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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의 비극: 제3화 국립공원

by 골목길 경제학자

한국 도시의 비극: 제3화 국립공원


1. 도입부: 세계에서 가장 산악에 가까운 도시, 서울

서울은 세계 대도시 중 가장 산악에 가까운 곳 중 하나다. 시내 곳곳에서 산이 보이고, 지하철로 30분이면 국립공원에 닿을 수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으로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다.


외국인들이 서울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이 산악 지역이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 뉴욕의 센트럴 파크가 도시의 자랑거리인 것처럼, 서울의 북한산은 세계적인 도시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북한산의 많은 입구마을들은 도시의 활력과 단절된 채 낙후되어 있거나, 획일적인 '먹거리마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 자원이 도시 발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왜 한국의 국립공원 입구마을들은 세계적인 산악 관광지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스위스의 알파인 빌리지나 일본의 산촌 같은 매력적인 산악마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2. 우이동 사례: 서울의 알파인 빌리지가 될 수 있었던 곳

서울 강북구 우이동은 북한산 국립공원을 끼고 있으며, 면적의 81%를 북한산 국립공원이 차지하는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동네로 손꼽힌다. 북한산우이역에서 우이령길쪽 약 1.2km 구간에 30여 개의 음식점이 모여 있는 우이동먹거리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젊은 등산객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북한산의 대표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우이동은 이론적으로 세계적인 알파인 빌리지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이신설경전철로 도심과 직접 연결되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우이천 맑은 계곡과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외 등산객들의 방문이 꾸준하다. 더욱이 2021년 파라스파라 서울이라는 서울 유일의 리조트가 개관하면서 도심 속 휴양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아쉽다. 우이동먹거리마을은 대부분 백숙이나 보양식 음식점들로, 혼밥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렵고,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산악 음식점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강북구가 '먹거리마을'이라는 기존 이름의 한계성을 벗어나기 위해 새 이름을 공모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전국 국립공원 입구마을의 공통된 문제

우이동의 상황은 전국 국립공원 입구마을의 보편적 현상이다. 설악산 입구마을도 C지구 온천마을이 철거 현장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신흥사 코 앞의 설악산관광호텔마저 완전 폐허 상태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마을은 어마어마한 자연과 문화 자원에도 불구하고 마을 이름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무등산, 팔공산 등 전국의 국립공원 입구마을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립공원 입구마을 문제는 개별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체의 구조적 문제다. 천혜의 자연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산악 관광지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문제들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히말라야 서사 중심의 산악 문화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전국의 산악박물관과 문화시설들은 히말라야 등정과 같은 극한 산악 활동에만 초점을 맞춘다. 우이동에 있는 산악문화 H·U·B는 Himalaya, Um Hong-gil, Bukhansan의 약자로, 히말라야 서사가 중심이다.


이 문제는 속초 국립산악박물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설악산 입구마을에 사는 한 아이가 민첩하게 트랙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아웃도어 문화에 노출된 지역 주민으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 전시를 보면 '산악이 알고 싶은 사람 오세요, 산악 장비 발달사 알고 싶은 사람 오세요'라는 식의 관람 중심 접근만 있을 뿐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산악 장비 한번 같이 만들어 보세요'라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등산하면 장비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장비의 고마움을 알면 누가 어디서 만드는지 궁금해지며, 나도 한번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창업 문화는 별거 아니다. 직접 만들어보는 문화(DIY)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산악박물관 전시를 본 그 아이가 아웃도어 브랜드 창업을 꿈꿀 가능성은 제로다. 히말라야 등정과 산악 엘리트들의 업적만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꽤 큰 아웃도어 기업들이 많지만, 기업인들은 산악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산악 서사가 생활문화로 쓰이지 않고 히말라야 등정 신화로만 쓰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아웃도어 산업의 최적지인 속초에 이렇다 할 아웃도어 산업이 없다. 지역문화를 생활화해야 자생적인 지역산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강북구도 우이동에서 산악인의 히말라야 업적보다는 그가 성장한 북한산의 산악문화를 기념해야 한다. 우리는 늘 세계적인 산악인의 해외 업적을 기리느라, 정작 지역 산악 산업 발전은 놓치고 있다. 스위스의 산악마을들은 전통 공예에서 시작해 맘무트 같은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일본의 니가타현 작은 산촌에서는 스노우피크라는 혁신적인 캠핑 브랜드가 태어났다. 이러한 접근은 일상적인 등산 문화와 산악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


둘째, 중간 산업의 부재다. 일상적인 등산과 히말라야 원정 사이에는 다양한 '중간 산업'이 존재해야 한다. 중간 산업이란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 개념에서 착안한 것으로, 첨단 기술과 일상 기술 사이의 적정한 수준에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산업을 의미한다.


산악 분야에서 중간 산업은 알파인 빌리지, 산악 리조트, 아웃도어 브랜드, 산악 콘텐츠, 로컬 메이커스페이스, 산악 가이드 서비스, 친환경 장비 제작, 산악 문화 콘텐츠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중간 산업은 히말라야 원정처럼 극소수 엘리트만 접근할 수 있는 극한 기술도 아니고, 단순한 일상 등산에 머무르는 것도 아닌, 지역 주민들이 창의적으로 참여하며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적정 기술 수준의 산업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립공원 입구마을에는 이러한 중간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했다.


셋째, 획일적인 상권 구조다. 전국의 국립공원 입구마을은 예외 없이 산채정식과 백숙 중심의 음식점들로 채워져 있다. 커피, 베이커리,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 같은 현대적 골목상권의 기본 업종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넷째, 도시 계획의 구조적 한계다. 많은 국립공원 입구마을들이 산악 입구와 상당히 떨어져 있고, 상업지구와 주거지구가 분리되어 있어 관광 문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족은 외곽의 더 좋은 시설을 이용하고, 보행족에게는 국립공원까지 걸어가기 애매모호한 거리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전국적 현실은 북한산 우이동, 설악산 설악동, 속리산 사내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대표 국립공원조차 제대로 된 입구마을을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강북구의 한계와 미래 가능성

강북구는 북한산 보존으로 인한 개발 제한과 경관을 위한 고도 제한 등 규제가 있지만, 이를 능가하는 자연의 혜택을 받는다. 우이동에는 2022년 '북한산 국제클라이밍센터'가 개관하고, 서울도심등산관광센터가 운영되고 있어 아웃도어 인프라의 기초는 갖춰지고 있다.


강북구는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지하 6층~지상 17층 규모의 신청사를 건설 중이지만, 우이동과 같은 산악 지역의 특성을 살린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친화도시 지정 등 일반적인 도시 정책에는 적극적이지만, 북한산이라는 핵심 자원을 활용한 차별화된 발전 전략은 부족하다.


최근 서울시가 '우이동 일대 버스 차고지·주차장 복합개발 기본구상 용역'을 완료하고, 현재 5곳에 분산된 공영 버스 차고지와 공영 주차장, 민영 차고지를 한 곳으로 통합하여 남는 부지에는 숙박시설과 인근 북한산 등산객들을 위한 특화시설 등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복합개발 계획도 한계가 있다. 첫째,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의 접근에 머물고 있어 익산역 복합환승센터와 같은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다. 대형 상업시설과 숙박시설 위주의 개발은 지역의 특색과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며, 소규모 창의적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둘째, 민영 차고지 매입 사례가 많지 않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셋째, 단순히 '북한산 등산객들을 위한 특화시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관광객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알파인 빌리지가 되기 위해서는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산악을 사랑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직주락 공간이 필요하다. 복합개발이 성공하려면 대규모 자본 투입보다는 지역의 유기적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5. 성공 사례: 구미 금오산 입구마을의 알파인 빌리지 인프라

반면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도립공원인 구미 금오산은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연간 3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성공적인 산악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금오산 입구마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체계적인 알파인 빌리지 인프라 구축에 있다. 구미시내에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접근성과 1974년부터 운행된 케이블카가 입구로부터 산 중턱의 해운사 옆까지 연결되어 연평균 25만~30만 명이 이용하는 등 기본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오산이 진정한 의미의 알파인 빌리지 문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0-80년대 관광호텔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호텔금오산은 설악산 관광호텔, 속리산 관광호텔, 수안보 관광호텔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게 그리운 추억을 선사한다. 유럽 알파인 빌리지 분위기의 도립공원 입구마을에서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체류형 문화 경험이 가능하다.


금오산의 성공은 산악 관광과 도시 문화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 구미역 주변의 금리단길, 금오천 주변의 문화시설과 산책로, 그리고 삼일문고 같은 독립서점이 제공하는 도시문화가 어우러져 종합적인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등산 관광을 넘어 1970-80년대 한국 관광의 황금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금오산 입구마을의 포괄적인 편의시설이다. 주차장, 화장실, 음수대, 파고라, 족구장, 체력단련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단순한 등산을 넘어 종합적인 레저 활동이 가능하다. 또한 1993년 개장한 테마파크 금오랜드와 금오랜드 아이스링크 등 사계절 이용 가능한 시설들이 조성되어 있다.


6. 희망의 신호: 파라스파라 서울의 도심 리조트 모델

우이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는 2021년 개관한 파라스파라 서울이다. 북한산 국립공원 자락 2만 3천 평 대자연의 품 속에 자리한 에코 럭셔리 리조트로 서울의 유일한 리조트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파라스파라 서울의 성공은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개관 6개월여 만에 '2022 한국소비자 평가 최고의 브랜드' 리조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강남에서 40분, 서울 어디에서도 1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접근성을 바탕으로 도심과 자연을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특히 파라스파라는 팬데믹 이후 새로운 휴양 트렌드로 떠오른 '체류형 리조트'의 개념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섬세하고 품격 있는 서비스와 북한산의 자연환경을 결합하여 도심에서도 충분한 휴양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 사례는 우이동이 단순한 '먹거리마을'을 넘어 세계적 수준의 알파인 빌리지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다. 파라스파라가 제시한 '서울에서 서울을 벗어나다'는 컨셉은 바로 알파인 빌리지의 핵심 가치와 일치한다.


7. 대안은 건축 주도 크리에이터 타운이다

한국의 국립공원 입구마을들은 세계적인 산악 관광지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연 자원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히말라야 서사와 산채정식 사이에 잊힌 수많은 '중간 산업'들을 복원해야 한다.


중간 산업은 단순히 경제적 개념이 아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적정 기술 수준의 산업 영역이다. 극한 기술과 일상 기술 사이에서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이다.


우이동을 비롯한 전국의 국립공원 입구마을이 진정한 알파인 빌리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접근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악문화의 생활화가 출발점이다. 히말라야 등정이 아닌 일상적인 등산 경험을 산업적 아이디어로 발전시켜야 한다. 알파인 빌리지, 산악 리조트, 아웃도어와 친환경 브랜드, 산악 콘텐츠 등 일상의 산행과 히말라야 사이에 잊힌 많은 단어를 복원해야 한다. 이러한 중간 산업 문화가 정착해야 파라스파라 서울도 알파인 빌리지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서울의 산악 지역을 가장 큰 매력으로 생각하는데, 북한산의 많은 입구마을 중 세계적인 명소로 인정받는 곳은 없다. 산악문화의 산업화는 관광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로컬 메이커스페이스와 같은 창업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 공간은 단순한 작업 공간을 넘어, 교육, 네트워킹, 마케팅, 판매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 아웃도어 장비를 직접 만들어보고, 산악 콘텐츠를 제작하며, 지역 특색을 살린 브랜드를 개발하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골목상권의 다양화를 통해 현재의 획일적인 음식점 중심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커피, 베이커리,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는 물론, 아웃도어 장비점, 로컬 브랜드숍, 공유 오피스, 코리빙 등 크리에이터들이 직주락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들어서야 한다.


직주락 근접성을 실현하는 마을 단위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산악을 사랑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실제로 거주하면서 일하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스위스의 알파인 빌리지나 일본의 혁신적인 산촌들이 보여주는 모델이다.


산악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아웃도어 브랜드, 산악 콘텐츠, 친환경 제품, 웰니스 서비스 등 산악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들이 입구마을에 집적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관광업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를 만드는 길이다.


우이동은 서울의 알파인 빌리지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파라스파라 서울이 보여준 것처럼 도심 속 휴양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그 주변에 창의적인 산악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차례다.


알파인 빌리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산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그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창의적인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는 곳이다. 건축이 주도하는 크리에이터 타운 조성을 통해 우이동이 진정한 서울의 알파인 빌리지로 거듭날 때, 한국의 국립공원 입구마을들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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