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과 달리 히피가 좋아하고 건설한 도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전원에 귀의한 희피가 수많은 공동체를 지었기 때문이다. 히피 공동체는 과거 광신교나 사회주의자가 건설한 유토피아촌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와 자연친화성을 강조했다.
히피가 다른 점은 DIY 문화이었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트리 하우스, 돔 모양의 집 등 비교적 손쉽게 지울 수 있는 주택을 선호했다. 내부도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연 채광과 공유 공간을 활용했다. 권위적으로 인식한 직각 건축을 기피하고 고리형, 돔 모양의 건물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마을이 우주기지 같이 보였다. 뉴욕타임스가 2016년 3월 구글과 애플의 신사옥이 히피 건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한 이유다.
1970년대 히피가 전원 공동체를 떠난 후 현대 건축과 도시계획에 대한 히피의 영향력은 사라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도시로 돌아온 히피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았다. 도시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힙 문화를 개척했다. 스마트폰과 SNS가 보편화되고 삶의 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시 살아나는 2010년대에는 공유경제와 디지털 노마드를 결합해 도시와 전원에서 히피 공동체를 복원한다.
전원에서 돌아온 히피는 1960년대 히피운동이 활발했던, 주로 대학이 위치한 도시에 모여든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건너편에 위치한 버클리가 히피에게 우호적인 도시였다. 버클리는 1960~1970년대 반전운동, 자유언론운동 등 대항문화(Counterculture)의 중심지였다. 지역 히피의 창의성 덕분에 버클리는 유기농, 로컬푸드, 스페셜티 커피, 독립서점, 빈티지 패션을 개척한 도시문화의 진원지가 된다. 버클리에서 시작해 대중화된 도시문화는 점차 세계 주요 도시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는다.
노스 버클리(North Berkeley) 골목길 '고메게토(Gourmet Ghetto)'에 가면 '고급' 히피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고급 음식점이 몰려있는 빈민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곳에서 우리는 히피문화의 진원을 발견한다. 샤턱 애비뉴(Shattuck Avenue)와 바인(Vine Street) 스트리트에 모여있는 고메게토 음식점, 갤러리, 명상원, 독립서점, 부티크들은 공통적으로 남다른 특징을 가진다. 히피문화를 계승한 지역답게 로컬푸드, 유기농, 공정무역, 아르티장 등 사회적 책임과 상업적 독립성을 강조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대다수다. 항상 기다림이 있는 채식 피자 전문점 치즈보드 콜렉티브(Cheeseboard Collective)를 포함한 많은 가게가 사회적 기업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버클리는 캘리포니아 퀴진을 개척한 ‘셰 파니스’, 스페셜 티 커피의 원조인 ‘피츠 커피’, 채식 피자 전문점 ‘치즈 보드 콜렉티브’, 지역 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캘리포니아 피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음식점을 다수 배출했다. 친환경 음식문화를 선도한 ‘로컬 푸드’ 운동의 발원지도 바로 고메게토다. 로컬푸드 운동은 ‘셰 파니스’를 개업한 앨리스 워터스에 의해 시작됐다.
워터스는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구하고자 기존의 농산물 유통시장을 거부했다. 지역 농부와 직거래하면서 양질의 유기농산물을 사용하겠다는 경영철학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지역 사회로 확산된 것이다. ‘팜 투 테이블’이라고도 불리는 ‘로컬푸드’ 운동을 실천하는 식당들은 모두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의 원산지와 재배자를 메뉴에 표기한다. 이렇게 정직, 안전, 건강 등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며 버클리의 히피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또 하나의 고메게토 랜드마크가 스페셜 티 커피의 원조인 ‘피츠커피’ 1호 점이다. 스타벅스의 모델이 바로 피츠커피다. 버클리 출신 기업가들이 피츠 커피를 모델로 삼아 시애틀에서 창업한 가게가 스타벅스다. 음식과 커피뿐이 아니다. 1950년대 후반 카페라테를 처음 개발한 카페 ‘메디터레니언’, 식품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 ‘버클리 코업’, 독립서점의 원형인 ‘셰익스피어 서점’과 모스 서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클리식 도시문화가 탄생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히피는 196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체제, 탈물질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적 통념이나 제도에 대항하며 인간성 회복, 자연친화적 문화를 추구한다. 동물성 식품은 물론 가죽제품, 동물실험 화장품 등 동물과 연관된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거부하는 비거니즘을 히피문화를 대변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가 히피문화를 완전히 수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과격한 정치운동가, 마약중독자, 노숙자 등 히피의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히피는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하위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주류 사회로 진입한 히피문화는 이런 하위문화가 아닌 고급화된 히피문화다. 오늘날 버클리를 대표하는 문화도 바로 고급화된 히피문화다.
버클리에서 시작된 ‘히피 도시’는 도쿄의 시모 기타자와, 영국의 브라이턴, 인도의 고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현재 유럽에서 히피 문화를 주도하는 곳은 ‘네오 히피’ 도시로 알려진 베를린이다. 1920년대 베를린을 기억한다면, 역사의 반복에 소름이 끼칠 수 있다. 1920년대 베를린은 전 세계 예술가가 모여든 도시였다. 그들은 전쟁의 패배로 전통적인 권위가 무너진 곳에서 다른 도시에서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아방가르드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을 마음껏 실험했다. 미술, 음악, 문학뿐 아니다. 건축과 디자인, 영화, 연극, 패션 등 베를린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렵다.
1990년대 베를린이 다시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가 된 것도 역사의 산물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동독 정부가 역사에서 사라지면서 베를린은 한동안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밀려오는 동독 주민을 정착시키고 도시가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때 독일과 외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다른 유럽의 대도시에 비해 생활 비용이 저렴한 베를린에 몰려든다.
서베를린은 1989년 독일이 통일이 되기 전에도 하위문화의 중심지였다. 다른 서독 지역과 고립된 서베를린은 산업과 청년이 떠나는 도시였다.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서독 정부는 다양한 유인책을 사용해 외지인을 유치했다. 외지인 중에는 서베를린의 독특한 상황과 분위기 좋아 찾아온 히피와 이단아들이 많았다. 1970년대 말(1977-1979) 베를린에서 작품 활동을 한 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1990년대의 베를린은 해방 지구였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새로운 권위가 자리 잡기 전 허용된 무정부 공간. 그 공간을 채운 테크노, 클럽, 히피 공동체, 무단점거운동, 아방가르드, 스니커 컬처, 러브퍼레이드 등. 특히 동베를린에는 주민이 떠나면서 버리고 간 공간이 많았다. 새롭게 유입된 외지인은 이 빈 공간에서 다양한 대안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한다. 베를린 뿐만 아니라 라이프치히 등 많은 동독 도시가 이런 연유에서 다수의 히피 공동체가 들어선 네오 히피의 성지가 된다.
2019년 봄에 찾은 베를린은 ‘베를린 1990s(Nineties Berlin)’ 전시가 한창이었다. 젊은이와 이단자들이 무정부 상태와 가까운 환경에서 히피 공동체, 테크노 뮤직, 클럽 문화를 개척한 1990년대 베를린 문화를 회고했다. 베를린의 1990년대는 시내 다른 박물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술가 마을 크로이치베르크의 박물관에서도 1990년대 격렬했던 세입자 저항 운동에 대한 전시를 만날 수 있었다.
도시 운동의 ‘전투성’은 시내 거리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지역 역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지금도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주민들이 리모델링을 통한 세입자 퇴출 시도에 전투적으로 저항한다. 이곳 활동가들은 1990년대 재산권이 불확실한 동베를린 건물을 무단 점거해 예술과 공동체 공간을 확보한 전력이 있다. 동네 문화가 투쟁적이다 보니 가게 상호도 전투적인 이름이 많다. 프레드리히샤인-크로이츠베르크 박물관이 소개한 두 업소가 ‘몰로토프 칵테일(Molotow Cocktail)’과 ‘앵그리 치킨(Angry Chicken)’이다. 한국식 치킨집 앵그리 치킨은 "크로이츠베르크여, 계속 분노해라"라는 구호로 유명하다. 한국 청년이 한국에서 준비해 2009년 창업한 가게다.
베를린 동역 부근 슈프레 강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를 이루었고 1990년대 이 지역의 빈 공간에 많은 야외 클럽과 바가 들어섰다. 그중 가장 유명한 클럽이 '바 25'와 베르크하인(Berghain)이었다. 2010년 가건물이었던 바 25가 철거되자 운영자 유발 디치거와 크리스토프 클렌첸도르프는 바 25 터에 새로운 개념의 도시 공간을 건설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한 공익재단의 도움으로 2017년 ‘자립적 소공동체’ 홀츠 마르크트(Holtzmarkt)를 오픈하는 데 성공한다.
홀츠마르크트는 도시 안의 자연 공동체다. 1960년대 히피의 자연 공동체를 도시 안으로 옮긴 것이다. 4천 평에 달하는 단지 안에는 카페, 유기농 음식점, 곡예사 교육원, 바, 야외 클럽, 어린이집 등 주민을 위한 편의 시설과 관광 시설이 모여 있다. 자연 공동체답게 단지의 모든 건물은 재생 목재, 벽돌, 창문을 사용했다. 강가에는 단지 식당에서 사용하는 채소를 재배하는 텃밭이 있다.
홀츠마르크트가 자급자족 히피 공동체라면 프리드리히샤인의 로우 젤란데(Raw Gelande)는 히피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기차 수리 공장으로 쓰이던 대규모 단지에 대형 클럽, 공연장, 갤러리, 플리마켓, 음식점을 운영한다. 인도어 수영장과 스케이트장을 건설해 일 년 내내 아웃도어와 결합한 파티를 즐길 수 있다.
1960년대 히피문화는 이처럼 버클리, 베를린과 같은 아방가르드 도시에서 건재하다. 과거와 다르다면 네오 히피는 자연과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두 도시의 차이도 감지할 수 있다. 버클리의 히피문화는 고메게토 사례가 보여주듯이 주류문화로 자리 잡았다면, 베를린의 히피문화는 아직도 전위적, 전투적 정체성을 유지한다.
다시 돌아온 히피 공동체는 어떤 미래를 맞을까? 히피 공동체의 선택은 두 가지다. 도시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더 건설하던지, 아니면 공간의 여유가 있는 전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버클리나 베를린 모두 확실한 방향을 잡은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베를린의 미래가 버클리의 현재일 수도 있다. 히피운동이 고메게토 단어가 상징하듯이 고급화된 히피문화에서 정체돼 역동성을 상실하는 미래다.
최근 공유경제 동향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인다. 히피가 건설한 공동체 생활이 공유경제와 디지털 노마드와 융합되는 것이다. 베를린과 버클리 모두 히피 공동체에 익숙한 주민들이 협동조합 기반의 공동거주(cohousing) 공간을 확대한다. 일부는 다시 전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디지털 공유 빌리지 개념으로 기술 기반의 새로운 전원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공업자를 메이커로, 과거의 농부를 디지털 노마드로, 과거의 물리적 공유를 디지털 공유로 전환하는 실험이다. 21세기 수축사회와 환경우선 사회에서 히피가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부상하듯이, 히피 공동체도 지속 가능한 도시 모델로 재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