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대부분의 분석은 익숙한 틀에 머물러 있다. 노동 대 자본이라는 계급론적 접근,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적 스펙트럼, 혹은 신좌파 대 신우파라는 새로운 이분법으로 선거 결과를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정치 분석 방식으로는 이번 선거가 보여준 복잡하고 모순적인 양상들—IT 종사자들의 진보 성향, 젊은 세대의 분화된 정치적 선택, 전통적 지역주의와 새로운 가치 갈등의 중첩—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산업사회를 전제로 한 20세기적 정치 범주들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 개인화된 경제활동, 탈중앙화된 소통 방식이 일상화된 시대에 여전히 집단적 이해관계나 이념적 대립으로만 정치를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번 대선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를 문명사 관점에서 분석한 대표적인 지식인은 앨빈 토플러다. 그는 1980년 '제3의 물결"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을 세 개의 거대한 물결로 구분했다. 농업혁명으로 시작된 제1물결(농경사회)은 수천 년간 인류의 삶을 지배했고, 18세기 산업혁명이 이끈 제2물결(산업사회)은 200여 년간 현대 문명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제3물결(정보사회)은 현재 진행형으로 인류를 새로운 문명 단계로 이끌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세 개의 거대한 물결로 구분했다. 농업혁명으로 시작된 제1물결(농경사회)은 수천 년간 인류의 삶을 지배했고, 18세기 산업혁명이 이끈 제2물결(산업사회)은 200여 년간 현대 문명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제3물결(정보사회)은 현재 진행형으로 인류를 새로운 문명 단계로 이끌고 있다.
제3물결의 핵심은 제2물결 산업사회의 여섯 가지 원리—표준화, 전문화,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를 뒤엎는 '탈대중화(demassification)'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중매체로 대표되는 산업문명이 해체되고, 개인화되고 분산화된 새로운 문명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프로슈머(prosumer)'다.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이들은 수동적 소비자에서 능동적 창조자로 변모하며, 중앙집권적 대기업 체제를 수평적 네트워크 경제로 대체한다.
토플러가 특별한 이유는 문명전환이 수반하는 정치 전환에 대한 논의다. 그는 이런 문명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2물결과 제3물결 세력 간의 충돌을 초투쟁(super-struggle)'으로 표현한다. 초투쟁은 단순한 이념 대립이나 정치적 갈등을 넘어선 문명적 차원의 투쟁이다. 산업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은 기존의 중앙집권적이고 표준화된 체제를 고수하려 하고, 제3물결 세력은 탈중앙화되고 개인화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토플러의 초투쟁 관점에서 6월 대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재명 후보의 IT와 사회적 경제 정책, 이준석 후보의 자유주의적 가치관 등 일부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고 제3물결 정치의 정체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는 진정한 초투쟁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제1·2 물결 연합체들 간의 경쟁에 그쳤다. 제3물결의 핵심 세력인 프로슈머들은 정치적으로 결집하지 못했고, 기존 정치 프레임워크는 21세기적 변화를 담아내지 못했다. 한국 정치가 여전히 20세기적 틀에 갇혀 있음을 확인시켜 준 선거였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분석하면, 한국 정치의 근본적 한계가 드러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9.42%의 득표율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를 8.27% 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지만, 이는 진정한 제3물결 세력의 승리가 아닌 제1·2 물결 연합체 간의 경쟁에서 한쪽이 승리한 결과였다.
김문수 후보의 국민의 힘은 전형적인 제1·2 물결 연합체였다. 기독교계와 영남 지역주의라는 제1물결적 요소와 대기업 중심의 산업자본, 전통 제조업이라는 제2물결이 결합된 구조였다. 김문수 후보가 'AI·에너지 3대 강국'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여전히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중앙집권적 추진을 전제로 한 제2물결적 정책 구상이었다.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은 더 복잡한 연합체였다. 호남 지역주의라는 제1물결적 요소, 노동계급과 산업시대 관료제라는 제2물결적 요소, 그리고 환경·인권·젠더 등의 의제를 다루는 신좌파라는 제3물결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었다. 이재명 후보가 '인공지능 대전환을 통한 AI 3강 도약'을 정책 첫 번째로 내세운 것은 분명 제3물결적 지향을 보여주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은 여전히 중앙정부 중심의 대규모 투자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8.34%를 득표한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준석은 신좌파(페미니즘)에 대응하는 신우파적 성격(반페미니즘)을 띠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 메커니즘을 중시하면서도 전통적 보수와는 다른 가치관을 보여준다. 그의 지지층은 주로 젊은 전문직, IT 종사자, 1인 가구 등으로, 제3물결적 생활양식을 갖춘 계층이었다.
하지만 이준석의 신우파 역시 진정한 제3물결 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역시 기존 정치 프레임워크 안에서 좌우 대립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토플러가 강조한 탈중앙화, 자발적 공동체, 프로슈머 경제와는 거리가 있다.
진정한 문제는 토플러가 제3물결의 핵심으로 제시한 프로슈머 그룹이 정치적으로 결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에는 이미 활발한 크리에이터 경제가 존재한다. 유튜버, 인플루언서, 개인 방송인,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1인 기업가, 플랫폼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노사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창조성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당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거부감을 가지며,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성향상 집단적 정치행동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이재명 후보가 수도권에서 68만 표를 추가로 확보한 것을 두고 제3물결의 확산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더 복잡한 양상이다. 한국의 IT 산업 종사자들이 진보 성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제3물결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4–50대 IT 종사자들의 진보 성향은 1980년대 민주화 세대의 가치관이 연장된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산업시대의 좌우 대립 구조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삼성, LG, 네이버, 카카오 같은 대기업 조직에 속해 있으며, 제2물결적 고용관계와 위계질서 안에서 활동한다.
진정한 제3물결적 IT 종사자라면 기업에 고용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거나,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 협업하며, 전통적 노동 개념을 벗어난 창조적 활동에 종사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부분 IT 종사자들은 여전히 위계 중심의 대기업 시스템 안에 속해 있다.
결국 이번 대선은 제1·2 물결 연합체(김문수) 대 제1·2 물결+신좌파 연합체(이재명) 간의 경쟁이었다. 진정한 제3물결 세력인 프로슈머 그룹은 정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고, 기존 정치 프레임워크 안에서의 재편성에 그쳤다. 이는 토플러가 예견한 초투쟁이 한국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서구 정치는 제3물결의 가치를 의제와 제도 설계 차원에서 비교적 체계적으로 수용해 왔다. 디지털 전환, 기후 위기 대응, 젠더 평등, 플랫폼 노동 보호 등 제3물결에 해당하는 핵심 이슈들이 주요 정당의 정책 어젠다로 편입되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시민 참여 플랫폼, 지역 분권, 온라인 정치 조직화 등 탈중앙적 실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 정치 시스템은 한국보다 제3물결을 제도적으로 먼저 포착하고 수용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미국의 경우,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기술 엘리트 집단이 프로슈머 문화를 산업화하고 일정 부분 정치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사례에 속한다. IT 창업자, 벤처 자본가, 디지털 크리에이터들이 민주당의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며, 기술 기반 진보 의제를 제도 정치 안으로 끌어들였다. 최근 실리콘밸리 내부에서 우경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제3물결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정치권력과 연결된 몇 안 되는 집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수용은 여전히 기존 정치 질서 내부에서 이루어진 부분적 통합에 불과하며, 토플러가 말한 문명 수준의 초투쟁, 즉 제2물결 중심 질서와의 근본적 충돌이나 대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구 정치의 기본 구도는 여전히 산업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자본과 노동, 복지와 시장이라는 오래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역시 자율적이고 분산화된 프로슈머 대중의 정치적 결집이라기보다는, 소수 기술 엘리트의 제도 내 권력화에 가까운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서구 정치의 제3물결 수용은 선진적이지만, 구조적 전환이라기보다 제한적 통합에 머무르고 있다.
토플러는 제3물결의 진정한 도래를 위해서는 개인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 형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중앙집권적 정당정치보다는 이슈별로 유동적으로 결집하는 애드호크라시(ad-hocracy),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확산, 지역 분권화 등이 그것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한국의 크리에이터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570만 자영업자 중 상당수가 이미 생산과 소비를 겸하는 프로슈머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콘텐츠 기획과 브랜딩, 플랫폼 활용 역량을 갖춘 크리에이터 정체성을 수용할 경우, 제3물결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는 보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구조적 가능성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존 정치권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고, 이들 역시 생존 경쟁에 몰두한 채,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집단적 정치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6월 대선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20세기적 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시켜 준 선거였다. 진정한 21세기적 정치, 즉 제3물결적 정치의 등장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