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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03. 2020

집수리의 사회화와 개인화

재개발, 재건축, 도시재생의 본질은 집수리다.


주택 공급, 도시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등 이런저런 목표를 이야기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노후·불량 건축물의 수리다.*


재개발/재건축과 도시재생의 차이는 집수리 방식이다. 전자가 구건물을 철거하고 건물을 새로 짓는 방식으로 집을 수리한다면, 후자는 기존 건물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보수하거나 문화시설, 생활시설, 가로정비 등 주거환경의 개선을 통해 집수리를 유도한다.


그런데 재개발/재건축과 도시재생 논의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빠져 있다.


정부가 왜 개인의 집수리에 개입하는 걸까?



전국의 주택이 모두 단독주택이라면 재개발/재건축과 도시재생 정책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주택을 재산 보전을 위해 독립적으로 보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공동주택이라는 사실이 정부의 개입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동주택 보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집단 행위의 문제(거래비용의 문제), 즉 건축물과 단지의 지분을 소유한 다수의 사람에 의한 의사 결정 문제가 민간 중심의 집수리를 어렵게 한다.


하지만 정부 개입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정부가 공동주택 수리의 규칙을 정하면 민간이 자율적으로 공동주택을 수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정부의 개입이 만연하다면, 원칙 없는 개입이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한 번의 정부 개입이 정부 개입의 반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빨리 민간 중심의 공동주택 보수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집수리 비용의 사회화


현재 한국은 공동주택 보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집단 행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한국의 해결 방식은 집수리의 사회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민들이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지 않고 재개발/재건축조합을 통해 집을 수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이 부동산 개발로 얻은 수익으로 낙후된 주택을 수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주민들이 지불하지 않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사회가 지불하는 비용은 원주민 퇴출, 주거 환경 악화, 부정적 외부효과 등이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재개발이나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정부 예산이 사회적 비용으로 추가된다. 필자는 개인이 낙후 건축물 보수의 이익을 챙기고, 사회가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을 집수리의 사회화라고 표현한다.


집수리 비용의 사회화가 심각한 분야가 재건축이다. 기반 시설이 열악한 지역(예: 판잣집 밀집 지역)에서 시행되는 재개발과 달리 기반 시설이 양호한 지역(예: 강남 노후 아파트)에서 시행되는 재건축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에게 추가적인 재산 증식 기회를 제공한다. 집수리가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재테크 수단이 된 것이다.


용적률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재건축된 고밀도 아파트는 도시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교통 체증, 자동차 의존, 폐쇄적 단지 등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용적률을 공공재로 보면, 재건축조합에 제공된 추가 용적률은 사회적 비용에 포함된다. 사회가 비용을 지불하는 재건축 사업은 자산의 관리는 재산권을 가진 소유주의 책임이라는 시장경제 원칙에도 위배된다.


집수리 사회화의 원인은 정부 개입에 있다. 정부가 자본 소득이 발생하도록 재건축 방식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이 유지된다면 용도지역과 용적률 상향을 통한 재건축은 저지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용도지구와 용적률, 기부채납, 분양가 상한제, 임대주택, 초과이익환수 등 현재 적용되는 재건축 규제는 협상의 대상이고 언젠가는 완화될 것으로 믿는다. 문제는 용적률 확대를 통한 재건축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제한적인 도시 공간에 무한정 용적률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용적률을 사유재로 인식하는 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1980년대 이후 정부가 용적률을 포함한 재건축 기준을 일관성 없이 집행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공공재개발에 한정해서 층수와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는 등 필요에 따라 재건축 기준을 수시로 바꾼다.


정부가 1980년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서 멀지 않은 장래에 닥칠 집수리의 딜레마는 예측하지 못했을까? 손정목의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도시정책 입안자들도 재개발 문제를 인지했다고 한다.


"문제는 재건축되기 이전부터 용적률이 200 퍼센트에 근접하거나 200 퍼센트를 초과하는 고층(12층 이상) 아파트의 재건축일 것이다. 특히 전국의 아파트 건축 연도가 1980년대에 집중되고 있어 이때에 건축된 아파트들이 건축 후 30년-50년이 되어 재건축이 불가피해졌을 때에 당면할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특히 새 건축물의 용적률을 얼마로 해야 적정한 이윤을 얻으면서도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 해법을 찾는 것이 2010년 이후 도시문제의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마디로 초기 재건축 세대는 재건축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긴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초기부터 재건축을 이윤을 얻어야 하는 사업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재건축을 재테크로 접근했으니 현재 다수의 사람이 그리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재건축과 강남 아파트 정책


재건축에 대한 기대가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대표적인 시장이 강남이다. 강남 부동산 문제 논의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공급 확대론이다. 외국 부자들은 보편적으로 자신의 동네에 사람이 몰리고 번잡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공급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 정상이다. 공급이 제한돼야 부동산 가격도 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남은 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주택 가격까지 낮춘다는 공급 확대를 찬성할까? 필자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재건축에 대한 기대다. 정부가 공급을 늘리려면 기존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기준율 완화해야 하고, 그러면 당장 수혜 대상은 아니더라도 강남에서 재건축을 통한 자산 증식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공급 확대를 지지하는 것이다. 당장 삶의 질과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 재건축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강남 부동산 시장에서 공급 확대는 재건축 기준의 완화를 의미한다.



강남 부동산 가격에 버블이 있다면 재건축 기대에 의한 버블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렇다면 강남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재 방식의 재건축을 동결하는 것이다. 무한 재건축에 대한 기대만 불식시키면, 즉 재건축을 통한 지대추구를 억제하면 부동산 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것이고 강남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리모델링 지원 정책


재건축의 대안은 리모델링이다. 기존 주택을 철거한 후 새로 주택을 건설하는 재건축과 달리 기존 건축물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리모델링을 건물 단위로 추진하면 과밀화와 단지화를 현재 수준에서 저지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다양한 정책으로 공동주택의 리모델링을 지원한다. 정부 정책의 한 축은 주택법과 건축법에 근거한 리모델링 지원 사업이다. 정부가 최근 재건축 기준을 강화하자, 일부 지역에서는 리모델링으로 사업 방향을 돌리고 있다.


또 하나의 축이 주거환경관리사업이다. 현재 정부는 도시재생특별법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 이외에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추진하는 주거환경관리사업과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통해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등이 밀집된 지역의 노후·불량 건축물의 리모델링을 지원한다.


서울시가 주거환경관리사업에 적극적이다. 은평구 산새마을, 성북구 장수마을, 마포구 연남동 등이 노후 주택을 리모델링과 재생으로 보수한 성공적 사례로 인용된다.



구건물을 연결해 건축한 구산동도서관마을



공동주택 리모델링의 방향


앞으로의 방향은 보다 자율적인 리모델링이 되어야 한다. 도시재생특별법이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한 조합 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주택 소유자들이 건물 단위로 건축법에 따라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건물 단위의 리모델링이 지역 단위 사업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단지화를 최소화하면서 집수리를 개인화하는 방법이다.


현재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의 대안을 찾는 재건축조합이 늘어나는 것에 볼 수 있듯이, 현행 주택법과 건축법은 건물 단위 리모델링을 위한 제도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도시재건축사업에서 허용되지 않는 용적률 확대가 건물 단위 리모델링에서는 가능하다. 임대주택의무비율,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등의 규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기반 시설이 좋은 지역의 아파트에 대한 리모델링 수요는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 보인다. 문제는 도시재생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립주택/다세대주택이다. 낙후 연립주택은 이미 건폐율과 용적률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수직이나 수평 확장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여의치가 않다.


연립주택 리모델링은 다른 방식이 필요하며, 그 가능성을 보인 사례가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여러 개의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을 연결해 건축한 대형 건물이다. 주택도 이와 같이 기존 연립주택을 연결해 일정 규모의 건축물로 재생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연립주택의 리모델링이 성공하려면 새로 리모델링된 주택의 가치가 높아져야 한다. 연립주택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가 1층을 상가로, 연립주택이 자리 잡은 골목을 상가 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건축가 황두진이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부르는 도시형 주상복합 건물이 연립주택 리모델링의 모델이다.


……


현재 한국 주택정책의 가장 큰 숙제는 집수리의 개인화이다.


개인이 자기 비용으로 집을 수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야 재건축과 재개발 시장에서 발생하는 지대추구와 투기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집수리의 개인화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정착시킬 수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재건축을 건축법과 주택법에 근거한 리모델링으로 대체하면 가능하다. 재개발도 기반 시설이 도시재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한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재건축을 제한하면 재건축 기대에 기반한 재개발 사업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압축성장 시대에 부실한 건축물,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집수리의 사회화가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는 달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재건축할 필요가 없는 건축물을 짓고, 재건축을 해도 개인이 자비로 재건축하는 집수리의 개인화로 가야 한다.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 중심의 집수리 정책이 집수리의 개인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집수리 개인화는 단지 원칙의 문제가 아니다. 집수리 사회화 문화가 고쳐지지 않으면 인구 감소로 주택 수요가 떨어지는 미래에는 공동주택 집수리가 어려워진다. 재건축을 해도 분양이 안 되는 상황이 곧 올 것이며, 재건축 미분양 사태는 수요가 적은, 즉 소도시와 대도시 외곽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는 이미 공동주택 낙후화로 인한 빈집이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토모히로, 2018; 치에, 2018). 한국이 주택정책을 저층이나 단독 주택 공급과 기존 주택의 리모델링 지원 중심으로 선회해야 막을 수 있는 미래다. 




* 도시재생의 개념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 도시재생은 낙후 상권의 활성화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주거환경 개선이 강조되는 데에는 2012년 도시재생을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주거환경 개선 중심으로 추진한 서울시의 영향이 크다.



<참고문헌>

이주원, 뉴타운 출구전략, 서울연구원, 2016.

한종수, 강희용, 강남의 탄생, 미지북스, 2016.

마키노 토모히로, 빈집문제, 월페이퍼, 2019

노치라 치에, 오랜된 집, 무너지는 거리, 흐름출판, 2018

황두진, 가장 도시적인 삶, 반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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