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의 기억
Ⅰ. 압구정을 다시 바라보는 이유
서울은 언제부터 강남 중심의 도시가 되었을까. 강남이라는 지명이 지도 위에서 실체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반세기 전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강남을 단순한 지역명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기호로 사용한다. 고급 주거, 교육 열풍, 명품 소비, 문화 감각, 첨단 기업까지. 이 모든 것들이 강남에 응축되어 있다.
그 전환점에 있었던 공간이 바로 압구정동이다. 지금은 가장 부유한 동네로 알려져 있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한강 남쪽의 모래밭이었다. 나루터와 과수원, 드문드문 자리한 농가들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조용한 땅 위에 현대건설이 첫 삽을 뜨면서, 서울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권력의 축을 옮기기 시작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등장은 단지 부동산 개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도시문화의 새로운 실험이었고, 도시적 삶의 양식을 제시한 공간 혁명이었다.
이 글은 압구정의 도시사적 기원을 따라가면서, 왜 이곳만이 '문화가 자생하는 신도시'가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압구정은 한국 최초의 도시문화 실험장이었다. 그리고 지금, 재개발이라는 전환점을 맞아 우리는 다시 압구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Ⅱ. 압구정의 탄생 – 모래밭 위의 도시 실험
압구정은 조선 초기, 세조의 측근이자 권세가였던 한명회의 별서로부터 그 이름을 얻었다. 그는 한강변에 정자를 짓고 '물새와 어울려 산다'는 의미로 '압구정(狎鷗亭)'이라 이름 붙였다. 당시 이곳은 도시 외곽의 풍류지였다.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압구정은 경작지와 자연지형으로 남아 있었다.
현대적 압구정의 역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영동지구 개발이 본격화되고, 한남대교(1969), 경부고속도로(1970), 성수대교와 동호대교가 잇달아 착공되면서 서울의 남부는 새로운 개발의 무대로 떠오른다. 이 시기 현대건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투입된 중장비를 보관할 창고 부지를 물색하다, 압구정 일대의 광대한 토지를 대규모로 확보하게 된다.
모래밭 위의 실험장 – 기술과 의지의 응축
1975년, 이 땅에 첫 삽을 뜬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국내 최초의 '고층·대단지 아파트' 실험이었다. 현대건설은 이미 마포아파트(1964), 서빙고 현대아파트(1973) 등을 통해 공동주택 건설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압구정에 '도시 속 도시'를 구현했다. 14차에 걸쳐 총 6,000세대 이상이 공급된 이 아파트 단지는 단지 내부에 초등학교, 중학교, 상가, 공원, 병원을 갖춘 자족형 구조로 설계되었다.
초기 현장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공사 당시 "물 한 방울, 전기 한 줄 없었다"는 증언처럼, 기반시설조차 미비했다. 현대건설은 지하수 확보를 위해 샘을 수차례 팠지만 암반에 부딪혀 결국 한강물을 끌어다 쓰는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 이곳은 '배 밭 옆 모래밭'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이 황무지를 도시로 바꾼 것은 당시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시공 기술에서도 획기적인 실험이 이뤄졌다. 현대건설은 압구정 아파트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무량판 구조, 조립식 공법, 단열 설계 등을 적용했다. 이 공법들은 이후 전국 아파트 건축의 기준이 되었고, 타 건설사들이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시방서를 그대로 모방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도시 속 도시 – 주거와 커뮤니티의 통합
압구정 일대는 1966년 영동2지구로 지정된 이후, 1971년 토지구획정리계획에 따라 본격적인 도시 골격이 형성되었다. 이 계획은 당시 다른 토지구획정리사업과 마찬가지로, 단독주택지와 상가주택지를 중심으로 필지를 조성하고, 주요 가로변에는 근린상업 기능을 일부 배치하는 구조를 따랐다. 격자형 도로망과 균형 잡힌 필지 구획은 도시 주거의 일상성과 자족성을 동시에 고려한 근린주구 개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후 이 지역은 1976년 ‘아파트 지구’로 고시되며 고층 아파트 중심의 주거지로 제도화되었고, 현대건설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4차에 걸쳐 아파트를 순차적으로 공급했다. 압구정은 그 과정을 통해 서울의 주거 공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실험의 무대가 되었다.
대다수 고층 아파트 단지가 획일적으로 배열된 것과 달리,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단지 내부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상가, 공원, 병원을 배치한 복합 구조를 갖추었다. 특히 다양한 보행 동선과 커뮤니티 공간이 단지 설계에 통합되면서, 오늘날 도시계획에서 중시되는 ‘보행 중심성’과 ‘혼합 용도’의 원형을 선보였다.
단지 내부 상가는 준공과 함께 조성되어 일상생활의 중심 기능을 담당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6년부터 운영되어 온 신사시장이다. 금강상가, 현대상가, 신사시장 등으로 불리는 이 상가는 약 200미터 길이의 도로를 따라 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반찬가게, 철물점, 떡집, 문방구, 수입식품점 등이 밀집한 재래시장형 상가로서 40년 넘게 지역 주민의 일상 소비를 책임져왔다. 특히 ‘쌍둥이네 떡볶이’처럼 입주 초기부터 이어진 단골 가게들은 세대 간 공유되는 기억을 형성하며, 이 상가가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커뮤니티의 생활 기반이자 감성 자산으로 기능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주거와 커뮤니티를 통합한 단지 내부 구조는 단순한 기능 배치를 넘어, 일상과 생활을 공유하는 도시적 기반을 형성했다. 이는 압구정이 단지 고급 아파트 단지를 넘어, 독립적인 도시생활의 한 단위로 기능하도록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공간 권력의 중심지로
처음에는 분양도 쉽지 않았다. 강북 중심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한강 남쪽은 아직 먼 지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입소문'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압구정의 인기는 치솟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모델하우스 공개 시 인파로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으며, 서울 주요 인사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강남 중심 담론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오피니언 리더의 80% 이상이 여전히 강북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절반 이상이 압구정을 포함한 강남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아직도 강북에 사느냐?"는 농담이 일상어가 되었고, '강남으로 이사했다'는 말은 곧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들어갔다'는 의미로 통했다.
압구정은 단지 아파트를 짓고 파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울 도시 질서의 재편이 실현된 현장이자, 도시 공간이 신분적 상징성을 갖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Ⅲ. 압구정이 만든 도시문화 스탠더드
압구정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한국 도시문화의 기준을 순차적으로 제시해 온 장소였다. 이곳에서 형성된 소비, 사교, 미감, 라이프스타일은 이후 서울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전국 도시들이 압구정을 벤치마킹했다. 압구정은 다섯 차례에 걸쳐 도시문화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왔다.
1. 교육문화의 기준 – 학군, 명문학교, 정주형 교육 도시문화
압구정은 강남 8 학군 신화의 출발점이자, 서울에서 가장 먼저 교육이 도시문화로 자리 잡은 지역이었다. 경기고, 현대고, 영동고, 압구정중, 신구초 등 명문학교들이 압구정 일대에 밀집하면서, 이 지역은 교육 프리미엄과 고급 주거문화가 결합된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자녀 교육을 위한 이주가 집중되면서, 압구정은 ‘교육을 위한 도시 선택’이라는 정주 전략의 전형이 되었다.
이러한 교육 중심의 도시문화는 학군 프리미엄을 통해 압구정의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렸고, 중상류층 이상 가구가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안정적으로 정주하게 만들었다. 학교뿐 아니라 학원, 독서실, 교습소 등의 교육 기반 시설도 함께 밀집하며, 압구정은 학습 중심 생활문화가 도시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지역이 되었다. 이 구조는 단순한 입시의 편의를 넘어서, 도시 엘리트 계층의 재생산 기반으로 작동했다.
교육문화는 또한 압구정의 다른 도시문화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학교와 학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주 인구는 카페, 백화점, 거리 소비문화의 주체였고, 이들은 학부모와 청소년, 교육직 종사자 등 압구정만의 복합적인 라이프스타일 집단을 형성했다. 압구정의 도시문화는 교육이 만든 정주성과 소비, 취향, 일상이 교차하는 고밀도의 도시적 삶을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2. 소비문화의 기준 – 현대백화점, 외국 브랜드, 글로벌 일상의 시작
1985년 문을 연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서, 서울 시민의 일상에 글로벌 소비문화를 처음 도입한 창구였다. 백화점은 맥도널드, 나이키, 리바이스, 타미힐피거 등 외국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입 관문이 되었고, 사람들은 압구정에서 '해외 소비의 감각'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특히 1988년 갤러리아 명품관 맞은편에 문을 연 맥도널드 압구정점은 한국 최초의 맥도널드였다. 당시 '햄버거는 밥이 아니다'라는 인식 속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국적 경험을 찾는 사람들이 압구정으로 몰려들었다. 이는 단지 수입 브랜드의 확산이 아니라, 일상의 국제화를 예고한 사건이었다. 그 결과 압구정은 대한민국에서 '글로벌한 일상 소비'가 최초로 시작된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3. 카페문화의 기준 – 로데오 거리, 오렌지족, 사교 공간으로서의 커피문화
1990년대 중반,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명실상부한 서울 청춘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고급 카페, 디저트 가게, 수입 뷰티 편집숍 등이 밀집하기 시작했고, 당시 신세대라 불리던 20대 중후반의 젊은이들은 '압구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여겼다.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렌지족'이다. 수입차를 몰고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으며, 압구정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최신 유행을 공유하던 이들은 압구정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기호적 계급'의 상징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과시 소비층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문화를 만드는 행동주체였다.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오렌지 주스를 보내는 문화에서 '오렌지족'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 시기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커피 전문점 자뎅, 커피앤커피, 감성 카페 보디가드, 감성 카페 라덴, 디저트 전문점 카페 라리와 같은 개성 있는 카페들이 등장해,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사교와 기호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공간들은 도시 소비문화의 선구적 무대였고, 한국 카페문화의 원형이 압구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카페는 단지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만남의 무대, 감각의 공유 장소, 자신을 표현하는 미디어가 되었다. 이후 한국 전역의 모든 골목에 카페가 들어서고, 한국이 ‘카페 공화국’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배경에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선례가 있다.
압구정은 또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시인 유하의 시구로 대표되는 문화적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91년 발표된 이 시집은 압구정을 단순한 부유층 동네가 아닌, 청년들의 감성과 일탈, 자유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그려냈다. 이는 곧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고, 압구정은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무대로 자리 잡았다.
4. 패션문화의 기준 – 길거리 패션, 명품 소비, 브랜드의 해석 공간
1990년대 압구정은 한국 패션문화의 실험장이었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게스 등 수입 브랜드부터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새로운 패션 트렌드는 모두 압구정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압구정은 '길거리 패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X세대로 불리던 청년들은 압구정 거리를 무대로 개성적인 패션을 선보였고, 이는 곧 전국적인 유행으로 퍼져나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압구정은 명품 소비의 중심지로 진화했다. 특히 갤러리아백화점은 '명품관 EAST'와 'WEST'를 중심으로 루이뷔통, 구찌, 샤넬, 에르메스 등 주요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을 유치하며, 한국에서 최초로 '백화점 내 명품 거리화'를 시도했다.
압구정과 맞닿은 청담동은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명품 부티크와 뷰티·의류 편집숍이 거리 단위로 조성되었고, '청담동 스타일'이라는 말이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는다. 이 문화는 단지 브랜드를 사는 것을 넘어서, 브랜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로 소비자의 취향을 평가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압구정에서 브랜드를 소비하는 방식, 매장에 입장하는 자세, 점원의 태도, 고객의 언어까지를 통해 사회적 취향을 체화해 나갔다. 한국 사회에서 브랜드 소비가 사회적 언어로 기능하기 시작한 출발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5. 로컬문화의 기준 – 코로나 이후의 압구정, 테라스 상권과 로컬 감각의 귀환
코로나19 이후 거리 두기와 비대면 일상이 일상화되면서, 압구정은 다시 한번 도시문화의 전환점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노후화된 상가 건물들이 현대적으로 리뉴얼되며 테라스형 상권이 등장하고, 건물 전면을 개방한 감각적인 리테일 공간이 속속 들어섰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포틀럭, 파크베이커리, 제임스치즈 등 테라스 상권에서 로컬 브랜드의 정체성을 실험하며, 대형 프랜차이즈와는 구분되는 독립성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독립 브랜드들이 입점했다.
압구정 지역의 독립 브랜드들은 외국 명품 브랜드와 달리 강남 고유의 문화와 환경을 반영한다. 강남식 베이커리 문화를 개척한 아우어베이커리, 도산공원 일대에서 시작한 도산분식, 클래식 음악과 명품을 연결한 풍월당, 안경 문화를 재해석한 프레임몬타나, 명품백 제조에서 자체 브랜드로 전환한 시몬느 등은 압구정 지역에서 출발해 강남의 지역성과 감각을 바탕으로 압구정만의 브랜드 문화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상권의 재구성이 아니다. 압구정이 다시 '브랜드와 도시문화가 함께 자라는 동네'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며, 도시가 정체되지 않고 스스로 진화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Ⅳ. 압구정의 고유성 – 문화가 자생하는 도시구조
대한민국에는 압구정 외에도 여러 계획도시들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계획도시들은 도시문화 창출의 면에서는 압구정과 근본적으로 다른 결과를 보였다. 왜 압구정만이 도시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유연한 계획, 자생적 발전
압구정은 1966년 영동2지구로 지정된 이후, 1971년 구획정리계획에 따라 도시 골격이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의 특징은 모든 것을 세밀하게 규정하기보다는, 큰 틀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발전은 시간과 수요에 맡겼다는 점이다. 아파트 용지, 단독주택지, 혼합용도지 등으로 구분은 했지만, 각 구역이 어떻게 채워질지는 열어두었다.
이는 다른 계획도시들과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여의도나 분당 같은 신도시들은 처음부터 상업지구, 주거지구, 업무지구를 명확히 분리하고 각 기능을 고정했다. 반면 압구정은 현대아파트라는 대규모 주거단지를 중심에 두되, 주변 지역이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주민 수요가 만든 상업문화
압구정의 상업문화는 위에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 1980년대 중반, 현대아파트에 입주한 중상류층 주민들의 소비 수요가 늘어나면서 혼합용도지에는 이를 충족시킬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근린상가였지만, 주민들의 취향이 고급화되면서 수입 브랜드 매장, 고급 레스토랑, 카페 등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특히 로데오 거리의 형성은 이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곳은 계획도시의 일부였지만 구체적인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혼합용도지였다. 압구정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패턴에 맞춰 자연스럽게 패션과 문화의 거리로 변모했고, 이는 곧 서울 전체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공간이 되었다.
계획과 자생의 균형
세계적인 도시설계자 얀 겔은 『소프트 시티』(2020)에서 "현대의 도시들이 삶을 보여주기보다는 건물과 도시계획의 이론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라고 비판했다. 많은 계획도시들이 이론과 기능에 충실한 나머지 실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압구정은 이러한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큰 틀은 계획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주민들의 삶이 채워 나가도록 했다. 현대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은 확실히 제공했지만, 그 주변에서 어떤 문화가 형성될지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계획된 비계획성'이 압구정을 다른 신도시와 구별되게 만들었다.
복합적 도시구조의 힘
압구정의 성공 비결은 다양성과 복합성에 있었다. 고층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주택이 한 지역에 공존했고, 학교, 백화점, 병원, 공원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이러한 복합적 구조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마주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또한 압구정은 단순한 베드타운이 아니었다. 주거 기능과 함께 교육, 상업, 문화 기능이 통합되어 있어 낮과 밤, 평일과 주말 모두 활기찬 도시였다. 이는 주거 전용 신도시들이 겪는 '도시의 공동화' 현상을 막아주었다.
시간이 만든 도시문화
압구정의 도시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75년 첫 입주 이후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진화해 왔다. 다른 신도시들이 완성된 형태를 한꺼번에 제시한 것과 달리, 압구정은 시간의 켜가 쌓이면서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이러한 시간성은 압구정이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문화적 장소가 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다. 오래된 가게들이 역사가 되고, 거리의 변화가 이야기가 되면서, 압구정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압구정은 계획도시이면서도 자생적 도시문화를 만들어낸 드문 사례다. 그것은 계획의 유연성, 주민 중심의 발전, 복합적 도시구조, 그리고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는 앞으로의 도시계획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모든 것을 미리 정하려 하지 말고, 사람들의 삶이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 압구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Ⅴ. 재건축과 문화적 계승의 과제
압구정은 과거 40년 동안 한국 도시문화의 흐름을 선도해 온 공간이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많은 동이 노후화되고 재건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압구정의 미래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섰다. 중요한 것은 단지 주거 환경의 개선이 아니라, 압구정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보존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도시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신속통합기획 – 도시계획과 문화계획의 결합
서울시는 압구정 2~5 구역에 대해 '신속통합기획'을 수립하고 있다. 기존 단지별 재건축이 각기 진행되어 조망권, 동선, 상업지 등이 단절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하나의 도시'로서 압구정을 재설계하려는 것이다.
이 계획안은 다음 세 가지 방향을 포함한다:
창의·혁신 디자인으로 한강변 파노라마 경관 형성
보행가로 활성화 및 여가·문화 생태계 조성
성수-압구정 생활권 통합 및 수변 공간의 특화
이는 단순히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압구정이라는 도시공간이 다시 도시문화의 '무대'로 기능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시도다. 특히 '강북의 서울숲'과 '강남의 압구정'을 자전거·보행로로 연결하려는 발상은, 과거 도심과 강변이 분리되었던 압구정의 약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문화적 연결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획이다.
수변 도시로서의 압구정 – 경관과 경험의 확장
계획안에 따르면 한강변 30m 구간은 '수변 특화 구역'으로 지정되어 조망명소, 주민공유시설, 열린 광장 등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는 과거 아파트 뒤편으로만 인식되던 한강변을 전면적으로 도시문화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다.
한강변을 산책하며 압구정 단지 내부로 연결되고, 다시 테라스 상권과 골목길로 이어지는 도시 구조는, 서울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삶과 도시의 통합적 경관'을 제공할 수 있다.
보존과 창조 사이 – 압구정의 문화자산을 계승하기
중요한 것은 압구정이 쌓아온 문화 자산을 무조건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계승하고 확장하느냐는 점이다. 테라스형 상가, 골목의 규모감, 로데오 거리의 중심성, 단지 내 학교-상가-커뮤니티의 관계는 단지 기능이 아니라 도시문화 그 자체다.
지금의 재건축은 물리적 시설만이 아니라, 압구정이 만들어온 '도시 감각'까지도 재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이 단지 도시계획이 아닌 문화계획으로도 기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강남문화의 시작점
강남은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도시공간이다. 하지만 압구정이 갖는 고유성은 단지 고급 아파트를 먼저 지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이곳은 도시 공간과 문화가 함께 진화한 유일한 신도시다. 따라서 이 재건축이 성공한다는 것은, 단지 압구정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남 전체의 미래, 나아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진화를 가늠하게 되는 시험대다.
압구정이 재건축을 통해 다시 도시문화의 중심 무대로 떠오른다면, 그것은 1970년대와 1990년대의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부해진 감각과 더 정교해진 도시문화의 표현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Ⅵ. 강남 로컬의 미래, 압구정에서 시작된다
압구정은 단순한 고급 아파트 단지가 아니다. 그것은 강남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기원을 품은 장소이며, 한국 도시가 경험한 가장 흥미롭고도 성공적인 신도시 실험의 현장이다. 도시 공간이 단지 기능이나 인프라의 총합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소비, 관계, 창작이 어떻게 축적되고 표현되느냐에 따라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보여준 곳이 바로 압구정이다.
교육문화, 소비문화, 카페문화, 명품문화, 로컬문화. 압구정은 각 시대마다 새로운 도시문화를 선도했고, 그 기준은 곧 한국 도시의 스탠더드가 되었다. 맥도널드가 처음 들어오고, 오렌지족이 거리를 활보하고, 로데오 거리가 감각적 소비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테라스 상권과 독립 브랜드들이 다시 새로운 '강남 로컬'의 탄생을 이끌고 있다.
오늘날 압구정의 도시문화는 현대백화점에서 시작해, 로데오 거리의 감각을 지나 도산공원의 테라스를 거쳐, 청담동 명품 거리로 이어진다. 이 축을 따라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새로 들어선 감각적인 리테일 공간이 어우러지고, 글로벌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가 나란히 호흡한다. 압구정은 여전히 한국 도시문화가 가장 먼저 실험되고, 가장 섬세하게 표현되는 무대다. 그렇게 압구정은, 다시 한번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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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에서 발행한 압구정 현대 스토리북에 기고한 글의 초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