파커는 나이키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친환경 성장을 추구하는 세계적 흐름의 선두에 서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나이키 사회 공헌 활동의 대표적인 예가 ‘컨시더드 디자인(Considered Design)’이다. 컨시더드 디자인이란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의 비중을 높이고 불필요한 원료 및 유기화합물 등을 감소하거나 제거하는 공법이다. 마크 파커는 나이키의 스포츠용품뿐만 아니라 시설 관리, 개보수, 건축 설계에도 적용하여 지속 가능성 원칙을 살린 성장과 혁신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스마트 성장, 포틀랜드의 경쟁력


포틀랜드의 책임 있는 삶의 철학은 도시계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포틀랜드는 환경과 삶의 질을 보호하는 성장, 즉 ‘스마트 성장(Smart Growth)’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도시다. 시 지도자들은 성장을 위한 맹목적인 개발을 거부한다.


구체적인 스마트 성장 전략으로 밀집지역 Compact Neighborhoods 건설, 대중교통망 구축, 보행자와 자전거에 편리한 도시 디자인을 들 수 있다. 상업과 주거 건물의 밀도를 높여 도심 중심으로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밀집지역 전략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보행과 자전거는 대표적인 저 에너지 교통수단이다. 스마트 성장을 채택한 도시는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주요 도로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추가하고, 자전거 트랙 네트워크와 자전거 주차장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미국 전체로 놓고 봤을 때 자전거 통근율은 평균 1퍼센트도 안 된다. 하지만 포틀랜드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전거 통근 도시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7퍼센트에 이른다. 시 정부는 2030년까지 이 비율을 30퍼센트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포틀랜드에는 자전거 교통량이 많은 거리에 커피 바, 자전거 수리점, 식당, 호텔 등 자전거 통근자를 위한 상업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전거 개발’, 즉 자전거를 위한 부동산 개발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운송 분야에서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중교통 이용이 최선이다. 미국은 자동차 국가다. 뉴욕 맨해튼을 제외한 모든 도시에서 대중교통은 자동차를 보완하는 교통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다른 도시와 달리 고집스럽게 대중교통에 투자하는 도시로 유명하다. 경전철, 전차 등을 도입하는 등 오래전부터 대중교통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보행자 및 자전거 길과 대중교통이 발달한 포틀랜드는 미국이 아닌 유럽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상권이 밀집한 도심에서는 거의 모든 지역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대중교통은 도심과 멀리 떨어진 주거지를 연결한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교외에 사는 시민은 전차를 타고 도심으로 통근한다. 시 정부는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버스와 전차에 자전거 운송대를 부착했고, 최근까지 도심 전차를 무료로 운영했다.


스마트 성장은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성장과 발달을 억제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다. 1970년부터 일찍이 시작한 스마트 성장 전략 덕택에, 포틀랜드는 미국 사람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스마트 성장, 그리고 스마트 성장이 보장하는 건강한 삶이 현재 이 도시 경쟁력의 원동력이다.





캘리포니아와 구별된 독창적인 문화, 와인


포틀랜드의 콤플렉스는 캘리포니아다. 많은 사람이 포틀랜드를 ‘제2의 샌프란시스코’라고 부른다. 포틀랜드의 도시 문화가 독창적이지 않으며, 샌프란시스코 문화의 아류라는 의미이다. 포틀랜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문화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캘리포니아,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에는 공통점이 많다. 포틀랜드가 샌프란시스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지리적으로 이웃해 있을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에 살던 많은 사람이 도시화를 피해 오리건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두 도시 모두 유명한 와인 생산지다. 샌프란시스코에 나파밸리가 있다면, 포틀랜드에는 윌래밋밸리(Willamette Valley)가 있다. 포틀랜드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윌래밋밸리는 일조량은 적은 편이지만, 높지 않은 기온이 오히려 포도가 서서히 숙성하며 충분히 익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가 밀집해 있다. 도멘 서린(Domaine Serene) 등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와인도 이곳에서 생산된다.


윌래밋밸리에서 처음으로 와인을 생산한 회사는 아이리 빈야드(Eyrie Vineyards)이다. 1965년 데이비드 레트 (David Lett)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윌래밋밸리에 차가운 기후에 적합한 포도 품종과 피노 노아르(Pinot Noir, 최고급 적포도주를 만드는 포도 품종)를 심었다. 와인 생산을 시작한 10년 후인 1975년에 생산된 아이리 빈야드의 사우스 블록 피노 누아르(South Block Pinot Noir)는 1979년 프랑스의 골트미요 와인 올림피아드 (Gault-Millau French Wine Olympiad)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 독일 본에서 다시 열린 경합에서 2위에 오르며 윌래밋밸리 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포틀랜드의 일 문화도 캘리포니아와 비슷하다. 캘리포니아 비즈니스 지역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펄 디스트릭트(Pearl District)는 포틀랜드 시가 1980년대에 공장 지역을 상업 지역으로 재개발한 곳이다. 부티크 가게, 고급 식당과 와인 바, 브루어리 레스토랑(Brewery Restaurant), 갤러리가 즐비해 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중심 지역을 연상하게 한다. 펄 디스트릭트는 디자이너, 컨설턴트, 마케팅 전문가 등 포틀랜드의 창조 계층이 일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일과 가족, 일과 레저의 균형을 시도하는 기업이 많다. 노스파크 쿼터에 위치한 한 컨설팅 회사의 일 문화 철학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건물에 ‘일과 놀이(Working Playing)’라는 사인을 걸었다. 즐기며 일하고, 일하면서 즐기자는 철학이다.


포틀랜드에서 유학한 내 제자는 생활 속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 포틀랜드 사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미국 동부 변호사는 로펌에서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포틀랜드 변호사는 회사가 일을 많이 시키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이직한다고 한다.


펄 지역과 연결된 노스웨스트(Northwest)는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주거 지역이다. 고급 주택이 모여 있고, 곳곳에서 분위기 좋은 식당과 가게를 찾을 수 있다. 노스웨스트는 곧바로 산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포틀랜드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전망으로 유명한 웨스트 힐스(West Hills)다. 웨스트 힐스는 전통적으로 포틀랜드 부자가 큰 저택을 짓고 사는 곳이다. 장미정원과 산림박물관으로 유명한 워싱턴 공원도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노스웨스트와 웨스트 힐스는 전원생활과 현대의 도시 문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주거지다.


같은 서부 도시로서 포틀랜드는 먼저 개발된 캘리포니아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두 도시는 문화를 공유한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캘리포니아와 궁극적으로 다른 문화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와인이다.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vingnon) 품종이 나파밸리 와인을 대표한다면, 피노 누아르가 윌래밋밸리 와인의 대표 품종이다. 북미 지역의 대표적인 피노 누아르 생산지는 나파밸리가 아니고 윌래밋밸리다. 오리건 피노 누아르는 세계적인 와인으로 인정받는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와인 제조업체인 드루앵 가(Drouhin Family)도 오리건 지역 와인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1988년 윌래밋밸리의 던디 힐스(Dundee Hills)에 도멘 드루앵 (Domaine Drouhin)을 열었다.





지역 문화 형성의 기반이 된 도시 양조장


포틀랜드는 대표적인 창조 도시답게 새로운 기업을 많이 만들고 트렌드를 주도한다. 최근 포틀랜드의 도시 문화를 새로이 바꾸는 트렌드는 도시 양조 산업이다. 포틀랜드에는 작은 규모로 와인, 맥주, 양주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 유난히 많다.


도시 와이너리는 새로운 개념의 와인 사업이다. 일반적으로 와이너리는 포도밭에서 포도를 직접 재배해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사용하는 모든 포도를 직접 재배하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포도밭을 배경으로 와이너리를 만드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포틀랜드의 일부 와이너리는 이 같은 통념을 깨고 도심에 양조장을 만들어 운영한다.


포틀랜드에서 도시 양조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지역은 남동부의 이스트 번사이드 스트리트(East Burnside Street)이다. 나는 이스트번사이드 스트리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도시 와이너리인 클레이 피전(Clay Pigeon)을 찾았다. 와이너리 주변에는 과거에 공장이나 창고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이 많았다. 클레이 피전 와이너리는 이런 건물의 하나를 반은 양조장으로, 반은 레스토랑으로 개조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이른 오후에 방문한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한 테이블에 있던 손님도 내가 도착한 후 곧 떠났다. 혼자 남은 나에게 레스토랑 매니저는 와이너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2011년에 개업한 클레이 피전 와이너리는 와인뿐만 아니라 치즈도 생산한다.


와이너리 주인은 부부인데, 남편이 와인을 만들고 부인이 치즈를 만든다. 와이너리는 1년에 750 상자 정도의 소규모 물량만 생산한다. 2013년에 생산한 시라즈 와인은 이미 다 팔려, 현재 10병만 남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시라즈 와인을 살 수밖에 없었다. 품질은 모르겠지만 회소성은 확실하지 않은가?


클레이 피전 와이너리의 건너편에도 베이스 캠프 브루어리(Base Camp Brewery)라는 도시 맥주 회사가 있다. ‘미국 맥주의 수도’라고 불리는 포틀랜드의 수많은 맥주 회사 중 하나다. 베이스캠프 브루어리의 콘셉트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산악 장비와 등산이다. 맥주 캔 모양을 등산용 수통으로 만드는가 하면, 생맥주 탭(맥주 짜는 기계)을 퀵 드로(확보물과 로프를 신속하게 연결하는 등반 용구) 모양으로 만든다. 이곳의 맥주를 마시면 등산한 후 청정 계곡물을 시원하게 마시는 기분이 들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나는 여러 가지의 맥주 맛을 비교하다 정작 ‘산악 맥주’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베이스캠프 브루어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번사이드 양조장 지역이 있다. 독립적으로 위스키, 버본, 진 등의 양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모여 있는 곳이다. 내가 방문한 곳은 이스트사이드 디스틸링(Eastside Distilling)이다. 양주를 만든다고 하면 아주 큰 규모의 양조장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 양조장은 모두 소규모이다. 양조장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생산된 양주를 시음할 수 있는 시음장이 있고, 그 뒤가 바로 양조 공간이다.


도시 양조장은 여러 가지 양주를 만들긴 하지만 모두 소량씩 생산하기 때문에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미국 남부에 산 경험이 있는 나는 이스트사이드 디스 틸링에서 만든 남부 위스키 버번, 번사이드 버번을 한 병 샀다.


와인, 맥주, 양주 공장에 방문할 때마다 기념으로 술을 한 병씩 사다 보니 가방에 벌써 3병의 술이 담겼다. 여행하면서 방문한 지역의 술을 시음하고 사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포틀랜드는 독립 양조장을 관광 자원으로, 동시에 지역 문화 형성의 기반으로 활용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포틀랜드에서 맛본 술은 모두 포틀랜드에서 유래한 술이 아니었다. 와인, 맥주, 양주 등은 따지고 보면 모두 다른 나라의 술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술 중 하나인 보드카는 굳이 국적을 따지면 러시아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보드카를 만드는 곳은 러시아만이 아니다. 보드카 중 가장 고급으로 불리는 그레이구스를 생산하는 나라는 프랑스고, 우리가 많이 마시는 앱솔루트 생산지는 스웨덴이다. 스코틀랜드가 싱글몰트 위스키 생산을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도 세계 최고 수준의 싱글몰트를 만든다.


우리나라는 최근 지역 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여러 가지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번 기회에 지역 술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일부에선 지역 술을 전통주로만 이해한다. 한 지역이 잘 만들 수 있는 술을 그 지역이 과거에 만들었던 술만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정부가 지역 전통주의 생산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모든 지역 기업이 전통주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보드카, 진, 위스키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한번 상상해보자. 제주는 보드카, 부산은 위스키, 전주는 진, 군산은 사케 생산지로 유명해진 미래를!





독립 상점의 자부심으로 성공한 파월 서점


펄디스트릭트로 돌아가 보자. 이곳에는 스스로 미국 최대의 독립 서점이라고 광고하는 파월 서점(Powell’s Bookstore)이 있다. 교보문고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파월 서점의 규모는 인상적이다. 서점이 아니고 도서관이라도 불러도 될 만큼 수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점원에게 포틀랜드 도시 개발에 관한 책을 찾는다고 말했다. 친절한 점원이 나를 데려간 서가는 도시학 (Urban Studies) 섹션이다. 서점에도 도시학 섹션까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천장까지 닫는 책장에서 한참 포틀랜드 관련 책을 찾던 점원이 내게 다른 섹션으로 가보자고 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도시경관(Cityscape) 섹션이었다. 사실 ‘Cityscape’는 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놀랐다. 5미터 이상 긴 서가에 도시경관에 관한 전문서가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파월 서점이 내게 준선물은 《포틀랜드 에지(The Portland Edge)》라는 책이다. 며칠 동안 도서관을 검색해도 찾기 어려웠던 책을 이 서점에서 찾았다.


파월 서점의 로고에서 가장 인상 깊은 단어는 ‘독립(Independent)’이다. 이 단어는 서점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파월 서점은 체인이 아닌 독립 서점이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한다. 나는 파월 서점이 독립 서점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있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펄디스트릭트에는 데슈트 브루어리 같은 독립 맥주 회사, 에덴이라는 여성 의류 부티크 가게 등 유난히 독립 소상인 가게가 눈에 많이 띈다. 독립 가게를 선호하는 문화는 포틀랜드 전역에서 느낄 수 있다. 포틀랜드에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큰 체인 상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세븐일레븐처럼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편의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푸드트럭(Food Truck) 문화도 독립 상점을 중시하는 포틀랜드 문화가 있어 가능하다. 도심 곳곳에서 수많은 푸드트럭이 영업을 한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과 그곳에 몰려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독립심과 개방성, 어떻게 보면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지만 성공한 도시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다.





새로움과 자유로움의 도시 문화


포틀랜드는 자유롭고 새로움이 넘치는 도시다. 그래서 포틀랜드에서 나이키와 같이 새로움과 자유로움을 내세워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포틀랜드의 새로움과 자유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힙스터(Hipster) 문화다. 최근 미국의 한 잡지는 미국에서 가장 힙스터적인 도시로 포틀랜드를 선정했다. 힙스터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대항문화 또는 이 문화를 따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한 힙스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포틀랜드가 새로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도시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힙스터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대중문화를 잘 모르는 내겐 외적인 구분이 중요하다. 히피는 복장, 머리 모양 등 외모로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힙스터는 외적인 특징이 확실하지 않다. 힙스터 관련 문헌에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힙스터는 20~30대 나이에 빈티지나 재활용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많은 힙스터가 픽시라고 불리는 싱글 기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픽시는 평범한 자전거가 아니고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자전거다. 힙스터의 소비 성향도 남다르다. 인디음악, 카페, 허름한 바, 채식, 아날로그 레코드 등이 그들이 좋아하는 문화 상품이다.


힙스터에 대해 이쯤 알고 나니, 불현듯 우리나라의 한 지역이 머리에 스쳤다. 힙스터가 좋아할 만한 가게가 많은 지역이 있다면, 바로 홍대일 것이다. 홍대나 그 주변의 상수역과 합정역 일대는 개성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 그들은 가식적인 모습을 싫어하며, 독특한 옷을 입고 허름한 바나 카페에 모여든다. 자전거도 홍대 문화의 일부다. 홍대에 가면 그 좁고 위험한 길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자전거에 대한 수요가 많아서인지, 여기저기에 자전거 가게도 많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힙스터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제자 C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에서 영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스키니진을 즐겨 입고 중고품처럼 보이는 허름한 옷도 자주 입는다. 사는 곳은 상수역이며 문화계에서 일하는 데다 나이도 20대 중반이니 힙스터의 기본 조건을 만족하는 셈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자, 힙스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늘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대안도, 지식도, 문제의식도 없으면서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힙스터라고 비난한다. C의 부모는 C가 어서 빨리 안정된 직장에 다니기를 원한다. 부모가 하는 말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꿋꿋이 사는 C는 힙스터다운 것일까?


사실 포틀랜드가 힙스터들의 도시인 게 놀랄 일은 아니다. 포틀랜드에는 젊은이가 많이 살고 대중교통과 친환경 문화가 잘 발달해 있으며, 힙스터가 좋아하는 문화적 인프라가 풍부하다. 독립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도시 분위기의 포틀랜드는 획일적인 삶을 거부하는 힙스터에게 안성맞춤이다.


1960년대에 활발했던 포틀랜드의 히피 전통은 그 후예인 힙스터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지금도 포틀랜드 곳곳에서 현대의 히피를 발견할 수 있다. 히피 문화의 여파 때문인지, 포틀랜드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보다 반체제적 성향이 더 강하다. 자유로운 인생과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에 관대하다.


2010년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인 <포틀랜디아(Portlandia)>를 통해 포틀랜드 문화의 특이성이 세계 전역으로 퍼졌다. 포틀랜드 문화의 특이성을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은 오랫동안 히피 중심지로 알려진 호손 디스트릭트(Hawthorne District)이다. <포틀랜디아>의 주인공이 사는 지역도 여기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거리를 걸어본 사람은 호손의 분위기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호손을 걷다 보면 히피, 동성연애자, 거리 음악가 등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많이 만난다.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듯, 특이한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정말 자유분방한 거리다. 호손에서는 사람만 비범한 게 아니다. 가게와 음식점도 평범하지 않다. 호손에는 특히 많은 빈티지 가게가 있다. 빈티지는 패션계에서 오래된 옷, 구시대의 패션을 다시 살리거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류를 말한다.


히피 음악을 팔거나 독특한 디자인의 옷과 소품을 파는 가게도 많다. 거리에서 직접 옷을 파는 가게도 많은데, 그런 가게는 대부분 중고상품을 취급한다. 그 외에도 호손은 인도, 네팔, 멕시코, 에티오피아 등 다양한 외국 음식점과 브런치 카페, 버블티 숍, 제과점, 케이크 전문점 등 고소득 전문직이 좋아하는 가게가 즐비하다.


호손의 중심부는 87년 전통의 바그다드 극장(Baghdad Theater)이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미국 서부 도시의 한가운데에 아랍 이름의 극장이 라니! 바그다드 극장 앞은 항상 관광객으로 붐빈다. 거리 음악가가 관광객을 위해 연주하는 모습도 바그다드 극장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나는 호손이 계속 히피 문화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히피의 현대판인 힙스터 문화로 변질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도시학에서는 고소득 전문직 직장인이 예술가, 히피, 저소득 노동자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해 그 지역을 고급문화와 주거 지역으로 바꾸는 과정을 ‘고급 주택화(Gentrification)’라고 부른다. 어떻게 보면 포틀랜드 전체가 고급 주택화 과정을 거치는 중인지도 모른다.


고급 주택가가 포틀랜드 전역으로 확산하여 호손과 같은 히피 지역이 없어지면 도시의 다양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포틀랜드 고유의 새롭고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포틀랜드를 위해서라도 적어도 호손만은 규격화되지 않은 도시 문화를 계속 유지해 나가길 소망한다.




출처: 작은 도시 큰 기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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