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경제의 최전선을 알고 싶다면, 현재 DDP에서 열리고 있는 '울트라 백화점'을 추천한다.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에서 크리에이터를 온라인, 오프라인, 어번 크리에이터로 분류한 나에게 준 가장 큰 인상은 다양한 융합과 경계 넘나들기다.
엄정화는 연예인에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로, 이효리는 제주의 로컬 크리에이터에서 연희동의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로, 김재중은 팬덤 기반의 콘텐츠 제작자로 각자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때 명확했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흐려지고, 개인의 취향은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는 다시 공간이 되며, 공간은 커뮤니티를 만든다.
이 전시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상품 진열이 아니라,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고 관객과 직접 만나는 새로운 방식이다.
더 큰 의미는 없을까? 나는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본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 개인이 역으로 알고리즘을 알고리즘할 수 없을까?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는 이제 알고리즘의 손을 거친다.
뉴스가 보여주는 기사, 유튜브의 추천 영상, 온라인 스토어의 상품 진열까지, 세상은 보이지 않는 코드에 의해 배열된다.
이 전시는 그 질서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다시 편집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하이퍼 알고리즘”이란 알고리즘을 더 빠르게, 더 세게 돌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알고리즘의 계산이 닿지 않는 초개인적 영역,
즉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취향과 감정의 층위를 탐구한다.
플랫폼이 만든 피드의 질서를 잠시 멈추고,
그 위에서 인간이 다시 자신의 취향을 조합하는 법을 실험하는 것이다.
전시는 세 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ULTRA INSIGHT, ULTRA CREATOR, ULTRA MANIA.
각 공간은 알고리즘 이후의 취향, 창작, 소비를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ULTRA INSIGHT는 “무엇을 사는가”보다 “왜 사는가”를 묻는다.
온라인 플랫폼에 흩어진 문장들이 하나의 거리처럼 늘어서 있는 텍스트 스크랩에서 출발한다.
캐릿, 롱블랙, 온큐레이션 같은 플랫폼에서 가져온 텍스트 조각들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알고리즘의 흔적들이다.
관객은 그 문장들 사이를 거닐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나만의 책을 만든다.
이 단순한 행위는 플랫폼이 던진 정보를 다시 엮어 자신만의 세계로 편집하는 과정이다.
알고리즘이 제시한 질서를 개인의 감각이 다시 배열하는 순간, 비로소 ‘나의 피드’가 완성된다.
ULTRA CREATOR에서는 크리에이터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효리, 엄정화, 김재중 등 각자의 색을 지닌 창작자들이
자신의 미학과 라이프스타일을 오브제로 번역해 놓았다.
관객은 그 세계를 오가며 “어떤 감각이 나와 맞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콘텐츠의 편집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이제 세계관의 편집이 시작된다.
크리에이터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고르는 일이다.
ULTRA MANIA는 캐릭터, 팬덤, 키링과 같은 수집의 세계를 다룬다.
코인을 넣어 키링을 뽑는 행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취향을 구체화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상징적 행위다.
작은 사물이 나의 세계를 드러내고,
소유가 하나의 언어로 변하는 순간,
디지털 팬덤은 현실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알고리즘은 더 이상 나를 대신 선택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취향으로 세계를 수집한다.
세 공간을 따라가며 관객은 하나의 흐름을 경험한다.
인사이트에서 ‘이유’를 편집하고, 크리에이터에서 ‘세계’를 선택하며, 매니아에서 ‘취향’을 수집한다.
편집의 대상이 문장에서 사람으로, 그리고 사물로 이동할수록 알고리즘의 영향은 약해지고 인간의 감각은 강해진다.
결국 이 전시는 알고리즘의 세계 속에서 인간이 다시 자기만의 질서를 만드는 법을 보여준다.
하이퍼 알고리즘은 울트라 백화점 시리즈의 첫 번째 시즌이다.
다음 시즌의 주제는 ‘포스트 서브컬처’, 그리고 그다음은 ‘로컬 헤리티지’다.
첫 번째 시즌이 온라인에서의 초개인화 취향을 탐구했다면,
두 번째는 디지털 문화의 커뮤니티를,
세 번째는 도시와 지역이 만들어내는 창작 생태계를 다룰 예정이다.
결국 하이퍼 알고리즘은 전시의 제목이 아니라 시대의 은유다.
알고리즘이 만든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편집하고, 고르고, 만들어가는 존재다.
이 전시는 그 사실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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