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로컬 상권의 입지 특성 분석" 논문을 바탕으로
홍대 앞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 변화가 이제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 개성 있는 독립가게를, 획일적인 상업공간 대신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를 담은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연세대학교 모종린 교수와 국토연구원 최은지 연구위원은 2025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현상을 '로컬 상권'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실증적 분석을 수행했다.
기존 골목상권 연구가 물리적 공간 구조나 단순한 매출 지표에 집중했다면, 이 연구는 독립서점, 독립카페, 독립베이커리가 집적된 지역을 객관적으로 도출하고 그 형성 요인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서울시 423개 행정동을 대상으로 입지계수(LQ) 분석을 통해 세 업종 모두 특화지수 1.25 이상을 만족하는 지역을 로컬 상권으로 정의했다.
분석 결과 서울시에서 총 38개 행정동(8.98%)이 로컬 상권으로 분류되었다. 이들 지역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난다.
마포구가 8개 동으로 가장 많은 로컬 상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종로구가 6개 동으로 뒤를 이었다. 홍대, 성수동, 해방촌 등 서울을 대표하는 골목상권이 다수 로컬 상권으로 분류되었다.
반면 강남의 대표적 상권인 가로수길, 압구정 로데오거리, 청담동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은 독립가게보다는 프랜차이즈나 대형 상업시설 중심으로 발달해 있어 연구에서 정의한 로컬 상권의 특성과는 거리가 있다.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로컬 상권이 전통 상권과 정반대의 인구학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로컬 상권의 평균 주거인구는 15.1천명으로 일반 지역의 23.7천명보다 현저히 낮았다. 반면 청년인구 비율(20-39세)은 37.7%로 일반 지역의 29.8%보다 높았고, 1인 세대 비율도 53.2%로 일반 지역의 42.2%를 크게 상회했다.
이는 전통적인 상권 이론에서 강조하는 '풍부한 배후인구'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로컬 상권은 가족 중심의 대중적 수요보다는 청년 1인 가구의 특화된 문화적 수요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가족 대 로컬" 가설로 명명했다.
두 번째 발견은 역사적 진정성이 로컬 상권 형성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이다. 연구진은 서울을 역사적 발전 과정에 따라 세 개 층위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원도심(종로구, 중구): 로컬 상권 비율 21.9%
구도심(용산구, 마포구 등 8개 구): 로컬 상권 비율 16.9%
신도심(강남구, 노원구 등 15개 구): 로컬 상권 비율 3.4%
원도심에서 신도심으로 갈수록 로컬 상권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명확한 위계구조가 확인되었다. 600년 서울 역사의 핵심인 원도심이 복제 불가능한 문화적 진정성을 제공하며, 이것이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는 핵심적인 입지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세 번째 발견은 로컬 상권의 독특한 경제 논리다. 전통 상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동인구나 초역세권(지하철역 반경 250m)이 로컬 상권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게 나타났다. 이는 로컬 상권이 '우연한 통행'보다는 '의도적인 방문'에 기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컬 상권의 방문자들은 SNS에서 본 특별한 공간을 찾아 일부러 발걸음하는 목적지형 소비자들이다. 교통 편의성보다는 공간의 독특함과 문화적 매력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연구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단일 업종이 아닌 복합적 문화생태계의 중요성이다. 독립카페는 지적 소통과 창작활동의 거점이 되고, 독립서점은 문화적 학습과 담론 형성의 공간이 되며, 독립베이커리는 일상적 미학과 수제 문화의 체험 공간이 된다. 세 업종이 결합될 때 비로소 완결된 로컬 문화 경험공간이 창출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는 로컬 상권이 단순한 상업공간을 넘어서 문화적 정체성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복합적 생태계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문자들은 하나의 지역에서 다층적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며, 이것이 로컬 상권만의 독특한 매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연구진이 2022년 하반기를 분석 시점으로 선정한 이유도 의미가 있다. 2023년 이후 코로나19 지원금 중단과 경기 불황으로 오프라인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기 전, 로컬 상권의 본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상권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속화했다. 대형 유동인구에 기반한 전통상권이 고전하는 사이, MZ세대가 주목하는 골목상권은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직주락 일체'를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면서, 집 근처에서 일하고 살면서 삶을 즐길 수 있는 동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연구 결과는 기존 상권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상권 활성화 정책이 유동인구 증대, 교통 접근성 개선, 물리적 시설 정비에 중점을 두었다면, 로컬 상권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지역별 차별화된 접근, 인구학적 특성을 고려한 정책 설계, 문화적 콘텐츠 중심의 새로운 상권 육성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로컬 크리에이터들에 대해서는 기존 소상공인과는 다른 특성을 반영한 창작 활동, 브랜딩, 네트워킹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의 학술적 의의는 로컬 상권의 입지 특성을 객관적 지표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한 점에 있다. 기존 연구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사례 분석이나 질적 연구에 의존했다면, 이 연구는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경제 논리를 발견했다.
물론 연구의 한계도 있다. 횡단면 분석의 한계로 인해 로컬 상권의 동태적 변화 과정을 추적하지 못했고, 서울시에 한정된 분석으로 다른 도시에 대한 일반화에는 제약이 있다. 연구진도 향후 시계열 분석, 다른 도시와의 비교 연구,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한 심층적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결국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도시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효율성과 편의성만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개성과 문화적 경험을 중시하는 시대로의 전환. 대량생산과 표준화의 시대에서, 소량생산과 개별화의 시대로의 이행.
로컬 상권의 확산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집합적 의사표현이다. 38개 행정동에 불과한 로컬 상권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도시 문화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이 글은 모종린·최은지(2025)의 "서울시 로컬 상권의 입지 특성 분석"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