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스트리트 연희
연희동에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 있다. 연희동의 메인 스트리트는 어디일까?
연희동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기 전, 이 동네의 중심가로는 분명 연희로였을 것이다.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이 간선도로가 주거지 입구 역할을 하면서 의원, 학원, 편의점, 통신사, 약국, 은행 등 기본적인 근린생활시설을 제공했다.
하지만 오늘날 연희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메인 스트리트는 다른 곳이다. 연남동 동교로와 연결되는 연희로 25길이 실질적 중심가로 기능한다. 이 길에는 사러가쇼핑센터라는 앵커 시설과 여러 유명 중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연희맛길’로 알려진 이 가로는 음식점 중심의 상업가로다.
관광객들이 연희동 골목상권이라고 부르는 곳은 그 다음 가로인 연희로 11라길(27길)이다. 상권이 확장되면서 11라길보다 더 안쪽 골목까지 점포가 들어섰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연희동 상권은 연희로, 25길, 11라길로 이어지는 3개 층위 구조를 이룬다.
연희동을 걸어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애초에 상업용도로 설계된 건물은 연희로에만 있다. 25길과 11라길은 원래 단독주택지였다. 2000년대 이후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주택들이 점차 근린상업시설로 용도 전환되었지만, 25길에는 아직도 많은 단독주택이 남아있다.
외부 방문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저층 단독주택 가로 경관은 11라길 안쪽, 즉 주거지역에서 발견된다. 메인 스트리트인 25길 자체는 특별한 장소성을 느끼기 어렵다. 다른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근린상업시설과 주택이 혼재된 가로다.
이 길의 특징이라면 단층으로 넓게 펼쳐진 사러가쇼핑센터의 창고형 매스, 그리고 2차선 도로치고는 상당히 넓은 도로폭이다. 수요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도로가 넓은 이유는 이곳이 안산에서 발원해 홍제천으로 합류하던 세교천을 복개한 도로이기 때문이다. 북쪽 끝에서 서대문소방서로 이어지는 구간이 부자연스럽게 꺾여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하천의 자연스러운 굴곡을 따라간 흔적이었다.
연희동 상권의 미래는 이 메인 스트리트의 건축환경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독주택에서 평범한 근린상업건물로 전환된 현재 상태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주거지 인접 상업가로로 성장하기 어렵다. 건축적으로 더 의미 있는 건축물이 필요한데, 지난 20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11월 초, 오랜만에 연희동에 랜드마크급 건축물이 들어섰다.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연희정음이다. 지하는 근린시설, 1-2층은 전시공간, 3층은 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다. 수요일 학생들과 함께 이 공간을 방문해 개관 기념으로 열린 김중업×르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을 관람하고, 3층 세미나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연희정음은 도시재생에 대해 한 가지를 증명한다. 개별 필지 단위의 점진적 재생이 집합적 재개발보다 지속가능한 도시 진화 방식이라는 것을. 서울의 다른 메인 스트리트에서도 건축적 완성도를 갖춘 건물들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그 동네만의 독특한 가로 경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