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은 인문학 프로젝트다. 인문학을 인간의 삶, 가치,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으로 정의하면, 도시재생은 낙후된 도시를 인간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 중심의 도시로 재생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왜 도시재생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일까? 만약 회의론자가 맞다면, 도시재생 위기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 글은 인문학에서 출발한 도시재생, 특히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이 위기라면, 그 원인 또한 인문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가 추구한 인문학적 가치와 주민의 가치가 일치하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도시재생에서 어떤 인간적 가치를 추구한 것일까?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2조는 도시재생을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ㆍ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ㆍ사회적ㆍ물리적ㆍ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추진 원칙 또한 중요한데 도시재생을 처음 도입한 서울시가 선택한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주민 주도 도시재생이다. 도시의 문제점을 주민 관점에서 파악해 주민이 원하는 공공과 생활 시설을 공급하는 것을 원했다. 둘째, 기존 것의 보존ㆍ개선이다. 낙후 건축물을 철거하고 신축하는 것을 지양하고 기존 것을 보존ㆍ개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사회적 가치, 주민 참여, 삶의 질, 문화유산 보존 등 도시재생 정책에서 부각된 가치는 사회 정의, 삶의 질, 지역사회 참여, 정체성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표현한다. 서울시 도시재생 정책을 실제 설계한 정책가 또한 약자 보호, 삶의 질,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피력한다. 2012년 서울시에서 시작된 도시재생의 동기는 뉴타운 출구전략이었다.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서 소외된 주민,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세입자와 저소득층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했다.
도시재생에 우호적인 건축가들은 원도심을 대체하는 신도시의 비인간성, 특히 사람 보행보다는 자동차 이동을 중시하는 도시 디자인을 비판하면서 기존 커뮤니티와 보행 환경을 유지하는 원도심 재생을 지지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20세기 중반 등장한 뉴어버니즘도 도시 창의성, 공동체, 다양성 등 도시재생으로 강화할 수 있는 가치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한국 도시재생 사업, 특히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이 간과한 인간 가치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도시재생 단위, 그에 따른 규격화가 도시재생의 인문학적 목적과 일치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도시재생 뉴딜은 재생사업을 경제기반형, 중심시가지형, 일반근린형, 주거지지원형, 우리동네살리기로 분류한다. 경제 기반 확충, 상권 활성화, 공동체 활성화, 주거지 정비, 생활시설 공급 등 도시재생의 다양한 목적을 각기 다른 지역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인문학적으로 본 도시와 동네는 모든 측면의 공동체 활동이 진행되는 유기체다. 도시재생 목표를 구분하고 이에 맞게 구역을 지정하는 것은 인문학 관점에선 지나치게 임의적이다. 물론 어떻게 도시재생 지역을 구획해도 임의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좀 더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적어도 도시재생 지역을 생활권 단위로 지정해 생활권 활성화에 필요한 모든 사업을 유연하게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서울시는 이미 지역을 1개 또는 2-3개 동으로 구성된 생활권으로 구분해 놨다.
도시재생 규격화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사업 제안을 공모하는 추진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러 도시재생 전문가가 지적하듯이, 도시재생이 지속 가능하려면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야 한다.* 지역 정부가 상시적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하면, 사업 단위를 자연스럽게 생활권 중심으로 설정할 것이다. 또한, 중앙정부 지원과 가이드라인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각 생활권에 필요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생활권 행정기관 그리고 생활권에 이미 형성된 주민자치 조직과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인문학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쉽게 비판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주의다. 부동산 가치 상승에 대한 욕구도 인간적 가치고, 이를 무시한 정책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비판이다. 공개적으로 홍보하지 않더라도, 지속가능성을 원한다면 주택과 상가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아니라도 완만한 상승을 유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상가 가격을 억제하고 또 한편으로는 주택 가격을 방치한 것이 시장 관점에서 도시재생이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다.
더 깊게 고민해야 하는 비판이 좋은 동네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인문학은 인간 고유의 가치를 찾는 학문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기표현 욕구와 능력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주민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손에 잡히는 명확한 동네 비전을 제시해야만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 과연 도시재생을 추진한 지도자들은 낙후 지역 주민에게 어떤 동네 비전을 제시하는가? 정부는 주민이 원하는 것을 하면 자신의 동네를 자연스럽게 좋은 동네로 인정할 것으로 가정하는 것 같다. 한국 현실에서 처음 도시재생을 추진한 은평구 산새마을과 노원구 장수마을의 성과로는 주민의 좋은 동네 욕구를 만족하기 어렵다.
대규모 재개발을 배제한 도시재생 사업으로 주택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다수의 한국인이 좋은 동네 모델로 소위 브랜드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특히 어렵다. 하지만 한국에 아파트 단지 동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도 일정 수의 시민이 수긍할 수 있는 저층 주거지 중심의 좋은 동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 일부는 민간 재생을 통해 살고 싶은 동네가 됐다.
낙후지역이 좋은 동네로 재생된 대표적인 생활권이 홍대 중심의 서울 서부 지역과 성동구 성수동이다. 성수동이 강남 접근성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특별한 사례라면, 홍대권의 망원동, 연남동을 도시재생 모델로 제시했어야 했다. 지역에서 모델로 제시할 수 있는 동네는 부산 망미동, 전포동, 통영 봉숫골, 광주 양림동이다. 정부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단편적인 외국 사례만 제시하고 한국 사례를 모델로 고려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좋은 동네로 부상한 저층 거주지는 공통적으로 상권으로 시작해 직주락 시설이 근접 거리에 밀집된 생활권으로 발전했다. 상권이 뜨면서 청년층이 모이고, 청년층이 모이자 청년과 창조인재 중심의 창조산업이 진입하고, 생활과 업무 환경이 개선되면서 배후 지역의 부동산 개발을 통해 상주인구가 들어갔다.
도시재생에 희망적인 뉴스는 원도심 중심의 골목상권은 계속 증가한다는 점이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는 2021년 3월 현재 170개 가까운 골목상권, 즉 MZ세대가 여행 가듯 찾는 상권을 소개한다. 모든 골목상권이 언론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한다고 비판하는 상업 부동산 개발 모델, 즉 경리단길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니다. 서교동에서 시작한 예술가 마을, 가로수길로 불리는 카페거리, 삼청동과 전주 한옥마을이 선도하는 한옥마을, 연희동이 대표하는 로컬 콘텐츠 플랫폼, 사당동이 첫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청년공동체, 그리고 시흥 월곶이 시도한 시민자산화 상권 등 다양한 상권활성화 모델이 있다.
도시재생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해서 도시재생을 포기할 순 없다. 내년 새 정권이 들어오면 도시재생을 리뷰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다양한 논리와 자료로 도시재생의 당위성을 증명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국내 성공 사례를 찾아야 한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정부가 재생한 지역과 더불어 민간 중심으로 추진한 골목상권에서 성공 사례를 찾고 이를 차기 정부 도시재생 사업에 반영하는 것이 순리다.
*변강훈, 아마도, 그래도, 조금도, 도서출판 기역,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