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도시

by 골목길 경제학자

건축가의 도시


도시의 대부분은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도시가 '건축가의 도시'인 것은 아니다. 특정 도시를 그렇게 부를 때에는, 건축가의 철학과 미학이 도시 전체에 깊이 투영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이 경우 건축가는 도시 전체를 설계했거나, 주요 랜드마크와 공간 구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경우다. 오스카 니마이어의 브라질리아나 르 코르뷔지에의 찬디가르가 대표적인 예다.


도시 전체를 한 건축가가 설계하지 않았더라도, 다수 건축가의 협업을 통해 도시 공간 실험이 이루어진 경우 역시 '건축가의 도시'로 부를 수 있다. 베를린의 한자비어텔(Hansaviertel)은 바로 그런 드문 사례다. 이곳은 일반적인 계획도시와는 다른, 건축가 집단이 주도한 도시 단위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한자비어텔의 기원, 역사, 그리고 현재

한자비어텔의 역사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4년, 함부르크의 상인들이 주도한 베를린-함부르크 부동산 회사(Berlin-Hamburger Immobiliengesellschaft)가 이 지역의 개발 계획을 수립하였고, ‘한자(Hansa)’라는 명칭은 이 회사의 배경과 중세 한자동맹의 전통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초기 개발은 북독일식 전면 정원 주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거리 이름도 한자동맹 도시에서 따왔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곳은 부유한 중산층을 위한 주거지로 성장했으며, 1900년경에는 약 18,000명의 주민이 거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11월 22일에서 23일 사이의 대규모 공습으로 전체 343채의 주택 중 70채만이 남았고, 그마저도 대부분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전쟁 후 이 지역에는 약 4,000명의 주민이 남아 파손된 건물과 잔해 속에서 임시로 생활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1957년 국제건축전시회(Interbau)를 통해 새로운 한자비어텔이 탄생했다. 다수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현대적 도시 지구로, 개별적으로 디자인된 건물들이 개방된 배치 형태로 구성되어 동베를린의 획일적인 기념비적 건축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제시했다.


1957년 7월 6일 서베를린의 한자 지역에서 개막된 이 전시회에는 전 세계(소련 점령지역인 동유럽 제외)에서 온 50명 이상의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이렇게 많은 국가의 건축가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서베를린은 인터바우가 단지 독일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영감을 받은 다문화적 프로젝트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자비어텔은 공원 환경 속에 배치된 다양한 건물들로 구성되었으며, "내일의 도시"를 목표로 했다. 공공 공원이 최우선 과제였고, 동물원이 한자 지역에 통합되었으며, 고층 건물, 아파트 블록, 단독 주택, 교회 등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자 광장에는 상점, 레스토랑, 영화관, 도서관, 지하철이 위치하여 지구의 중심을 이루었다.


르 코르뷔지에(프랑스), 오스카 니마이어(브라질), 아르네 야콥센(덴마크), 알바 알토(핀란드), 월터 그로피우스(독일계 미국인) 등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들은 기존의 블록 구조를 대체하여 공원 속에 고층 및 저층 건물이 혼합된 형태로 배치했다.


한자비어텔은 오토 바트닝의 지휘 아래 새로운 중상류층 지역으로 개발되어 동쪽에 대한 서방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위신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는 동베를린의 스탈린알레(현재의 칼-마르크스-알레)에 대한 대응이었다. 동베를린에서는 소련의 지침에 따라 "도시 개발의 16가지 원칙"을 수립하고, 칼 프리드리히 싱켈의 프로이센 고전주의 양식을 차용한 기념비적인 노동자 주택 단지를 조성했다.


이 도시는 1957년 완공 직후에는 주목받는 혁신적 주거단지였으나,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 상황이 크게 변했다. 도시 중심부와 단절되어 주변부로 전락했고, 1980년대에는 중산층 위주의 균질한 인구 구성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침체기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끝나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다시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었고, 1995년에는 그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이곳은 베를린의 인기 있는 주거 지역으로 자리 잡았으며, 베를린 시는 한자비어텔과 동베를린의 칼-마르크스-알레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의 인상: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한자비어텔

베를린 한자비어텔을 걷다 보면 계획도시의 이상과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과 풍부한 녹지, 다양한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동시에 어딘가 생기가 부족한 느낌도 든다.



한자비어텔의 주택들은 각기 다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어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발코니, 옥상 정원, 충분한 채광과 통풍이 고려된 현대적 건물들이 공원 같은 환경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공동체 의식이 균형을 이루는 공간 배치는 인상적이다. 각 건물마다 개성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많은 건축가들의 협업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지역 내 도서관은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주민들에게 휴식과 학습의 공간을 제공한다. 공원은 건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도시 속의 쉼터 역할을 한다. 교회는 현대적 설계로 전통적 종교 공간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지 역할을 한다.



한자비어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의 명확한 분리다. 입구에 위치한 독립된 상가 구역은 주민들의 일상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상가 내부에는 U-Bahn(지하철) 역이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그러나 이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을 위한 근린생활 상가의 성격이 강하다.


방문 당시 상가는 한산한 분위기였는데, 이는 한국의 반포 주공아파트 상가를 연상시켰다. 실용적이지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공간으로, 기능적 필요는 충족시키지만 활기찬 도시 문화를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한자비어텔은 분명 '살기 좋은 동네'로 조성되었다. 충분한 녹지와 공공 공간, 다양한 편의시설, 쾌적한 주거 환경 등 주거지로서의 장점이 많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한 도시 문화나 산업적 활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주거 환경은 갖추었지만, 활기차고 역동적인 도시 공간으로서의 매력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측면은 한자비어텔뿐만 아니라 많은 모더니즘 건축과 계획도시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이는 다음 장에서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더니즘의 이상과 현실

한자비어텔은 모더니즘 건축의 실험장이자, 그 이상과 한계를 함께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1950~60년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설계 방식은 오늘날에는 미적으로 회의적인 평가를 받는다. 날카로운 직선, 노출 콘크리트, 기하학적 구성 등은 ‘기능이 형태를 따른다’는 모더니즘 원칙에 충실했지만, 그 결과는 종종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도시 풍경이었다. 감성적 요소가 배제된 합리주의는 효율성은 확보했지만, 사람들이 애착을 갖고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는 부족했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한계는 여러 도시설계 전문가들이 지적해 왔다. 세계적인 도시설계자 얀 겔은 데이비드 심의 『소프트 시티』(2020) 서문에서 '현대의 도시들이 삶을 보여주기보다는 건물과 도시계획의 이론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당시 계획가들이 "삶이 언젠가 계획에 적응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잘못된 기대였다고 평가한다.


모더니즘의 한 갈래인 부르탈리즘 건축은 최근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부르탈리즘을 비판하며, 연방 건물에는 신고전주의나 조지안, 고딕 양식 등 전통 건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는 FBI 본부를 "배고픔 게임의 버려진 세트"에 비유하며, 부르탈리즘을 ‘논란의 양식’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미국건축가협회(AIA)는 “정부가 특정 미학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창의성을 억압한다”라고 반발했다. 이 논쟁은 모더니즘의 미학적 한계와 사회적 수용성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한자비어텔의 건축물 역시 시간이 흐르며 기능적, 미적, 환경적으로 노후화되었고, 현재 일부는 리모델링을 거쳐 현대적 기준에 맞게 개선되고 있다. 이는 도시를 설계할 때,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지속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고민해야 함을 보여준다. 좋은 도시 공간은 특정 양식의 우월함이 아니라, 그 공간이 사람들의 삶과 얼마나 조화롭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한자비어텔은 녹지와 채광, 프라이버시 등 거주자의 쾌적함을 고려한 ‘살기 좋은 동네’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곳은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문화적 역동성과 창의적 활기는 부족했다. 이러한 현실은 한자비어텔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모더니즘 계획도시들이 공유하는 구조적 한계다.


그중 하나는 ‘기능적 분리’다. 한자비어텔도 주거와 상업을 분리하여 설계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업 공간은 활기를 잃고 기능적 역할에 머물렀다. 도시의 생명력은 상업, 문화, 업무, 주거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환경에서 나온다. 제인 제이콥스는 활기찬 도시의 공통 요소로 ‘다양한 연식의 건물’을 들었다. 오래된 건물이 있어야 임대료가 낮아지고, 그 안에 경제력이 부족한 창의적 인재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는 계획된 정형성만으로는 도시의 다양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흡수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건축가의 도시’가 자생성과 활기를 담기 어려운 경향은 파주의 헤이리 예술인마을이나 출판문화도시와 같은 최근의 기획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두 곳 모두 예술과 출판이라는 고유한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기획되었으며, 창작과 전시, 체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 배치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설계는 분명 뚜렷한 이상과 철학을 담고 있었지만, 일상적 소비의 흐름이나 자영업 기반의 상업 활동, 그리고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도시 동선과 같은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덜 고려되었다. 그 결과, 잘 설계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거리 풍경은 형성되기 어려웠고, 보행 동선은 단절되었으며, 방문은 차량 이동을 전제로 한 점 방문형 구조로 정착되었다.



건축가의 도시가 나아갈 방향

‘건축가의 도시’가 기대만큼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때때로 계획과 통제가 지나치게 강조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건축가나 도시계획가의 비전만으로는 도시의 생명력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며, 활력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계획뿐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자생적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는 여백과 유연성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도시재생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도시재생은 기존 도시의 틀을 존중하면서도, 주민 주도의 변화와 생활 기반의 창의성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하향식 계획과는 다르다. 자생적 문화, 소규모 상업, 생활 기반의 실험들이 누적되면서 도시가 서서히 변화하는 방식은, ‘완성된 도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를 만드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미래의 건축가의 도시가 나아갈 방향도 바로 여기에 있다. 큰 틀은 계획하되, 세부적인 발전은 시민들과 이용자들에게 맡기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주거, 상업, 문화, 업무 공간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24시간 도시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직주락(職住樂) 근접’을 중심으로 한 도시 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는 상업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건축환경에서 가장 활발해지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 도시계획에서는 상업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리하거나 단순히 지원 시설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활기찬 도시의 핵심은 상업 활동의 공간성과 리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활동이 어떤 건축적 조건에서 자생적으로 확장되는지를 다룬 체계적인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도시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시간과 사람, 활동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적응하는 유기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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