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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지원, 농업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구조적 의존을 넘어 생태계 중심 해법으로

by 골목길 경제학자

소상공인 지원, 농업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구조적 의존을 넘어 생태계 중심 해법으로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소상공인 지원 확대 공약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소상공인 지원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현재 지원 규모부터 확인해 보자. 2025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 지원 예산은 5조 9,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전국 570만 자영업자 기준으로 계산하면 1인당 연간 약 100만 원 수준이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 멈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농업 지원 정책의 역사를 보면 말이다.


농업 정책의 현실은 소상공인 지원의 미래를 예고한다. 2024년 기준, 100만 농가를 위해 18조 3,330억 원의 농업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농가당 연간 1,800만 원이 넘는 셈이다. 직불금, 농자재 지원, 기반시설 투자, 인력 육성 등 다양한 명목의 예산이 수십 년째 농업을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수십 년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농업 경쟁력은 여전히 취약하다.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의 6-70% 선에 머물러 있다. 소상공인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인가?


이미 그 조짐이 보인다. 2002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통시장 지원이 2020년에는 5천억 원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2020년 기준 30만 전통시장 상인 일인당 연간 167만 원을 지원하는 수준이다. 일반 소상공인 지원보다 높고, 농업인 지원에 비해서는 낮지만 지원 강도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만약 570만 소상공인이 농업과 동일한 수준의 정부 지원을 받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까?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연간 100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 국가예산 총지출 657조 원의 15%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지원이 근본적 경쟁력 향상이 아닌 단순한 생존 연장에 그칠 가능성이다. 농업이 그 증거다.


물론 이런 단순 계산에는 한계가 있다. 농업예산 전체가 농가에 직접 지급되는 보조금은 아니며, 기반시설 투자나 연구개발비 등 간접 지원도 일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계산이 보여주는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가 확산될 경우 국가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소프트랜딩의 한계와 선택의 필요성

현재 정부의 소상공인 정책은 '소프트랜딩' 기조를 취하고 있다. 금융 지원과 단기 부양책으로 소상공인 산업의 급격한 붕괴는 막되, 점진적인 폐업과 재취업 지원을 통해 소상공인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전략이다.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이해할 만한 접근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질문이 빠져있다. 어떤 소상공인과 어떤 소상공인 분야를 살릴 것인가?


모든 소상공인을 똑같이 지원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소상공인을 세 가지 성격으로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일반 리테일은 온라인과 대기업에 상당수 대체될 수 있다. 동네 마트, 의류점, 전자제품점, 서점 등 상품 판매가 주인 업종들은 온라인 쇼핑과 대형마트의 가격 경쟁력과 편의성을 따라가기 어렵다.


둘째, 동네 서비스는 대면·즉시·신뢰 기반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이발소, 미용실, 세탁소, 수리점, 부동산 중개업 등은 개인 맞춤 서비스, 긴급 대응, 지속적 신뢰 관계가 핵심이어서 대기업이나 온라인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셋째, 크리에이터 콘텐츠는 대체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독특한 카페, 개성 있는 맛집, 체험 공간,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종들은 온라인으로 복제할 수 없는 고유한 동네 경험과 문화적 가치를 창출한다.


중요한 것은 일반 리테일도 동네 서비스와 크리에이터 콘텐츠로 전환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동네 빵집이 베이킹 클래스를 열고, 서점이 문화공간으로 변모하며, 화장품점이 뷰티 체험공간이 되는 식이다. 이러한 전환 덕분에 온라인 부상으로 인해 오프라인 소상공인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개별 소상공인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는 이들의 비즈니스 환경과 생태계를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 없이는 농업처럼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도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크리에이터 소상공인, 유일한 생존 해법

현재 온라인 쇼핑몰과 대기업 유통업체에 맞서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소상공인은 크리에이터 소상공인뿐이다. 동네 서비스 소상공인은 당분간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는 있지만, 대기업 진출로 수세 국면을 극복하긴 어렵다. 반면 크리에이터 소상공인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상인을 넘어서 고유한 콘텐츠와 경험을 창조하는 문화 생산자다.


서울 서교동의 독립서점들은 책 판매를 넘어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 전시를 기획한다. 성수동의 개성 있는 카페들은 커피 한 잔을 넘어 공간 디자인, 브랜드 스토리, 문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익선동의 한옥 레스토랑들은 음식을 넘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이들이 창조하는 공간적 경험과 문화적 가치는 온라인으로 복제할 수 없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크리에이터 소상공인들이 형성하는 크리에이터 상권 역시 마찬가지다. 홍대, 한남동, 삼청동 같은 곳들은 개별 점포를 넘어 상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가 된다. 방문객들은 특정 상품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동네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를 경험하러 온다.


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상권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동네 단위 생활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들은 동네를 단순한 주거공간에서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문화 창조자들이다.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동네 중심 생활패턴에서 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생태계가 답이다: 건축환경과 도시 솔루션

문제는 개별 소상공인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핵심은 생태계다. 현재 한국에서 활력을 유지하는 상권들을 분석해 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 골목상권과 같은 특정 건축환경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좁은 골목, 낮은 층고, 작은 규모의 점포, 보행 중심의 거리 구조가 만드는 친밀한 공간감이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생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반면 신도시의 넓은 대로변 상가나 대형 상가건물들은 건축적으로 콘텐츠 생산에 불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창의적인 소상공인이라도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의 방향은 명확하다. 문화적 잠재력이 있는 지역에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건축환경을 공급하고, 구조적으로 콘텐츠 생산이 어려운 상권의 신규 공급은 중단해야 한다. 신도시 상가와 재개발 상가의 무분별한 공급이 기존 골목상권을 붕괴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도시적 솔루션으로의 전환

소상공인의 기본 생태계는 도시다. 따라서 소상공인 문제는 도시적 솔루션으로 접근해야 한다. 건축환경 조성, 상가총량 관리, 상가주택 공급 등 도시계획과 건축 정책이 소상공인 생태계를 좌우한다.


개별 소상공인에게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동네 서비스와 크리에이터 소상공인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상권을 조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상권별로 차별화된 건축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대형 상가보다는 소규모 점포들이 모인 골목형 상가를 늘려야 한다. 또한 신도시 개발 시 장사하기 어려운 획일적인 상가 공급보다는 보행환경, 상가주택, 동선연결, 문화와 공동체 시설 배치 등 소상공인이 진입해 성공할 수 있는 상권의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소상공인 산업의 농업화를 막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570만 자영업자(소상공인) 모두를 정부 보조금으로 살릴 수는 없다. 대신 동네 서비스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미래 경쟁력을 갖춘 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소상공인도, 한국 경제도 살리는 현실적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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