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경험에 대한 백화점의 고민이 깊어진다. 한편으로는 명품으로 차별화하고, 또 한편으로는 팝업과 공간기획으로 창조도시의 우연성을 재현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품 기반 브랜드 경험으로 충분할까?
전통적으로 브랜드 경험은 상품 중심이었다. 제품의 품질, 디자인, 기능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고, 매장 인테리어, 제품 진열, 판매 서비스를 통해 브랜드를 경험하게 했다. 그러나 현재 소비자가 소비하는 콘텐츠는 점차적으로 크리에이터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다.
크리에이터 브랜드란 창작자의 세계관, 취향,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굿즈는 그 세계관의 표현이고, 공간은 그 취향의 구현이며, 콘텐츠는 팬덤과의 소통 방식이다. 상품 브랜드가 '무엇을 파는가'에 집중한다면, 크리에이터 브랜드는 '누가, 왜, 어떻게 만드는가'를 소비한다. 상품에서 창작자로, 기능에서 세계관으로, 거래에서 관계로 브랜드 경험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DDP에서 진행되는 어반플레이의 울트라 백화점은 이러한 전환을 실험하는 전시다. 기획자들은 이 전시를 "소비의 끝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가치, 브랜드 경험의 확장"이라 정의한다. 오래도록 소비는 제품을 사고파는 행위로 인식됐지만, 오늘날 소비는 큐레이션된 정보, 크리에이터가 만든 세계와 취향, 강력한 팬덤이 형성한 브랜드 스토리를 향유하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는 '울트라 인사이트', '울트라 크리에이터', '울트라 마니아' 세 개의 공간을 통해 미디어, 크리에이터, 패션,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스토리를 하나의 공간에서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관람객은 단순한 구매자를 넘어, 브랜드를 깊이 탐험하는 참여자가 된다.
온라인 크리에이터 브랜드를 오프라인에서 재구성하기
문제는 온라인에서 소비되는 크리에이터 브랜드를 어떻게 오프라인에서 재구성하는가다. 온라인에서 크리에이터 브랜드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피드, 팬덤이 형성하는 댓글과 공유, 콘텐츠가 만드는 세계관을 통해 경험된다. 이효리, 엄정화, 김재중 같은 창작자들은 각자 온라인에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 팬덤 기반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 왔다.
한때 명확했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개인의 취향은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는 다시 공간이 되며, 공간은 커뮤니티를 만든다. 전시 기획자는 이 복잡한 전환을 '하이퍼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전시 기획자가 제시한 해법은 이렇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이 역으로 알고리즘을 알고리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는 이제 알고리즘의 손을 거친다. 뉴스가 보여주는 기사, 유튜브의 추천 영상, 온라인 스토어의 상품 진열까지, 세상은 보이지 않는 코드에 의해 배열된다. 이 전시는 그 질서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다시 편집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하이퍼 알고리즘"이란 알고리즘을 더 빠르게, 더 세게 돌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알고리즘의 계산이 닿지 않는 초개인적 영역, 즉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취향과 감정의 층위를 탐구한다. 플랫폼이 만든 피드의 질서를 잠시 멈추고, 그 위에서 인간이 다시 자신의 취향을 조합하는 법을 실험하는 것이다. 전시 기획자는 이를 세 개의 공간을 통해 구현한다.
세 개의 전시 공간, 세 가지 편집의 방식
ULTRA INSIGHT는 "무엇을 사는가"보다 "왜 사는가"를 묻는다. 온라인 플랫폼에 흩어진 문장들이 하나의 거리처럼 늘어서 있는 텍스트 스크랩에서 출발한다. 캐릿, 롱블랙, 온큐레이션 같은 플랫폼에서 가져온 텍스트 조각들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알고리즘의 흔적들이다. 관객은 그 문장들 사이를 거닐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나만의 책을 만든다. 이 단순한 행위는 플랫폼이 던진 정보를 다시 엮어 자신만의 세계로 편집하는 과정이다. 알고리즘이 제시한 질서를 개인의 감각이 다시 배열하는 순간, 비로소 '나의 피드(큐레이션 북)'가 완성된다.
ULTRA CREATOR에서는 크리에이터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효리, 엄정화, 김재중 등 각자의 색을 지닌 창작자들이 자신의 미학과 라이프스타일을 오브제로 번역해 놓았다. 관객은 그 세계를 오가며 "어떤 감각이 나와 맞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콘텐츠의 편집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이제 세계관의 편집이 시작된다. 크리에이터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고르는 일이다.
더 나아가 이 공간은 관객이 자신을 크리에이터로 상상하게 만든다. 울트라 크리에이터 컨셉에 따라 나라면 어떤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나의 취향과 가치관이 결합되면 어떤 하이퍼 알고리즘이 결과물로 나올 수 있을까? 이는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쇼윈도를 조성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다.
ULTRA MANIA는 캐릭터, 팬덤, 키링과 같은 수집의 세계를 다룬다. 코인을 넣어 키링을 뽑는 행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취향을 구체화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상징적 행위다. 작은 사물이 나의 세계를 드러내고, 소유가 하나의 언어로 변하는 순간, 디지털 팬덤은 현실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알고리즘은 더 이상 나를 대신 선택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취향으로 세계를 수집한다.
세 공간을 따라가며 관객은 하나의 흐름을 경험한다. 인사이트에서 '이유'를 편집하고, 크리에이터에서 '세계'를 선택하며, 마니아에서 '취향'을 수집한다. 편집의 대상이 문장에서 사람으로, 그리고 사물로 이동할수록 알고리즘의 영향은 약해지고 인간의 감각은 강해진다. 결국 하이퍼 알고리즘이란 알고리즘에 대한 개인 편집의 결과물이다. 나의 피드, 나의 쇼윈도, 나의 수집품으로 구체화되는 이 결과물들은 알고리즘의 세계 속에서 인간이 다시 자기만의 질서를 만드는 법을 보여준다.
하이퍼 알고리즘은 울트라 백화점 시리즈의 첫 번째 시즌이다. 다음 시즌의 주제는 '포스트 서브컬처', 그리고 그다음은 '로컬 헤리티지'다. 첫 번째 시즌이 온라인에서의 초개인화 취향을 탐구했다면, 두 번째는 디지털 문화의 커뮤니티를, 세 번째는 도시와 지역이 만들어내는 창작 생태계를 다룰 예정이다.
백화점의 미래를 위한 질문
이 전시가 백화점에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상품 브랜드 경험에서 크리에이터 브랜드 경험으로의 전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명품 매장과 팝업 스토어만으로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대의 소비자를 충족시킬 수 없다.
미래의 백화점은 상품을 진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크리에이터의 세계관을 경험하고 소비자가 자신만의 취향을 편집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울트라 백화점이 보여준 것처럼, 큐레이션된 콘텐츠, 세계관의 입체적 구현, 팬덤과의 상호작용이 통합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백화점이 단순한 유통 채널에서 벗어나 크리에이터 시대의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그 해답의 실마리가 이 전시 안에 있다.
결국 하이퍼 알고리즘은 전시의 제목이 아니라 시대의 은유다. 알고리즘이 만든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편집하고, 고르고, 만들어가는 존재다. 이 전시는 그 사실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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