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읽는 도시경제

by 골목길 경제학자

건축으로 읽는 도시경제


브런치북 '베를린을 걷다, 경제를 읽다'는 베를린 건축과 경제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2025년 4월 23일부터 30일까지 베를린을 여행하며, 나는 이 도시가 어떻게 건축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과 삶의 방식, 그리고 경제적 활력을 만들어내는지를 묻고자 했다. 거리를 걸으며 관찰한 건물의 형태와 배치, 도시 공간의 구성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작과 상업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연결성의 핵심에는 베를린의 창의성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 건축환경이 있다. 특히 다중심형 구조와 '키츠(Kiez)'라 불리는 동네 단위의 생활권이 두드러진다. 이 독특한 구조는 베를린을 ‘동네가 강한 도시’로 만들며, 지속가능한 창의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된다.


동네 중심 도시 구조 속에서 미츠커제르네(Mietskasernen, 19세기말 도입된 대도시의 임대 주거형 블록 구조), 골목과 중정(Courtyard), 상인주택 등 단위 건축물의 설계와 재생 역시 창작과 상업 활동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베를린의 전통시장, 골목상권, 히피 공동체, 그리고 복합문화공간은 이러한 건축적 특성이 지역경제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베를린의 건축은 단지 미적·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도시경제를 구성하는 실질적 자산이기도 하다. 괴테가 바라본 ‘오래된 미래’는 역사성과 진보성이 공존하는 도시 자산의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며, 벤야민이 우려한 상업문화는 도시공간이 어떻게 자본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남서부 지역의 단아한 부르주아 건축환경은 안정된 삶의 기반으로서 주거와 자산의 균형 구조를 형성하며, 프리드리히스하인의 히피 공동체는 기술과 공유경제를 매개로 창의적 자영업과 협업 기반 비즈니스 생태계를 실현해 왔다.


여기에 더해, 도시재생의 수도라고 부를 수 있는 함부르크는 항만 산업과 문화산업의 재조합을 통해 고용과 창출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뤼벡은 중세 상인도시의 원형을 보존함으로써 관광과 상업 기반의 지역경제를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베를린과 그 주변 도시들은 역사와 건축, 그리고 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도시 모델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과 경제의 이상적인 결합이 언제나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산업, 창작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성공 사례들이 존재하는 한편, 탁월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실질적 활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사례들도 있다.


베를린의 한자비에텔(Hansaviertel)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지역은 1957년 인터바우(Interbau) 전시를 계기로 르코르뷔지에, 알바 알토, 오스카 니마이어 등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여한 근대건축 실험의 장이었다. 그러나 국제적 명성과 건축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시간이 흐르며 도시민의 일상과 유리된 공간이 되었고, 지역경제에도 뚜렷한 활력을 불어넣지 못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수한 디자인이 반드시 활기찬 도시생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건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결국 도시는 삶의 무대이며, 그 무대가 작동하려면 기능적 공간 구성과 경제적 역동성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처럼 다양한 관찰을 종합하면, 베를린 건축의 정체성은 ‘절제의 미학’으로 요약된다. 과도한 장식이나 화려함보다 기능과 본질에 충실한 베를린의 건축물은 경제적 실용성과 문화적 정체성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 절제는 유럽의 다른 화려한 수도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베를린만의 미덕이며,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의 하나의 모델로 읽힌다. 결국 베를린의 거리를 걷고, 건축에 담긴 경제적 철학을 읽어내는 일은 도시의 미래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성찰 속에서 서울과 베를린의 차이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베를린의 소상공인들이 도시 공간과 맺는 관계는 서울과는 사뭇 다르며, 흥미로운 비교 지점을 제공한다. 건축물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의 관계를 통해 두 도시의 상이한 경제 패러다임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 브런치북은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본 건축 여행기이자,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질문의 기록이다. 이 여행기가 독자들에게 베를린과 독일 북부 도시들의 매력을 전하는 것을 넘어, 건축이 단지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경제활동의 토대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 도시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시산업은 동네에서, 그리고 건축에서 시작된다. 특히 활력을 잃어가는 지역 소도시라면, 창조적 공간과 건축환경의 재구성을 통해 ‘동네가 강한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도시의 미래는 대규모 산업이 아니라, 일상과 창의가 공존하는 건축적 토대 위에서 다시 쓰여야 한다.



제목

베를린을 걷다, 경제를 읽다


목차

1장 건축으로 읽는 도시경제

2장 동네가 강한 도시, 베를린

3장 괴테의 오래된 미래

4장 베를린은 벤야민의 도시인가

5장 부르주아 도시의 재발견

6장 기술과 공유로 복원되는 히피 공동체

7장 건축가의 도시

8장 베를린 전통시장의 비밀

49장 골목상권의 독일 모델

10장 도시재생의 수도 함부르크

11장 한자도시 뤼벡

12장 베를린 정체성: 절제의 미학

13장 한국의 도시 모델, 크리에이터 타운

14장 도시와 소상공인: 서울과 베를린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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