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정주 역사에서 골목길은 도시의 DNA와도 같은 존재였다. 현대 도시계획이 자동차 중심의 격자형 도로망을 선호하면서 골목의 가치는 종종 간과되었지만, 최근 들어 세계 각국에서는 걷기 좋은 도시, 인간 중심의 도시를 위한 핵심 요소로 골목길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독일의 도시들은 특히 이러한 골목길과 중정(Courtyard)을 도시 구조의 근간으로 발전시켜 왔다.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 독일 대도시의 중심 상권을 보면 대형 상가가 밀집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면이 좁고 깊이 방향으로 긴 건축물들이 대부분이다. 이 건물들은 종종 후면에 중정과 골목길을 두고, 그 내부에 상점, 공방, 카페, 창작 공간 등이 분포한다. 즉, 도시의 활력은 대로변이 아니라, 골목과 중정으로 구성된 내부 구조에서 발생한다.
골목에 대한 국가별 이해 차이
골목에 대한 이해는 국가마다 상이하다. 한국에서 골목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도시계획 이전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차량이 통행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주택가 사이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도시계획으로 형성된 슈퍼블록 내부에 존재하는 중앙선 없는 소규모 도로다. 이 두 형태 모두 한국 도시의 일상적 삶이 영위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미국에서 골목길(Alley)은 건물 블록 사이나 뒤편에 위치한 좁은 통로로, 주로 기능적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미국 도시계획에서 골목은 주로 서비스 접근(쓰레기 수거, 차고 진입, 공공설비 설치)을 위한 실용적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미국 대도시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과 같은 이민자 밀집 지역,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처럼 유럽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상업과 문화가 혼합된 골목길 문화가 발달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예외적인 사례로, 대부분의 미국 도시에서 골목은 '이차적 공간(Secondary Space)'으로 간주되었다.
영연방 국가들(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골목길은 미국과 유사하게 기능적 목적으로 조성되었으나,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영국의 경우 중세 도시 구조에서 유래한 좁은 골목길(Lane, Passage, Wynd)들이 오랜 역사적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서비스 통로를 넘어 도시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된다. 호주와 캐나다의 도시들은 영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계획도시 성격이 강해 골목이 더욱 체계적으로 배치되었다. 특히 멜버른과 밴쿠버의 도심 골목(Laneway)들은 최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활성화되면서 도시 재생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독일의 골목과 중정은 이러한 미국이나 영연방 국가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독일에서는 골목이 단순한 이동 통로나 서비스 공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계획되고 활용되는 도시 구조의 핵심 요소이다. 특히 중정과 연계된 골목 체계는 도시 내 사회적·경제적 활동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며, 이는 미국이나 영연방 국가와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독일의 골목상권은 미국이나 프랑스의 도시들과도 확연히 다르다. 미국은 도로와 주차장 중심의 개방형 상업지구가 주류이며, 프랑스는 파사드 연속성은 뛰어나지만 골목과 중정이 대부분 사적 공간으로 폐쇄되어 있다. 반면 독일은 중정이 반공적(Semi-Public)이고, 골목이 상업과 공동체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며, 시민 보행 경험에 기반한 도시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중정(Courtyard)은 일반적으로 '안뜰' 혹은 '중정'으로 번역되며, 건물 내부에 배치된 개방 공간으로서, 독일 도시계획에서는 사회적·경제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독일 골목상권의 역사: 중세와 근대
오늘날 독일의 골목상권은 단순한 상업적 전략이 아니라, 중세 자율 도시의 형성과 근대 도시계획의 구조화 과정에서 기원한 공간 조직의 산물이다. 특히 성문, 시장광장, 방사형 거리체계, 중정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 배치 방식은 골목상권이 형성되고 진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중세 독일의 상업도시인 뤼벡에서는 골목과 중정이 도시 구성의 핵심이었다. 대표적인 사례인 퓌히팅스호프(Füchtingshof)는 17세기 상인의 유산으로 조성된 은퇴자용 공동주거 공간이다. 이곳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진입한 뒤 중정으로 들어가야만 드러나는 구조로, 복지적 기능과 공동체 거주의 결합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다만 이러한 중정형 공간은 처음부터 고밀도로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전원적 슈퍼블록(Superblock) 안에 단독주택이 널찍하게 배치되었으며, 뒷마당과 정원은 개별 공간으로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 증가와 토지 압력에 따라 단독주택 사이 공간이 점차 채워지고, 정원은 공유 중정으로 전환, 골목은 주거 공간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변모하였다. 오늘날 뤼벡의 복잡한 골목 구조는 이와 같은 점진적 진화의 결과이며, 도시 내부의 유연성과 자생적 재구성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근대에 접어들며 도시계획은 점차 체계적이고 규범적인 형태로 발전하였다. 베를린은 19세기 후반 산업화와 급격한 인구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1862년 제임스 호브레히트(James Hobrecht)가 수립한 『베를린 주변 지역 개발 계획(Bebauungsplan der Umgebungen Berlins)』을 도입하였다. 이른바 '호브레히트 플랜(Hobrecht-Plan)'은 격자형 도로망과 폐쇄형 블록 구조를 기반으로 하며, 위생과 교통의 효율성, 토지 이용의 극대화를 추구했다 (전진성, 2015). 이 계획은 도시계획 차원을 넘어, 베를린에서 대량으로 공급된 '병영식 임대주택(Mietskaserne, 미츠카제르너)'의 공간적 토대가 되었다.
미츠커제르너는 특정 건축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위계와 주거 밀도를 물리적으로 조직하는 도시계획적 프레임이다. 이 구조는 일반적으로 도로에 면한 전면부(Main building)에 상가와 거주 공간을 배치하고, 그 후면에 횡단 블록과 후면 블록을 연속적으로 연결해 내부 중정(Hof)을 형성하는 폐쇄형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중정 구조는 채광과 통풍의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도시 내 노동자 계층의 대량 수용을 가능케 했으며, 결과적으로 다양한 건축 양식—네오르네상스, 역사주의(Historismus), 초기 근대주의(Frühe Moderne)—이 동일한 도시 구조 내에 혼재하게 되었다.
오늘날 베를린 미테(Mitte), 프리드리히샤인(Friedrichshain), 노이쾰른(Neukölln) 등지의 골목상권은 바로 이 근대 도시계획의 구조를 기반으로 창의적 재해석이 이뤄진 공간들이다. 대도시일수록 이러한 근대 블록 구조를 더욱 명확히 관찰할 수 있으며, 상업, 주거, 창작 활동이 함께 밀집된 고밀·혼합 구조는 21세기 도시 창의성의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
골목상권 개발 사례: 베를린 하커셔 훼페
베를린 미테(Mitte)의 하커셔 훼페(Hackesche Höfe)는 중정 기반의 골목상권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1906년 유겐트스틸(Jugendstil) 양식으로 건축된 이 복합단지는 8개의 중정이 연속적으로 연결되며, 각 중정은 고유한 테마와 용도를 갖는다.
하커셔 훼페의 가장 큰 특징은 독립 브랜드와 디자이너 중심의 생태계다. 대형 체인 브랜드는 철저히 배제되고, 대신 창작자가 직접 운영하는 패션 숍, 공예 공방, 독립 서점, 소규모 갤러리, 장인의 카페 등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내부 건축 요소는 보존되었지만, 창작자들이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고유한 공간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특히 공연장(카멜레온 극장, Chamäleon Theater), 다큐멘터리 영화관, 문학 전문서점 등의 입점은 상업적 소비를 넘어 문화적 몰입과 창의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골목형 도시 구조를 만들어낸다. 하커셔 훼페는 단지 상업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창작자 마을이자 브랜드 실험실로 기능한다.
골목상권 개발 사례: 함부르크 슈타트훼페
슈타트훼페 함부르크(Stadthöfe Hamburg)는 1888~1916년 사이 지어진 구 행정건물을 재생한 프로젝트로, 함부르크 중심부의 민감한 역사 지역에 위치한다. 이 건물 중 하나는 1933년부터 1943년까지 나치 게슈타포(Gestapo)의 본부로 사용되었으며, 지하 고문실과 심문실을 연결하는 통로도 여전히 존재한다.
개발사 퀀텀(Quantum)은 이 구역을 88세대의 고급 임대주택, 호텔, 레스토랑, 오피스, 고급 상점이 혼합된 복합도시 단지로 전환하였고, 골목과 중정으로 연결된 폐쇄형 블록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David Chipperfield Architects)와 같은 국제 건축가 그룹이 참여한 이 개발은 역사적 공간을 상업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독일 도시재생의 복합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다만 '비앙브뉴 모인 모인 슈타트호프(Bienvenue moin moin Stadthof)'라고 적힌 금속 간판이 나치 강제수용소의 표어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이 일며 철거되었고, 역사적 장소와 상업 개발 간 긴장관계가 부각되었다. 개발사는 250㎡ 규모의 추모 전시 공간과 '한숨의 통로(Passage of Sighs)'를 보존하였으며, 전시공간과 서점, 카페를 함께 조성했다. 이는 기억과 상업이 충돌하며 공존하는 독일식 도시공간 설계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왜 골목길인가? – 독일 도시담론에서의 위치
독일 도시계획에서 골목과 중정은 단지 통행 공간이 아니라, 도시 리듬과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구조적 장치다. 중정은 반공적(semi-public) 공간으로서 개인과 공동체,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연결하는 접속지점이며, 골목은 그 흐름을 열어주는 사회적 통로다.
건축가 헤르만 헤르츠버거(Herman Hertzberger)는 도시공간에서의 '거리의 깊이(depth of street)'를 강조하며, 골목은 도시의 심층을 드러내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독일 골목상권은 일방향 소비가 아니라 상호작용과 체류, 관계 기반의 도시 경험을 전제로 하며, 도시의 인간화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독일의 골목과 중정은 단순한 전통이나 미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공간의 조직 원리이자, 상업과 문화, 기억과 실험이 공존하는 도시 인프라의 핵심이다.
한국에서도 골목상권 개발이 활발하지만, 단순한 형태 모방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철학과 사회적 기능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좋은 골목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머무르게 하며, 도시를 살아 있는 공동체로 만든다.
참고문헌
Draeger, Heinz-Joachim. Lubeck Illustrated. Boyens, 2015.
김상규. 베를린 디자인 탐사. 스크랩1, 2024.
손관승. me, 베를린에서 나을 만났다. 노란잠수함, 2018.
전진성.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천년의 상상,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