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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해외 럭셔리 여행자 유치를 위해 고민한다는데

by 골목길 경제학자

일본은 해외 럭셔리 여행자 유치를 위해 고민한다는데


지난 금요일 나는 리테일 코어(Retail Core)를 한국 골목상권의 미래 전략으로 제시했다. 개별 점포의 감성에 의존하는 분산형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고, 건축적 완성도와 기능이 통합된 '설계된 중심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일본에서도 이러한 '구조적 완성도'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뛰어난 교통 인프라, 풍부한 자연·문화 자원, 미식과 예술의 수준까지, '모든 것'을 갖춘 일본이지만, 최근 내부에서는 "왜 일본은 해외의 럭셔리 여행자, 즉 유럽·북미의 고부가가치 여행자를 충분히 끌어들이지 못하는가"라는 반성적 담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이 노구치 다카히로의 『왜 어떤 지역에는 럭셔리 여행자가 찾아오는가』이다. 저자는 일본 관광이 지난 10여 년간 압도적 양적 성장—특히 동아시아 대중관광객 중심—을 이뤘지만, 이와 반대로 질적 전환(고부가가치화) 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쇼핑 중심, 단기 체류 중심, 도시 집중형 관광 구조 속에서 방문객 수 증가에는 성공했지만, 여행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유럽·북미계 고부가가치 여행자를 위한 체험 기반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구치는 기존의 일본 관광 전략이 마케팅 프레임을 충실히 적용해 왔음에도, 고부가가치 여행자가 평가하는 ‘체험 가치’와 ‘총체적 경험(トータル・エクスペリエンス)’을 설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STP나 4P·7P 같은 분석 도구는 고객 이해에는 효과적이지만, 지역 전체의 세계관과 체류 경험을 창출하는 과정까지 포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서구의 고부가가치 여행자가 가격 대비 효용보다, 한 지역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 도시가 가진 정체성과 분위기, 자연과 건축이 형성하는 풍경의 깊이, 지역 고유의 로컬 콘텐츠, 예술·공예·미식이 결합하는 세계관의 일관성을 중시한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감수성은 상품 기획이나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자체의 구조적 질과 연결되는 영역이다.


책이 제시하는 사례 분석은 이 논지를 강화한다. 구마모토, 이와미긴잔, 도야마, 이시카와 등 고부가가치 여행자 유치에 성공한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단순한 캠페인이나 시설 확충이 아니라, 지역의 세계관을 정교하게 구축했다. 어떤 지역은 자연과 조화되는 장기 체류형 숙박시설을 설계했고, 어떤 지역은 전통문화·현대 건축·미식의 흐름을 통합하여 하나의 미학적 경험을 제공했다. 또 다른 지역은 로컬 장인·예술가·로컬 브랜드를 연결해 ‘지역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구치는 이를 “지역의 일상을 관광 자원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라 설명한다.


책의 해법은 주로 마케팅 전략과 관광 콘텐츠 설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도시 정책이나 공공공간 디자인, 건축환경과 같은 구조적 전환까지는 깊이 다루지 않는다. 다만 지역 조직 체계나 거버넌스와 같은 요소들이 사례 분석 속에서 간접적으로 제시되며, 저자의 주된 관심은 어디까지나 ‘고부가가치 여행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유치할 것인가’라는 관광 전략의 범위 안에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자국 관광의 허점을 스스로 논하고, ‘해외 고부가가치 여행자’라는 구체적 타깃을 중심으로 담론을 발전시키는 모습은 부럽다. 한국은 아직 “어떤 외국인을 유치해야 하는가”, “어떤 유형의 방문객이 한국의 미래 관광 전략과 결합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본격적인 정책과 논의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방문객의 단순 증가를 관광 성공으로 간주하거나, 특정 지역이 붐비는 현상을 정책 성과로 해석하는 경향도 여전히 존재한다. 때로는 외국인이 한국을 찾는다는 사실 자체를 신기하게 여기던 1980년대 감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도 보인다.


이제 한국에도 질문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이 유치하려는 여행자는 누구인지, 그들이 한국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어떤 질을 갖추어야 하는지, 어떤 도시·동네·건축환경·로컬 콘텐츠가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와 지역 앵커, 지역 브랜드와 지역 문화가 조성하는 생태계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관광을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도시 전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절실하다.


일본이 이미 이 수준의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도 관광을 ‘누가 어떤 세계관을 경험하는가’의 문제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관광의 미래는 방문객의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머무는 시간 속에서 어떤 도시·동네·문화적 깊이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문헌>

野口貴裕 (2025). 『なぜあの地域にはラグジュアリー旅行者が訪れるのか ― 事例で紐解く高付加価値旅行者誘客のためのマーケティング戦略』ダイヤモン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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