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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상업화라는 난제

by 골목길 경제학자

주거지 상업화라는 난제


2000년대 이후 서울의 가장 큰 변화는 골목상권의 부상이다. 골목상권으로 시작한 홍대, 이태원, 성수동이 서울을 대표하는 '거대 상권'으로 성장했다. 이 세 지역이 서울의 관광산업을 견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목상권 현상의 메커니즘은 주거지 상업화다. 많은 주거 지역이 과거 주민들의 일상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생활상권 중심에서, 이제는 외부인과 관광객을 유치하는 콘텐츠 상권으로 진화한 것이다.


전통적인 생활상권은 동네 슈퍼, 세탁소, 병원, 약국, 학원, 소규모 식당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콘텐츠 상권은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경험과 스토리를 판매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2000년대 이후 SNS와 미디어의 발달,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많은 근린 상권이 콘텐츠 상권으로 변모하고 있다. 홍대, 이태원, 성수동이 바로 독특한 분위기와 개성 있는 상점들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 명소가 되는 콘텐츠 상권의 대표 주자다.


상권 확장이 주는 기회와 리스크

상권의 콘텐츠화는 양날의 검과 같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 매력 증진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과 주거환경 악화라는 부작용도 수반한다.


상권의 콘텐츠화는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창의적인 소상공인들이 몰려들면서 독특한 브랜드와 서비스가 생겨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지역 부동산 가치 상승과 함께 기존 상인들에게도 매출 증대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낙후된 지역이 문화적 명소로 재탄생하면서 도시 전체의 매력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과도한 상업화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기존 상인들의 내몰림, 주거 환경 악화로 인한 원주민들의 이주,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매장의 확산으로 인한 지역 고유성 상실 등이 대표적이다. 주거지역에서의 무질서한 상업화는 기존 도시계획 체계로는 관리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상권 관리가 어려워진 핵심 원인은 새로운 상권들이 대부분 주거지역에서 용도변경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주거지역 내에서 근린생활시설이 허용되는 기존 용도지역 관리 체계의 틈새를 통해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주거와 상업이 무질서하게 혼재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상가가 주거지로 침투한 현상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서울의 도시 개발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대규모 택지 개발을 통해 홍대, 영동, 불광 등 새로운 생활권을 조성했지만, 당시 지배적이던 ‘도심-부도심’ 구도 하에서 각 생활권에는 서구의 다운타운, 메인 스트리트, 하이 스트리트와 같은 생활권 중심의 상업지구를 조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도시가 다핵화되고 각 생활권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증가하면서, 기존 생활권 내에서도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할 별도의 상업지구가 없었던 상황에서, 주거지역 내 근린생활시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중심부(서촌, 북촌, 익선동 등)와 외곽(홍대, 강남 등)의 주거지가 자연스럽게 콘텐츠 상권으로 진화한 것이다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3개 모델

상권 관리의 핵심은 각 지역의 특성과 발전 단계에 맞는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에서 시행되고 있거나 고려할 만한 정책을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 모델로 구분할 수 있다. 사전 예방적 관리, 사후 선별적 관리, 그리고 시간대별 관리가 그것이다.


모델 1: 주거지역 용도 규제 강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용도지역 구분에 따라 관광형 업종의 진입을 규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종 주거전용지역, 1종과 2종 일반 주거지역에는 관광형 업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규제 대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관광형 업종으로는 기업형 음식점 및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 체인점 성격의 주점 및 카페, 대형 브랜드 베이커리, 관광 상품 판매점, 대규모 체험형 시설, 웨딩촬영이나 한복체험 등 관광 서비스업, 대형 숙박업소 등이 있다.


관광 업종 관리는 단순히 유흥시설만 제한하는 기존 규제를 넘어서, SNS를 통해 화제가 되고 외부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모든 업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주거지역은 애초에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보전하고, 관광 및 상업 목적의 시설은 상업지역이나 별도로 지정된 구역에서만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모델 2: 서촌 모델 - 선별적 상업화 관리

서촌은 2016년 서울 최초로 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지를 제한하는 지구단위계획 재정비를 단행했다. 대로변인 자하문로와 사직로변을 제외하고 구역 내 전 지역에서 일반·휴게음식점과 제과영업점의 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지를 제한했다. 또한 기존 근린생활시설 밀집지 등을 뺀 주거밀집지역에서는 카페나 음식점 영업도 할 수 없게 했다.


서촌 모델의 핵심은 공간적 차별화다. 대로변은 상업시설을 허용하되, 주거밀집지역은 엄격히 제한하는 방식으로 상업 활력과 주거 환경 보호의 균형점을 찾았다. 이는 이미 상업화가 진행된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된 후 대응하기보다는,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허용 업종과 입지를 세밀하게 관리하는 사후 관리형 도시계획의 사례다.


모델 3: 북촌 모델 - 시간대별 관리

북촌한옥마을은 시간적 구분을 통한 관리 방식을 채택했다. 주거용 한옥이 많고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북촌로11길 일대를 '레드존'으로 지정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관광객의 방문을 허용한다. 오후 5시 이후에는 관광 목적의 출입을 금지하고 위반 시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북촌 모델은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대별로 생활상권과 관광상권의 성격을 달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낮시간대는 관광상권으로 기능하게 하되, 저녁과 주말 등 주민들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 시간대는 생활상권으로 보호하는 방식이다. 4개월의 시범 운영을 통해 정책 효과를 검증한 후 본격 시행한 점도 참고할 만하다.


낙후 상권은 어떻게 활성화해야 하는가?

앞서 제시한 3개 모델은 모두 이미 활성화된 상권의 관리 방안이다. 하지만 서울에는 여전히 많은 낙후 상권이 존재한다. 이들 지역의 활성화는 입지 조건과 지역 특성에 따라 두 가지 전략으로 나누어 접근해야 한다.


첫 번째는 선별적 콘텐츠 상권 개발 전략이다. 문화자원, 역사자원, 자연자원 등 관광 잠재력이 있는 특정 지역에서는 전략적으로 콘텐츠 상권을 조성할 수 있다. 특히 금천구, 은평구, 강북구, 중랑구, 동대문구 등 아직 대표적인 콘텐츠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자치구에서는 청년층이 선호하는 문화지구를 조성하는 것이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전략적 콘텐츠 상권 개발에서는 처음부터 명확한 브랜딩과 차별화된 콘텐츠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 고유의 역사적 자산이나 특색 있는 자원을 발굴하여 독창적인 콘텐츠로 개발하고, 창의적 공간 조성과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상점들을 체계적으로 유치한다. 다만 개발 초기부터 과도한 상업화를 방지하는 선제적 규제 시스템을 반드시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생활상권 중심 활성화 전략이다. 콘텐츠 상권으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주민들의 일상적 편의를 위한 근린상권으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기존 상인들의 영업 기반 안정화 및 시설 현대화를 지원하고, 외부 관광객 유치보다는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한다. 소규모 창업 지원과 빈 상가 리모델링을 통한 점진적 활성화가 중요하며, 전통시장 현대화나 근린상가 리모델링, 동네 커뮤니티 공간 조성 등이 대표적 사례다.


두 전략 모두 주민 참여형 개발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주도성을 확보하고, 외부 자본의 일방적 투입보다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상권의 방향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도시계획의 새로운 역할

상권 관리에 있어 도시계획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단순히 용도를 '구획'하는 것을 넘어, 상권의 '생장'을 관리하고 '지속 가능한 활력'을 유도하는 능동적인 역할로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주거지역에서의 무분별한 상업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용도지역 관리 체계의 보완이 시급하다. 주거지역 내 근린생활시설 허용 기준을 재검토하고, 관광형 업종에 대한 명확한 규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서촌의 선별적 상업화 관리, 북촌의 시간대별 관리는 도시계획이 사후 대응이 아닌 예방적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각 상권이 가진 고유한 DNA와 잠재력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삶과 경제 활동이 어우러지는 활기찬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제 도시계획의 핵심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상권과 도시 구조, 사람들의 행태를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종합적인 데이터 시스템 구축과 전문적인 연구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생활상권은 주민의 삶에 스며드는 편안함을, 콘텐츠 상권은 도시의 매력을 발산하는 창의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며 서울 도심의 미래를 밝혀나가야 한다.



참고문헌

김수현, "서울 서촌서 프랜차이즈 빵집·음식점 마음대로 못 연다", 『연합뉴스』, 2016년 3월 10일.

김영우, "내일부터 종로구 북촌 관광시간 제한...어기면 과태료 10만원", 『서울경제』, 2025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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