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원연구원에서 로컬 경제학의 현재와 과제에 대해 강연했다. 로컬 경제가 자생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화와 학문화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도시 연구와 정책의 편향성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도시 정책을 분석해 보면 일관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신도시 건설, 대규모 개발 사업, 거대한 SOC 투자. 모든 해법이 '대형 프로젝트'와 '대규모 예산'으로 수렴된다.
나는 이러한 접근이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많은 사람이 '토건 세력'의 영향을 지적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도시 성장 원리에 대한 구조적 오해다.
도시가 성장하는 메커니즘에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 번째는 자본의 힘이다.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면 자본이 따라올 것이고, 이러한 자본의 집적을 통해 경제 활동이 활성화되고 지속될 것이라는 논리다.
두 번째는 도시 자체의 힘이다.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창발적 협력, 예상치 못한 만남에서 비롯되는 도시의 내재적 에너지다.
핵심은 자본의 힘이 작동하는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본은 모든 곳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은 지대가 발생하는 지역으로만 집중되며, 일단 특정 지역에 자리 잡으면 그곳에서 더 많은 지대를 창출하며 자기증식한다. 부동산 지대, 독점적 사업 수익, 프리미엄 브랜드의 독과점 이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본이 자본을 낳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자본의 선택적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자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전국 각지에 건설된 신도시들이 거의 예외 없이 공실 위기를 겪고 기업을 유치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더 안타까운 사례는 지역 대도시의 '작은 강남' 모델이다. 대구 수성구, 부산 해운대, 광주 봉선동 등은 강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신도시를 건설했다. 프리미엄 주거지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정작 핵심인 기업 생태계 구축에는 실패했다. 강남의 성공 요인 중 일부만 복제했을 뿐, 자본이 자본을 부르는 핵심 구조는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 집중이 더더욱 어려운 대다수 지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도시 본연의 힘에 있다. 기존 도시 조직의 축적된 잠재력, 지역 주체들 간의 유기적 연결, 소규모 창업과 문화적 실험의 연쇄작용이다. 이런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창발적 에너지야말로 진정한 도시 발전의 동력이다.
서울의 최근 30년간 변화가 이 두 경로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1990년대 강남 1극 체제에서 현재의 강남-강북 양강 구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강남 = 자본의 힘
강북 = 도시의 힘
위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강남은 자본의 힘이 성공적으로 작동한 사례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대규모 자본 투자가 자본 집중 구조를 형성했고, 이것이 지속적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강남이 비즈니스 중심지로 확립되면서 대기업 본사, 금융기관, 다국적 기업들이 밀집했다. 이들이 창출하는 막대한 수익이 첫 번째 지대가 되었고, 동시에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토지 소유자들이 획득한 지대, 그리고 명품 브랜드와 고급 서비스업체들의 이윤이 더해졌다.
이렇게 발생한 다양한 지대들이 다시 강남으로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였다. 기업 본사 이전, 해외 자본의 한국 진출 거점으로 강남이 선택되면서 지가는 더욱 상승하고, 비즈니스 생태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고급 소비시장은 더욱 확대되었다. 초기 투자 대비 수십 배의 수익이 창출되는 자본 자기 증식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반면 홍대, 이태원, 용산, 성수동 등 강북 지역의 재부상은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졌다. 대규모 자본 투입 없이 기존 도시 조직과 골목길 문화를 기반으로 소규모 창업과 문화적 실험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독립 가게, 로컬 콘텐츠, 가로 문화 중심의 새로운 상권을 만들어냈다. 도시가 본래 보유한 사회적·문화적 자산을 활용한 내생적 발전 모델이었다.
물론 자본과 도시의 대비는 분석적 도식화다. 실제로는 강남에도 도시적 요소가, 강북에도 자본의 작용이 있었다. 강남에서도 성장 과정에서 점진적인 도시 조직의 축적이 이루어졌고, 홍대나 성수동도 최근 상당한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각 지역 성장의 주도적 메커니즘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강남은 초기 대규모 자본 투자와 지대 창출 구조가 결정적이었고, 강북은 기존 도시 조직과 소규모 주체들의 자발적 실험이 핵심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강남과 강북에서 지역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강북 모델이야말로 자본력이 제한된 대부분의 지역이 주목해야 할 현실적 발전 경로다. 기존에 축적된 사회적 관계, 지역 문화, 고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점진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강북 모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나는 '건축 주도 지역 발전' 모델을 제시한다. 이 모델은 두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소도시 원도심에 '건축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지역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질의 건축환경과 건축물을 개선하여 강북과 유사한 물리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로컬 메이커 스페이스'를 통해 콘텐츠 생산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소도시에서는 자생적 콘텐츠 집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로컬 자원을 발굴하고 사업화하는 사업자를 지원할 거점 플랫폼이 필요하다.
지역의 암담한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실제로 성공한 모델의 정립이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논의를 바탕으로 강북 모델의 지역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설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