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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에서 반기술로?

by 골목길 경제학자

반자본에서 반기술로?


권력에 대한 견제는 자유주의 사회의 근간이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권력의 집중이 어떻게 자유를 파괴하는지 경고했다.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면 경쟁은 사라지고, 경쟁이 사라지면 자유도 사라진다. 그렇기에 자유사회는 끊임없이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해야 한다.


2010년대 이전까지 견제의 대상은 비교적 단순했다. 자본, 그리고 거대 자본이었다. 독점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면 가격을 통제하고 경쟁자를 배제한다. 이에 대응하는 방식도 명확했다. 반독점법과 공정거래 정책을 통해 자본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고,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며, 기업 분할을 통해 경쟁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20세기 자본주의는 이런 방식으로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빅테크와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기업들은 전통적인 자본 규제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힘은 자본의 크기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하고, 데이터가 누구의 행동을 예측하며, 플랫폼이 어떤 거래를 중개할지 설계한다. 기업을 분할해도 알고리즘은 여전히 작동하고, 벌금을 부과해도 데이터 독점은 계속된다. 문제는 자본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있다. 이제 우리는 기술을 직접 규제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어떤 기술을 견제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보면 여러 형태의 반기술 전통이 존재했다. 산업혁명기의 러다이트는 기계를 파괴하며 노동의 존엄을 외쳤고, 1960~70년대의 반문화 운동은 기술사회를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했다. 또 일부 공동체는 현대 기술을 선별적으로 거부하며 신앙과 공동체 중심의 삶을 지킨다. 우리가 아는 아미쉬 공동체다. 이후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인간의 손이 닿는 범위의 기술, 즉 휴먼 스케일의 기술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나 유전자 편집처럼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기술에 대해 ‘견기술’—강력한 규제를 통한 통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처럼 반기술의 역사는 단순한 기술 거부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기술의 윤리학’이었다. 문제는 기술을 거부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다. 기술은 우리의 일상, 경제, 인간관계, 심지어 정체성까지 지배한다. 이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기술을 받아들이고 어떤 기술을 거부할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그 기준은 자본을 판단하는 기준과 다르지 않다. 크기와 집중도.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 독점 구조를 형성하는 기술, 소수의 기업이나 국가가 통제하는 기술은 반드시 견제해야 한다. 루이스 멈포드는 이미 1960년대에 이런 ‘거대기술(megatechnics)’의 위험을 경고했다. 거대기술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보다 체계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작동한다.


오늘날의 인공지능과 플랫폼은 멈포드가 말한 바로 그 거대기술이다. 구글, 메타, 오픈 AI 같은 기업들은 단순한 산업 주체를 넘어 새로운 권력 체계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기술을 통해 시장을 통제할 뿐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과 인간의 행동 양식을 규정한다. 자본의 독점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술의 독점이다.


반자본과 반기술은 흔히 같은 저항으로 간주되지만, 거대기술의 시대에는 둘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거대기술을 반대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반자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경쟁 원리가 거대기술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거대기술인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대체한 개인 컴퓨터는 IBM의 독점을 무너뜨린 수많은 경쟁 기업들의 혁신으로 성공했다. 그렇기에 거대기술 앞에서는 '친자본이면서 반기술'이라는 조합이 가능하다.


자본과 기술에 대한 다양한 조합은 자본주의의 역사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산업기술 낙관주의에 기초한 20세기 산업사회 사회주의는 친기술·반자본적이었다. 반면 탈산업 시대의 신좌파는 반기술·반자본적 성향을 강화했다. 친기술·친자본은 산업사회 관료 엘리트와 오늘날 실리콘밸리 기술 엘리트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플랫폼과 AI 경제의 등장은 ‘반기술·친자본’이라는 새로운 실천 이념을 요청한다.


거대기술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새로운 균형이다. 기술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다.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제3의 응전도 기술의 분산화와 개인화다. 플랫폼에 집중되어 있는 AI 기술을 개인 소유 AI로 전환해야 한다. 로컬에서 작동하는 AI,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AI 말이다.


친자본적 질서를 유지하되 반기술적 감시를 강화하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거대기술 시대의 현실적 해법이다. 진정한 반기술은 기술을 인간의 손에 되돌려놓기 위한 사회적·경제적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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