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는 로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로컬은 이전 세대의 귀농귀촌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이 ‘피곤한’ 도시를 떠나 농업과 농촌에서 대안적인 일과 삶을 찾는다면, 우리는 농촌과 도시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자라거나 사는 동네에서 좀 더 자신에게 충실하고 지역 밀착적인 일과 삶을 추구합니다.
로컬 지향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서구 사회는 이미 1970년대부터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탈물질주의 사회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미국과 일본의 탈물질주의 현상은 더욱 확산됐습니다. 탈물질주의 경제를 실현하려면 지역 생산, 지역 소비 중심으로, 즉 로컬 지향으로 생산과 소비문화를 바꾸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한국의 로컬 지향은 2000년 중반 골목길의 부상과 궤를 같이해 왔습니다. 로컬을 지향하는 사람이 바로 획일적인 백화점과 쇼핑몰보다는 개성 있고 다양한 가게가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골목을 선호하는 소비자입니다. 한국이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탈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이들이 로컬 지향과 골목길 현상을 주도해왔습니다.
골목상권과 로컬 지향의 관계는 <우리 동네 스토어>가 소개한 가게의 영업장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스토어는 거의 예외 없이 골목상권에서 둥지를 틀었습니다. 골목길을 선호하는 이유는 골목길 공간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구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동네 스토어가 전국 곳곳에서 꾸준하게 늘다 보니, 이제 동네 문화는 일부 소비자가 모이는 하위문화를 벗어나 다수의 소비자가 참여하는 주류 문화로 진입했습니다. 최근 언론이 “로컬 지향 시대”, “로컬 전성시대”, “공간 운영자 전성시대”의 표현을 쓸 정도로 동네 스토어와 이들이 활동하는 골목상권이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됐습니다.
문제는 미래입니다. 앞으로도 동네 스토어가 계속 성장할까요?
최근 뉴스는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2010년 중반에 확산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최근 몰아닥친 불경기가 홍대 앞, 삼청동, 경리단길 등 그동안 불황을 모르던 골목상권 중심지까지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방관은 대안이 아닙니다. 동네 스토어와 골목상권은 미래산업입니다. 지역성과 연결된 고유의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동네 스토어는 이미 관광산업뿐 아니라 문화산업과 창조산업의 핵심 축으로 기능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동네 스토어 운영자는 하나같이 자신의 공간을 하나의 예술의 장, 창작의 장으로 인식합니다. 내국인과 외국인 여행자들이 골목상권과 동네 스토어에 몰리는 배경에는 이런 콘텐츠의 힘이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일까요? 현재 전 사회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안 논의에서 제일 중요한 과정이 대화와 소통입니다. 동네 스토어 운영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우리 동네 스토어>가 가게와 소비자, 가게와 커뮤니티, 가게와 정부의 소통에 크게 기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