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앵커

by 골목길 경제학자

모두의 앵커


길게 보면 지역발전의 성패는 지역과 개인의 관계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것에 달렸다. 그동안 나는 라이프스타일, 골목길, 동네, 로컬 등의 단어로 개인과 지역을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 기업인을 대상으로 "기업,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다"라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대학, 종교기관, 기업, 지역 창업가, 소상공인,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만나며 해온 모든 강연이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앵커가 되어라."


지역발전은 누군가의 일이 아니다

앵커(anchor)의 사전적 의미는 닻이다. 배가 흘러가지 않도록 바닥에 내리는 쇠. 지역으로 치면 사람과 활동을 끌어모으고, 공동체를 붙들어주는 존재다. 거점이자 구심점이고, 뿌리이자 토대다.


우리는 그동안 지역의 앵커를 거대한 존재로 상상해 왔다. 지역 경제를 이끄는 국가산단,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기업 본사,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이들이 닻이 되어 지역을 붙든다고 생각했다.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생각이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작으니까, 지역은 내 일이 아니야." 앵커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기관도, 기업도, 개인도 자신이 뿌리내린 지역에서 영향력을 만들 수 있다.


소상공인에게 앵커 전략이 가장 필요하다

앵커 전환이 가장 시급한 동네 구성원은 바로 소상공인이다. 동네의 소상공인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웃을 만나고, 지역의 일상을 함께 살아간다. 대기업이 흉내 낼 수 없는 관계와 신뢰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많은 소상공인이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여긴다. 플랫폼에 종속되고, 대형 자본과의 경쟁에 지쳐,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경쟁력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다. 내 가게가 동네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내가 쌓아온 단골과의 신뢰가 곧 브랜드다. 플랫폼이 대체할 수 없는 그 관계가, 플랫폼 시대에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그 비전이 바로 앵커다.


소상공인이 앵커가 될 때, 골목이 살아나고 지역이 살아난다. 중기부도 상권 활성화의 핵심 주체로 앵커스토어(핵점포)를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다.


AI 시대, 왜 앵커가 경쟁력인가

AI가 앵커 흐름을 가속화한다. AI가 빠르게 많은 것을 평준화하고 있다. 전문 지식은 검색되고, 콘텐츠는 생성되고, 업무는 자동화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나만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장소다. 관계다. 신뢰다. AI는 전국 어디서든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특정 지역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얼굴과 신뢰는 대체할 수 없다. 디지털이 모든 것을 균질화할수록, 오프라인의 지리적 존재감은 오히려 희소해지고 값어치가 높아진다. AI 시대일수록 앵커는 더 중요해진다.


현장에서 나온 방법론 — 로컬 브랜딩

그렇다면 앵커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로컬, 상권, 도시재생, 크리에이터 타운 등 필자가 관찰한 다양한 현장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지역이 살아나는 곳에는 반드시 브랜드 생태계가 있었다. 특정 장소에 뿌리를 둔 브랜드들이 서로 연결되고 강화되면서 지역 전체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이 생태계를 만드는 전략이 바로 로컬 브랜딩이다. 단순히 지역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크든 작든, 누구든 자신의 정체성을 지역과 연결하고 그 연결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로컬 브랜딩의 실천이 곧 앵커가 되는 길이다.


모두가 앵커가 될 수 있다

앵커는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역과 연결하고 신뢰를 쌓으면 된다.


내가 앵커가 될 때, 지역은 나의 토대가 된다. 그 신뢰는 AI가 만들어줄 수 없는 나만의 경쟁력이 되고, 지역을 위한 선택이 곧 나를 위한 전략이 된다. 모두의 앵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다.


앞으로 이 주제로 강연할 생각이다. 다음 강연은 강릉시청이다. 이 제목을 제안했다.

"모두의 앵커, 내가 지역의 앵커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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