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을 방문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을 만나 GPU 26만 장 공급을 "약속"했다. 언론은 환호했고, 세 CEO 만남은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됐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묘한 불편함이 남았다. 한 기업 CEO가 국가별로, 기업별로 AI 시대 전략 자원을 배분하는 광경. 이것이 정상적 방식인가?
GPU가 특별한 이유는 전략 자원이기 때문이다. AI 칩은 단순한 반도체가 아니다. 군사 AI, 감시 체계, 사이버 무기의 핵심이다. 미국이 이를 "이중용도 기술"로 분류하고 엄격히 통제하는 이유다. GPU는 AI 시대 석유이자,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다.
우리는 국가가 전략자원을 무기화하는 데 익숙하다. 1973년 OPEC 석유 금수, 2010년 중국 희토류 수출 제한. 불편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국가 간 문제였고, 외교로 대응할 수 있었다.
엔비디아는 다르다. UAE 50만 장, 영국 6만 장, 한국 26만 장. 민간 기업의 새로운 공급망 외교, 'GPU 외교'다. 한정된 물량에서 특정 국가 공급은 다른 국가에 대한 '제재' 만큼의 전략적 효과를 낳는다.
엔비디아는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 민간 기업이고, 고객 우선순위는 경영 판단이다. 미국 상무부 수출통제도 작동한다. 한국 기업 거래도 사후 승인받으면 된다. 형식상 문제없다.
하지만 안보적 파장이 크다. 이 결정이 한 기업 CEO 판단에 상당 부분 맡겨져 있다는 점이 문제다. 배분 기준은 투명하지 않다. 국가 안보가 아닌 '민간 안보(private security)' 시대다.
문제의 뿌리는 독점과 대안 부재다. 엔비디아는 AI 칩 시장 80~90%를 장악했다. 경쟁자가 있었다면 각국은 선택권을 가졌을 것이다. 지금은 선택이 아니라 배정을 기다린다. 독점이 민간 기업에게 국가를 상대로 협상력을 줬다.
미국과 다자간 수출통제는 "누구에게 팔지 말 것인가"만 규율한다. "각국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다루지 않는다. 각국은 개별적으로 엔비디아와 협상한다. 젠슨 황은 합법적으로 행동하지만, 공급 원칙이 기업 논리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적절한가?
국제사회는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전략 기술을 독점한 민간 기업의 배분 결정에 어떤 원칙이 필요한가? 투명성과 공정성은 어떻게 보장하나? 시장 효율을 해치지 않으면서 안보를 확보할 방법은? 이것은 GPU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자컴퓨팅, 첨단 배터리, 생명공학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26만 장 확보는 성과다. 하지만 드러난 구조적 문제는 짚어야 한다. 시장 논리와 안보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국제 규범이 필요하다. 그것이 GPU 정치경제학이 던지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