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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기술, 그리고 AI

by 골목길 경제학자

나와 기술, 그리고 AI

제3의 응전 메덩골정원 강연 원고


안녕하십니까.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모종린입니다. 오늘 세계 최초의 니체 정원에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근대를 성찰했듯이, 우리도 오늘 AI 시대를 성찰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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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란 무엇인가?

먼저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봅시다. 기술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기술을 도구로 생각합니다. 망치처럼, 자동차처럼 말이죠. 하지만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기술은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우리의 삶과 관계, 사고방식까지 바꾸는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기술이 제공하는 두 가지 작동 원리입니다. 기계 작동 원리와 인간 작동 원리입니다. 과거 기술은 기계 작동 원리로만 활용되었습니다. 증기기관과 컴퓨터가 그랬습니다. 입력하면 출력이 나오는, 정확하고 반복 가능한 원리였죠. 그런데 AI는 다릅니다. AI는 인간 작동 원리를 복제하려 합니다. 인간처럼 학습하고, 판단하고, 창작합니다. 여기서 기술의 중요성과 위협이 동시에 높아졌습니다. 내가 AI를 쓰는가, AI가 나를 닮아가는가, 아니면 내가 AI를 닮아가는가?


기술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기술은 우리에게 기회와 종속, 두 가지 영향을 미칩니다. 기회는 기술이 내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종속은 내가 스스로 기술의 논리에 맞춰 사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은 협력, 경쟁, 대체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AI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나에게 어떤 옵션이 있나?

그렇다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요? 우리 앞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수용, 거부, 선택입니다. 수용은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AI가 제시하는 대로, 플랫폼이 설계한 대로 따라가는 것이죠. 편리하지만 주체성을 잃습니다. 거부는 기술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나는 AI 안 써"라고 선언하는 것이죠. 안전하지만 고립됩니다. 선택은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 쓰는 것입니다. 기술과 나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 필요한 것만 취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나는 기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기술에 대한 개인의 태도

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반기술: 기술을 거부한다.

탈기술: 기술에서 도피한다.

견기술: 기술을 경계한다.

선기술: 더 좋은 기술을 찾는다.

숭기술: 기술을 무조건 수용한다.

선기술이 제3의 응전의 핵심입니다. 기술을 인간적 가치에 맞게 길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선기술입니다.


AI에 대한 5가지 태도

AI에 대해서도 다섯 단계가 있습니다.

거부 → 회피 → 경계 → 활용 → 의존

지금 한국 사회는 '숭기술'에서 '종속'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숭기술은 기술을 무조건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AI 활용법을 배워야 생존한다"는 담론이 지배적이죠. 기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확산되지 않으면, 우리는 숭기술에서 종속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왜 반기술 전통이 없나?

서구에는 러다이트 운동,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공예운동, 히피와 해커의 PC 혁명 등 다양한 기술 대응 운동이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왜 이런 전통이 없을까요? 압축 성장 때문입니다. 기술 덕분에 한강의 기적을 이뤘기에 '기술 = 진보'라는 등식이 너무 강합니다. 추격형 발전으로 성찰할 여유가 없었고, 기술 낙관주의가 지배적입니다. 그 결과, 경쟁력만 이야기하고 인간화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역설: 기술 비판 철학의 부재 → 원천기술 단계 한계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기술 비판 전통이 없다는 것이 기술 혁신에도 문제가 됩니다.

진정한 혁신은 근본적 질문에서 나옵니다.

“왜 컴퓨터는 거대해야 하나?" → PC 혁명.

“왜 정보는 중앙에서 통제되어야 하나?" → 인터넷.

하지만 우리는 "왜?"를 묻지 않습니다. 그 결과 원천 기술은 못 만들고 활용만 잘합니다. 비판 없는 근본 혁신은 없습니다.


시작은 기술철학이다

나만의 기술철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겁니다. "내가 기술을 쓰는가, 기술이 나를 쓰는가?" 하이데거는 기술결정론을 경계했습니다. 기술이 자율적으로 발전하며 인간을 지배한다는 생각 말이죠. 그는 기술의 본질이 기술적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기술은 인간의 선택이고, 우리가 어떻게 기술과 관계 맺느냐의 문제입니다.


기술철학의 큰 흐름

기술철학에는 큰 흐름이 있습니다. 기술자율론은 기술이 스스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기술에는 내재적 논리가 있어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죠. 하이데거가 경계했던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인간이 기술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경험론은 다릅니다. 칼 미첨이 대표적인데, 기술은 인간의 경험과 선택을 통해 구성된다고 봅니다. 기술의 본질은 기술적이지 않습니다. 철학적이고, 윤리적이고, 정치적입니다. 기술을 어떻게 경험하고 사용하느냐가 기술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루이스 멈포드는 이 두 관점을 직관적으로 설명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기술을 권위주의적 기술과 민주적 기술로 구분했습니다. 권위주의적 기술은 중앙집중적이고 거대합니다. 피라미드, 메인프레임이 그 예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술자율론이 우려하는 기술입니다. 민주적 기술은 분산적이고 개인이 통제합니다. 장인의 도구, PC가 그 예입니다. 이것이 기술경험론을 증명하는 기술입니다.


멈포드의 핵심 통찰은 이것입니다. 기술의 방향은 사회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권위주의적으로 갈지, 민주적으로 갈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것이 SCOT(기술의 사회적 구성) 이론으로 발전했습니다.


기술과 문화, 무엇이 먼저인가?

기술자율론과 기술경험론의 대립은 결국 이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기술이 문화를 결정하는가, 문화가 기술을 구성하는가?

마르크스 vs 부르디외: 마르크스는 기술이 사회를 결정한다고 봤습니다. 부르디외는 문화가 기술을 구성한다고 봤습니다.

데카르트 vs 들뢰즈: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했습니다. 정신은 사유하는 것이고, 육체는 물질이죠. 들뢰즈는 인간과 기술이 이미 뒤엉켜 있다고 봤습니다.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신체의 감각입니다. 신체가 장소와 만날 때 발생하는 분위기, 그 강도(intensity)가 복제 불가능한 경험을 만듭니다.


나의 철학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요? 부르디외와 들뢰즈는 AI에 대한 주체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역설적이게도,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기술 지배를 의미합니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면, 기술은 인간 밖의 자율적 힘이 됩니다. 들뢰즈의 일원론은 오히려 인간 감각의 대응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신체로 기술과 만날 때, 그 강도를 느낄 때, 우리의 선택과 실천이 기술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부르디외와 들뢰즈 편입니다. 기술이 밀어붙이면, 문화가 되받아칩니다.


거대기술과 문화운동

지난 200년을 보면 패턴이 반복됩니다.

제1순환: 산업혁명 → 예술공예운동

제2순환: 메인프레임 → 반문화 & PC혁명

제3순환: 빅테크 AI →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패턴은 명확합니다. 중앙집중 기술 → 창조적 문화운동


왜 문화운동인가?

문화만이 AI가 모방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기술 집중에 대한 역사적 응전 방식이며, 개인의 창조적 실천이 구조를 바꾸는 경로입니다.


문화운동의 목표와 전략

제3의 응전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요? 목표는 세 가지입니다. 자율성, 창조성, 공동체성입니다. AI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AI를 통제하고, AI가 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창작을 돕고, 기술이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짜 관계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전략은 무엇일까요? 기술적 전유, 커뮤니티 플랫폼, 대안적 상상력입니다. 빅테크가 독점한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거대 플랫폼 대신 우리가 소유하는 작은 플랫폼을 만들고, "AI 시대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개인 소유 AI입니다.


개인 소유 AI의 현재와 과제

지금 AI는 클라우드에 있습니다. 우리는 구독료를 내고 접속합니다. 개인 소유 AI는 다릅니다. 내 컴퓨터에 설치되어 독립적으로 작동합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스테이블 디퓨전은 완전 오픈소스 이미지 생성 AI로, 누구나 자기 컴퓨터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온 디바이스 AI도 등장했습니다. 애플의 Apple Intelligence, 구글의 Gemini Nano처럼 스마트폰에서 직접 작동하는 AI들이죠. 로컬 LLM을 쉽게 설치할 수 있는 Ollama, LM Studio 같은 도구들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제도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컴퓨팅 파워: 개인 기기의 성능이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접근성: 일반인이 쉽게 설치하고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거버넌스: 개인이 AI를 소유하면 악용 위험도 커집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됩니다. 1970년대 "개인용 컴퓨터는 불가능하다"라고 했지만, 지금 모두가 컴퓨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AI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맺는말

여러분, 기억해 주세요. 기술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150년 전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 시대에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50년 전 스튜어트 브랜드는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말할 차례입니다. "AI 시대는 모든 사람이 크리에이터로 살 수 있다."

이것이 제3의 응전입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오늘 하루 내가 내린 선택과 AI가 내린 선택을 구분해 보세요. 이 작은 선택들이 모이면, 기술의 방향이 바뀝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감사합니다.


#제3의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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