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부터 디스토피아까지의 일관된 패턴
H.G. 웰스가 『타임머신』(1895)에서 그려낸 엘로이와 모록의 분리된 세계부터, 일론 머스크의 스타베이스까지 - 기술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도시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특징을 보인다.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모든 기술주의적 도시 모델은 인간의 행동을 시스템의 필요에 맞추려 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에서 시민들의 일과가 철저히 규율화되고, 토마소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1602)에서 모든 활동이 중앙에서 통제되며,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돌아보며』(1888)에서 산업 군대가 사회를 조직하는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 유토피아 문학은 모두 '완벽한 시스템'을 위해 개인의 자율성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예브게니 자미아틴의 『우리들』(1924), 알도로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조지 오웰의 『1984』(1949)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등장했지만, 이들이 비판하는 기술주의적 도시의 본질적 구조는 유토피아 문학과 동일하다. 차이는 단지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일 뿐이다.
현대 계획도시의 지속되는 한계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부터 브라질리아, 창디가르까지, 20세기 모더니스트 계획도시들은 유토피아 문학의 청사진을 현실로 옮긴 것이나 다름없다. 기하학적 질서, 기능별 구역화, 효율성 극대화 -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의 패턴보다 시스템의 논리를 우선시한다.
오늘날의 스마트시티 역시 이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IoT 센서와 빅데이터로 무장했지만, 여전히 도시를 최적화해야 할 기계로, 시민을 시스템에 맞춰야 할 변수로 인식한다. 싱가포르의 스마트 네이션, 토론토의 사이드워크 랩스, 그리고 최근의 AI 도시 프로젝트들까지 - 기술은 바뀌었지만 인간관은 변하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베이스는 이런 기술주의적 사고의 극단적 사례다. 500명의 주민 중 60% 이상이 스페이스X 직원이고, 시장과 시의원 모두 스페이스X 직원이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기업 목표에 종속되어 있다. 이도시는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에서 모든 시민이 국가 목표에 복무하는 구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기계적 사고의 뿌리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1627)에서부터 드러나는 핵심 문제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도시를 거대한 기계나 실험실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도시는 투입과 산출, 효율성과 최적화의 대상일 뿐,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살아가는 복합적 생태계가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불확실성, 우연성, 비효율성이 모두 제거해야 할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도시들인 파리의 몽마르트르, 서울의 성수동, 교토의 골목길들은 모두 이런 '문제들'로 가득하다.
멈포드의 통찰: 모든 계획도시의 권위주의적 DNA
루이스 멈포드는 1930년대부터 이 문제의 본질을 간파했다. 『기술과 문명』(1934)과 『도시의 문화』(1938)에서 그는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관계없이, 포괄적으로 계획된 모든 도시가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멈포드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다: '완벽한' 도시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 행동의 다양성과 자발성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선의의 계획이든 악의적 통제든,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전체주의적 시스템이 된다.
멈포드의 우려는 오늘날의 스마트시티 담론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시민의 편의를 위한" 데이터 수집과 행동 예측, "효율적인 도시 운영을 위한" 알고리즘 기반 의사결정 - 이 모든 것이 시민을 시스템이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전제한다.
제이콥스의 혁명: 상향식 도시학의 탄생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961)에서 도시 이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녀는 도시를 기계가 아니라 '조직화된 복잡성'의 생태계로 봤다. 좋은 도시는 전문가가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개인들의 일상적 선택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이콥스의 관찰은 혁명적이었다. 그린위치 빌리지의 허드슨 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일상 - 상점 주인들이 거리를 지켜보고,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고, 사람들이 우연히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는 것 -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이야말로 도시 활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제이콥스 이론은 모든 기술주의적 도시 계획의 전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효율성보다 다양성이, 질서보다 활력이, 예측 가능성보다 우연한 만남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현대 어바니즘의 계승과 발전
제이콥스 이후 현대 도시학은 그녀의 통찰을 계승하며 발전했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패턴 랭귀지』, 윌리엄 화이트의 『소셜 라이프 오브 스몰 어반 스페이스』, 얀 겔의 『인간을 위한 도시』 등은 모두 인간 중심적 도시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AI의 새로운 가능성들
AI 기술은 기존 계획도시 모델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가능하게 할 잠재력이 있다. 전통적 계획이 고정된 마스터플랜에 의존했다면, AI는 실시간 적응과 학습이 가능하다. 시민들의 실제 행동 패턴을 관찰하고, 예상치 못한 사용법을 학습하며, 계획을 지속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패턴 인식을 통해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공간을 사용하는지 관찰하여 설계에 반영할 수 있고, 실시간 최적화로 고정된 기능 배분 대신 시간과 상황에 따른 유연한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예측 모델링을 통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여 계획의 결과를 예측하고, 참여적 설계로 시민들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한계는 여전하다
그러나 AI 도시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 기술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AI 도시 담론의 상당 부분이 아직도 스마트시티나 유비쿼터스시티의 언어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시티와 AI 시티 사이에는 분명 기술적 차이가 있다. 전자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인간 관리자가 최적화 결정을 내리는 구조라면, 후자는 그 결정 자체를 기계에 맡긴다. 하지만 과연 그 차이가 도시를 덜 기계적으로 만드는가? 오히려 인간의 판단마저 기계에 위임함으로써 도시는 더욱 철저히 기계적 논리에 지배당할 위험이 있다. 여전히 '최적화'와 '효율성'이 핵심 가치이고, 시민들은 시스템이 서비스를 제공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토론토의 사이드워크 랩스 프로젝트가 시민 반발로 중단된 것, 중국의 스마트시티들이 감시 도구로 변질된 것, 그리고 머스크의 스타베이스가 기업 도시로 기능하는 것을 보면, AI 기술 자체로는 기술주의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명확하다.
AI 도시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데이터 결정론의 문제로, AI는 측정 가능한 것만을 다룰 수 있지만 도시의 가장 중요한 가치들인 소속감, 정체성, 문화적 의미는 정량화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적 편향도 문제인데, AI 시스템은 기존 패턴을 학습하므로 현재의 불평등을 재생산하거나 확대할 위험이 있다.
기술적 해결주의로 인해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기술적 해법으로만 해결하려는 환원주의적 접근을 취할 수도 있다. 또한 프라이버시 딜레마가 있는데, 개인화된 서비스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사생활 정보가 필요하지만 이는 감시사회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AI 도시가 기존 계획도시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기술적 혁신뿐만 아니라 근본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목적의 전환으로 효율성 최적화가 아니라 시민의 자율성과 선택권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둘째, 과정의 민주화로 전문가 중심 계획에서 시민 참여 중심 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다양성의 포용으로 표준화된 해법 대신 지역별 특수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넷째, 실패의 허용으로 완벽한 시스템 추구가 아니라 지속적 학습과 적응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간 우선주의: 기술 결정론의 극복
지역 도시가 채택해야 할 AI 도시 모델 철학은 공간 우선주의, 즉 '공간이 기술을 이기는 AI 시대의 역설'이다. 전통적 접근법이 AI 기술을 먼저 도입하고 이를 통해 도시 혁신을 이끌어내려 했다면, 새로운 접근법은 매력적인 공간을 먼저 구상하고 AI를 그 구현 비용을 절감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는 AI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시스템의 중심이 아닌 도구로 인식하는 철학적 전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간을 우선하는 철학적 전환은 곧 플랫폼 간 유기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다시 말해, 기술을 도구로 삼을 때 비로소 온라인·오프라인·도시가 서로 보강하며 새로운 도시 모델을 형성할 수 있다.
3대 축 플랫폼 모델의 혁신성
온라인-오프라인-도시 플랫폼의 유기적 결합 모델은 기존 도시 계획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기적 상호작용 측면에서 기능별 구획이 아닌 플랫폼 간 상호 보강 구조를 갖추고 있다. 상향식 발전의 특징으로 무신사-성수동처럼 브랜드와 커뮤니티가 먼저 형성되고 공간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화적 정체성을 중시하여 효율성보다 고유한 장소성과 브랜드 가치에 집중한다.
현대 어바니즘은 멈포드와 제이콥스의 핵심 통찰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 멈포드의 휴머니즘처럼 기술이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며, AI를 도구로만 활용하고 목적은 인간적 공간 조성에 둔다. 제이콥스의 복잡성 이해를 반영하여 도시를 단순한 시스템이 아닌 복합적 생태계로 인식하며, 3대 축 플랫폼의 유기적 결합이 이를 보여준다. 또한 상향식 발전의 원칙에 따라 전문가가 아닌 실제 사용자들의 선택과 행동이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이 모델도 한계가 있다. '성공 패턴의 복제' 시도나 기술 격차 문제 등이 여전히 남아있고, 모든 도시나 지역이 동일한 방식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새로운 가능성과 지속되는 도전
다시 이글이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간다. AI 도시가 계획도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조건부 긍정이다. 기술 자체로는 불가능하다. 웰스부터 머스크까지, 기술주의적 사고가 변하지 않는 한 결과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간을 우선시하고 기술을 수단으로만 활용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핵심은 AI 도시의 성공 여부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진짜로 성공하는 도시들을 보면 첨단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 매력이 핵심이었다. AI 도시 역시 기술의 정교함이 아닌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매력으로 평가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