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홍콩 타이포구 왕푹코트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현재까지 최소 94명이 사망했고 279명이 실종 상태다(11월 27일 기준). 실종자 대부분이 사망자로 확인될 가능성이 높아 최종 희생자는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3년에 건설된 이 공공분양 아파트는 8개 동, 31층 규모로 약 2,000세대가 거주하는 대단지였다. 화재는 외벽 수리 공사 중 F동을 감싼 대나무 비계와 안전망에서 시작되어 인접 6개 동으로 순식간에 번지며 총 7개 동을 집어삼켰다.
직접 원인과 구조적 원인
화재의 직접 원인은 가연성 대나무 비계와 방화 기준에 미달하는 안전망이었다. 홍콩에서는 2000년대 초 조사에서도 비계의 약 90%가 대나무였고, 2025년에도 여전히 많은 건설 현장에서 대나무 비계와 안전망이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안전망의 난연 기준은 법적 강제가 없는 가이드라인 수준에 그쳤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비방화 안전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엘리베이터 로비 창문의 가연성 스티로폼과 공사장에 적치된 신너·폼 등도 화재 확산을 가속했다. 대나무 비계와 안전망이 건물을 감싸며 만든 일종의 ‘굴뚝 효과’는 불길을 고층과 인접 동으로 빠르게 이동시켰다.
구조적 원인은 더 근본적이다. 2016년 외벽 수리가 필요하다는 점검 결과가 나왔음에도 업주협회(Owners’ Corporation)는 2024년 1월이 되어서야 수리 방안을 확정했다. 8년 동안 2,000명의 개별 소유자들은 1.5억~3.3억 홍콩달러에 이르는 수리비를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최종 선택된 3.3억 달러 방안은 세대당 약 2,750만 원의 부담을 의미하는데, 주민의 40%가 65세 이상 고령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비용 압박이 안전 기준 후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노후 아파트 프레임의 오류
한국 언론 일부는 이번 사건을 “노후 아파트 화재”로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건축 후 33년은 노후 시점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첫 번째 대규모 리모델링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홍콩에서도 재건축 논의는 본격화된 적이 없으며, 외벽 보수를 통해 추가 30~50년 사용을 계획하고 있었다. 실제로 최초에 확인된 문제도 외벽 마감재 손상과 방수 기능 저하로, 정상적인 유지보수의 범위였다. 화재는 건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수리 과정에서 안전 기준이 지켜지지 않은 데에서 비롯됐다.
기존 거버넌스 구조로는 충분하지 않다
홍콩의 업주협회는 한국의 입주자대표회의보다 법적 권한이 강하다. 건물관리법(Building Management Ordinance)은 협회 설립과 권한을 상세히 규정하고, 대규모 수리 의사결정 권한을 명확히 부여한다. 그럼에도 8년에 걸친 지연과 비용 절감 압박을 막지 못했다. 2021년 마이애미 샴플레인 타워 붕괴 사고(98명 사망)도 유사한 방식으로 발생했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콘도 관리위원회조차 고액의 보수비를 둘러싼 소유자 간 의견 불일치로 오랜 기간 수리를 미루다가 결국 붕괴로 이어졌다. 문제는 제도적 권한의 강약이 아니라, 비용 부담과 결정권이 다수의 개별 소유자에게 분산된 구조 자체에 있다.
한국의 더 큰 취약성
한국은 아파트를 개별 소유하는 비중이 매우 높고, 입주자대표회의의 의사결정은 홍콩보다 더 높은 동의율을 요구한다. 여기에 재건축 기대까지 더해지면서 “어차피 재건축할 건물인데 왜 수리에 돈을 쓰는가”라는 논리가 작동한다. 1980년대 정부는 용적률 확대를 통한 재건축 이익을 제도적으로 설계했고, 이 구조가 30년을 재건축 시점으로 인식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구 감소, 성장 둔화, 건설비 상승으로 재건축의 경제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으며, 많은 노후 아파트가 유지보수도 재건축도 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일 위험이 커지고 있다.
집단행동의 역설
공동주택 보수는 본질적으로 집단행동 문제다. 다수의 소유자가 고액 수리비를 두고 합의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재정 능력, 거주 계획, 위험 인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수리 계획을 확정하기까지 8년이 걸린 사실만 보아도, 내부적으로 비용·방식 등을 두고 조율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개인 소유는 이론적으로 개인 책임을 전제하지만, 공동주택에서는 개인 소유가 오히려 개인 책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2,000 가구 공동주택에서 내 집을 수리하려면 다른 1,999명의 동의가 필요하고, 내가 비용을 낼 의사가 있어도 다른 사람의 부담 능력에 따라 결정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론
왕푹코트 화재는 개인 소유가 분산된 공동주택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은 홍콩보다 취약한 거버넌스 구조와 재건축 기대가 결합되어 있어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국의 집수리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해 내부 거버넌스를 보완해야 한다. 전문가 참여 의무화, 안전 관련 의사결정의 신속화, 수리 비용 분산 메커니즘 구축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건축 기준을 강화해 재건축 기대를 차단해야 한다. 재건축을 재산 증식 수단이 아니라 건물 수명이 다했을 때 선택하는 최종 단계로 위치시킨다면, 안전과 유지보수가 우선시될 것이다.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왕푹코트 희생자들은 집단 행위 문제를 방치했을 때의 대가를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이 이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수많은 아파트 거주자의 안전을 결정할 것이다.
포스트스크립트: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현재의 공동주택 개인 분양 중심에서 '단독주택은 소유, 공동주택은 임대'라는 구조적 분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런 전환이 쉽지 않겠지만, 현재 체제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집단 행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이다. 단독주택은 개인 소유와 개인 책임이 일치하고, 공동주택은 재산권을 공공이나 전문 임대기업으로 통합해 전문적 관리, 신속한 의사결정, 장기적 가치 유지, 비용의 효과적 분산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원칙은 공통적으로 소유와 책임을 일치시킨다. 많은 서유럽 도시에서 공동주택의 다수가 임대이며, 일부 도시는 아파트의 70% 이상이 임대다. 마이애미나 홍콩 같은 대형 참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도 이러한 소유 구조의 단순성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