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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모델

by 골목길 경제학자

포틀랜드 모델


1. 왜 포틀랜드인가

한국 지방도시들은 지금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인구 소멸, 상권 쇠퇴, 청년 유출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정부는 전통적으로 대기업 사업장 유치, 첨단산업 육성, 생활환경 개선을 중심으로 지역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지역의 자체적인 혁신 역량 강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과 성과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 정책이 도시재생, 공동체, 사회적 경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지역 혁신과 창조성 실현은 새로운 도전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동체와 혁신 생태계의 목표를 동시에 실현한 좋은 모델이 어디일까? 다른 사례도 많지만, 규모나 영향력 기준으로는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만큼 좋은 모델을 찾기 어렵다. 포틀랜드는 Nike와 Adidas 북미 본사, Columbia Sportswear 같은 글로벌 기업과 Intel을 중심으로 한 Silicon Forest의 하이테크 산업이 자리 잡은 산업도시다. 동시에 도시성장경계(UGB) 도입으로 컴팩트 시티를 실현했고, 보행과 대중교통 중심 도시 설계로 "전미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불린다.


포틀랜드가 도시 모델로 부상하는 이유는 산업과 환경, 성장과 지속가능성, 대기업과 소상공인을 대립 구도가 아닌 상호 강화 관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통 산업 붕괴와 대침체라는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새로운 경제 모델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친환경, 공동체, 대중교통 같은 가치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이를 창조성의 자산으로 활용한 것이 핵심이다.


2. 포틀랜드 모델의 4대 핵심

포틀랜드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네 가지 영역에서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Climate Action(기후행동), Maker(메이커), Neighborhood(근린지구), Urban Design(도시 설계)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는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창조경제를 만들어내는 통합 시스템이다.


2.1 Climate Action: 환경의 경제화

포틀랜드는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목표를 이미 2014년에 달성한 미국의 유일한 대도시다. 탄소배출을 1990년 수준 이하로 낮추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단순한 환경 정책의 결과가 아니다.


포틀랜드의 기후행동 계획은 환경을 산업으로 전환했다. 탄소배출 감축 목표 중 가장 큰 비중을 소비·폐기물 영역에 두었고, 이는 교통이나 주택보다 높다. 자연을 모방하는 순환 루프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행·자전거·대중교통으로 모든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근린지구를 조성하며, 그린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후변화에 취약한 계층을 우선 지원한다.


핵심은 환경 정책을 산업 전략으로 통합한 점이다. Clean Tech & Sustainable Industries 클러스터는 재생에너지, 그린빌딩, 환경서비스, 재활용 산업을 포괄하며, 포틀랜드시에 집중되어 높은 임금 일자리를 제공한다. 대부분이 소기업이지만 "We Build Green Cities"라는 통합 브랜드로 묶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Prosper Portland 같은 경제개발 조직이 환경 정책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2.2 Maker: 소기업 생태계의 조직화

포틀랜드는 전형적인 소기업 중심 도시다. 전체 기업의 다수가 소규모이며, 신규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소기업에서 창출된다. 하지만 포틀랜드가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지점은, 소기업과 메이커를 단순 보호 대상이 아니라 경제 성장의 주체이자 산업 전략의 일부로 조직화했다는 점이다.


포틀랜드 전 시장 샘 애덤스는 이 도시를 “Small and Creative Makers의 도시”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메이커는 취미적 공예인이 아니다. ADX 창립자 켈리 로이에 따르면 메이커란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활용해 물리적 제품을 만들고, 이를 제조와 시장 규모로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소량 생산에 머무르지 않고 10개든 10,000개든 생산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제조 창업가를 의미한다. 단순 온라인 수공예 판매와 장인 제조업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포틀랜드가 ‘장인 제조업(Artisanal Manufacturing)’의 세계적 중심지로 성장한 배경에는 체계적으로 설계된 생태계가 있다. 이 생태계는 크게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 메이커스페이스 인큐베이터다. ADX(Art Design Xchange)는 2011년 설립된 대규모 공유 제조 공간으로, 창업가의 가장 큰 진입 장벽인 ‘공간과 도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회원제 기반으로 목공, 금속, 섬유, 디지털 제조 장비를 제공하며, 다양한 배경의 창작자들이 실제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ADX는 단순 작업실이 아니라, 도시 안에 제조업을 다시 정착시키는 실험장이자 중산층 임금 일자리를 회복하기 위한 인프라로 기능했다.


둘째, 집합 브랜드와 네트워크 조직이다. Portland Made는 로컬 제조 기업들을 하나의 가치 연합으로 묶는 플랫폼이다. ‘수제·소량생산·지속가능성·미션 주도’라는 공통 기준 아래, 개별 기업을 단독 브랜드가 아닌 집합적 도시 브랜드로 조직한다. 이 네트워크는 시장 연결, 제조 자원 접근, 교육, 정책 옹호, 미디어 홍보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며, 로컬 기업들이 개별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마케팅·유통·정책 대응 역량을 공동으로 확보하게 한다. “Made in Portland”는 이 과정을 통해 단순 원산지 표기가 아니라 신뢰와 프리미엄의 보증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셋째, 정부의 구조적 지원과 결합이다. Portland Development Commission(현 Prosper Portland)은 신규 소매점과 제조 창업을 대상으로 매칭 그랜트와 공간 지원을 제공하고, 소수자·이민자 커뮤니티를 위한 상공회의소 및 지원 조직과 협력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직접 기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ADX와 Portland Made 같은 민간 커뮤니티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개입한다는 점이다. 이는 공공 자금이 레버리지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이 생태계 안에서 다수의 로컬 브랜드가 탄생하고 성장했다. 이들은 ADX와 같은 공간에서 시작해 시장성을 검증한 뒤 독립 제조 공간으로 이전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했다. 포틀랜드의 메이커 운동은 단순한 창작 문화가 아니라, 제조업의 지역 회귀와 중산층 일자리 회복을 목표로 하는 경제 전략이었다.


메이커 운동이 갖는 정치·경제적 함의도 분명하다. 켈리 로이가 백악관 메이커 라운드테이블에 초대된 것은 상징적이다. 그는 제조업 일자리의 해외 이전을 비판하며, 지역 기반 제조업 생태계 없이는 산업 회복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포틀랜드의 메이커 모델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도시 경제의 중심으로 다시 위치시키는 시도였고, 이는 포틀랜드 창조경제의 핵심 축으로 기능했다.


2.3 Neighborhood: 근린지구 네트워크

포틀랜드의 근린지구 전략은 단순한 지역 지원 정책이 아니다. 이 도시는 근린지구를 경제 개발의 핵심 단위로 설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조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핵심은 개별 점포 지원이 아니라, Business District Management and Revitalization을 도시 경제 전략의 필수 요소로 제도화한 점이다.


이 전략은 세 층위에서 작동한다. 첫째, 전역 네트워크 조직이다. Venture Portland는 포틀랜드 전역의 근린 비즈니스 지구를 연결하는 허브로, 교육과 기술 지원을 제공한다. 중요한 점은 직접 지원이 아니라 레버리지다. 각 지구의 프로젝트가 민간 투자와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도록 설계하며, 상업 메인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근린지구 리더십을 조직화한다. 개별 지구를 고립된 사업 단위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경제 네트워크 일부로 만든다.


둘째, 집중 지원 프로그램이다. Portland Main Street Program은 전략적으로 선정된 근린지구를 대상으로 재산 개선, 지속가능성 강화, 홍보와 이벤트, 조직 역량 구축을 지원한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단기 활성화가 아니라, 지구 스스로 기획·운영·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관리 역량을 갖추게 하는 데 있다. 즉, 근린지구를 ‘사업 대상’이 아니라 ‘운영 주체’로 전환하는 것이다.


셋째, 형평성 기반 접근이다. Neighborhood Prosperity Initiative(NPI)는 저소득층과 유색인종 커뮤니티가 집중된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삼는다. 기존 도시재생의 외곽에 머물렀던 근린 상업지구를 중심으로, 소수자 소유 기업과 로컬 소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재정·기술 지원을 결합한다. 경제 개발과 형평성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한 사례다.


이와 함께 EcoDistricts는 근린지구를 지속가능성의 실행 단위로 재편한다. 형평성, 회복력, 기후 보호를 핵심 원칙으로 삼아 공간, 번영, 건강, 연결성, 인프라, 자원 순환을 통합적으로 다룬다. 환경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자산으로 전환하는 접근이다.


이 네트워크 구조의 핵심은 커뮤니티 주도성과 베스트 프랙티스의 결합이다. 주민·사업주·이해관계자의 대화에서 출발해 지역 자산과 과제를 진단하고, 근린지구별 전략을 수립한 뒤 실행과 수정이 반복된다. 이는 계획 중심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접근이며, 파트너들이 상황 변화에 맞춰 전략적 목표를 조정할 수 있게 한다.


포틀랜드가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지점은, 근린지구 관리와 활성화를 선택적 정책이 아니라 도시 경제의 기본 인프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소기업 지원, 비즈니스 유치, 부동산 개선, 마케팅과 브랜딩, 인력 개발, 공공 투자가 하나의 패키지로 작동하며, 이 통합 구조가 포틀랜드 지역경제의 회복력과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2.4 Urban Design: 성장 관리와 보행성

포틀랜드 모델에서 Urban Design은 미관이나 교통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역경제의 가격 구조와 상권의 생존 조건을 설계하는 핵심 인프라다. 포틀랜드가 메이커 산업과 근린지구 경제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 설계가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Urban Design은 다른 요소를 보조하는 배경이 아니라, 창조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적 엔진이다.


이 구조의 출발점은 도시성장경계(UGB, Urban Growth Boundary)다. UGB는 흔히 농지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환경 규제로 설명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이는 도시 확장을 통제함으로써 개발 압력과 부동산 투기를 관리하는 장치다. 무제한적인 외곽 확장을 차단함으로써 성장은 기존 도시 내부에서의 재개발, 중·고밀화, 혼합 용도로 유도된다. 그 결과 인프라 비용은 낮아지고, 도심과 근린지구의 토지 이용 효율은 높아진다.


중요한 점은 포틀랜드가 성장을 억제한 것이 아니라 성장의 방식과 위치를 관리했다는 것이다. 광역정부인 Metro는 여러 카운티와 도시를 포괄하며, 인구 증가와 주택 수요를 기준으로 토지 공급을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이 체계 덕분에 인구는 크게 증가했지만 도시 경계는 최소한으로 확장되었고, 성장은 기존 생활권과 상업지구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근린 상권과 로컬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이 성장 관리 구조 위에서 보행성(walkability)이 핵심 전략으로 작동한다. 포틀랜드의 보행 정책은 복지나 안전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상업 가치와 직결된 도시 설계 전략이다. 포틀랜드는 수십 년에 걸쳐 보행자 계획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했고, Vision Zero를 통해 교통 사망 제로를 목표로 삼았다. 특히 저소득층과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보행 인프라에 우선 투자하며, 횡단보도와 보행 네트워크를 대폭 개선했다.


보행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부동산 가치와 상업 활력이 높다는 점은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포틀랜드의 차별점은 이러한 가치 상승을 일부 중심지에 집중시키지 않고, 근린지구 전반으로 분산시켰다는 데 있다. 걷기 좋은 메인스트리트는 곧 근린 비즈니스 지구의 기반이며, Neighborhood 전략과 직접 연결된다. 보행 중심의 상업 가로는 소상공인과 메이커가 접근 가능한 입지 조건을 만들고, 점포 규모와 업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게 한다.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틀랜드는 MAX 경전철을 축으로 고밀·혼합 개발을 유도해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고 자동차 의존도를 낮췄다. 이는 교통 정책이 아니라 근린 생활권을 확장하는 경제 전략이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주거·상업·업무가 결합되며, 하루 생활 반경 안에서 소비와 생산이 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로컬 비즈니스와 메이커에게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제공한다.


포틀랜드 Urban Design을 완성하는 세 번째 축은 자전거 정책(Bicycle Policy)이다. 자전거는 포틀랜드에서 레저 수단이나 친환경 상징이 아니라, 근린 경제를 작동시키는 일상 교통 인프라다. 보행성과 대중교통을 보완하는 제3의 축으로서, 근린 생활권의 범위를 확장하고 상업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포틀랜드는 단순한 자전거 도로 확충이 아니라, 저스트레스 자전거 네트워크(Low-Stress Bikeway Network)를 구축했다. 자동차 교통량이 적은 주거 가로를 연결하고, 상업 가로·학교·공원·근린지구를 자전거로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연령과 숙련도에 관계없이 누구나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이 자전거 정책의 경제적 효과는 분명하다. 자전거 이용자는 자동차 이용자보다 방문 빈도가 높고, 지역 상점에서의 소액·반복 소비 비중이 높다. 즉 자전거 인프라는 교통 효율성보다 근린 상권의 회전율을 높이는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주차 공간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소규모 점포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메인스트리트는 대형 점포 중심 구조로 기울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자전거 정책은 기후 전략과도 직접 연결된다. 포틀랜드의 기후행동 계획에서 교통 부문은 핵심 감축 대상이며, 자전거는 대중교통과 함께 단거리 이동에서 자동차를 대체하는 실질적 수단이다. 하지만 이 역시 환경 보호에 그치지 않고, 생활비 절감·이동 시간 단축·근린 소비 촉진이라는 경제적 효과를 함께 만들어낸다.


이처럼 보행–대중교통–자전거는 서로 분리된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이동성 시스템으로 통합된다. 자전거는 보행 범위를 넓히고 대중교통의 라스트 마일을 해결하며, 근린 상권을 촘촘히 연결한다. 이 삼각 구조 덕분에 포틀랜드는 자동차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근린 경제의 밀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Urban Design의 또 다른 중요한 효과는 젠트리피케이션 관리다. 포틀랜드 역시 임대료 상승과 지역 변화의 압력을 겪었지만, 무제한적 고층 개발이나 특정 지점으로의 과도한 투자 집중을 피했다. 도시 확장 관리, 중밀도 개발, 근린지구 분산 구조는 개발 이익이 도시 전반으로 퍼지도록 만들었고, 이는 상권과 커뮤니티의 급격한 붕괴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Urban Design은 시장을 억누르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 변동성을 완충하는 장치로 기능한 것이다.


2.5 창조경제로의 연결: 포틀랜드 모델의 작동 구조

포틀랜드 모델의 핵심은 개별 정책의 우수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책 요소가 하나의 경제 시스템으로 결합되어 작동한다는 점에 있다. Climate Action, Maker, Neighborhood, Urban Design은 각각 독립된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순환 구조를 이루며 창조경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형성한다.


이 시스템의 출발점은 Urban Design이다. 도시성장경계, 중밀·혼합 용도 개발, 보행·대중교통·자전거 중심 이동성은 경제 활동의 공간적 조건을 선행적으로 설정한다. 이는 어떤 규모의 사업체가 어디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며, 근린지구 단위의 상업과 제조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공간 구조 위에서 Neighborhood 전략이 작동한다. 근린 비즈니스 지구를 네트워크로 조직하고, 상권 관리·마케팅·공공 투자를 결합함으로써 개별 점포를 집합적 경제 주체로 전환한다. 근린지구를 일회성 사업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략을 실행하는 경제 단위로 만든다.


Maker 생태계는 이러한 근린지구 위에서 산업화된다. 메이커스페이스와 집합 브랜드는 창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공공 부문의 레버리지 지원은 로컬 제조와 브랜드가 시장으로 확장되는 경로를 만든다. 포틀랜드의 메이커는 취미적 창작자가 아니라, 제조와 확장을 전제로 한 경제 주체다.


Climate Action은 이 구조에 가치를 결합한다. 환경 정책은 규제가 아니라 산업 전략으로 작동하며, 클린테크와 지속가능 산업은 도시 설계와 근린지구 수요, 메이커 역량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환경은 비용이 아니라 경쟁 자산이 된다.


이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서 포틀랜드는 Living Lab으로 기능한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이 같은 도시 공간에 존재하며, 일상 속에서 실험과 피드백이 반복된다. 개별 기업의 혁신이 아닌, 도시 시스템이 만들어낸 집단적 학습 효과다.


결국 포틀랜드 모델은 ‘창조적인 도시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조직–산업–가치가 순환하는 창조경제 구조다. 포틀랜드가 보여준 것은, 중소도시도 적절한 설계와 전략적 결합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3. 일본의 적극적 수용과 선택적 적용

포틀랜드 모델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포틀랜드를 소개하는 책들이 다수 발행되었다. 야마자키 미츠히로의 『포틀랜드: 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다』(2012), 『포틀랜드 메이커스: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 만들기』(2016)가 대표적이다.


일부 도시들은 포틀랜드 모델을 공개적으로 표방했다. 카시와는 2006년 Urban Design Center Kashiwa(UDCK)를 설립하며 "공·민·학 연계"라는 포틀랜드의 협치 모델을 도입했다. 동경대학, 치바대학, 치바현, 카시와시,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UDCK는 포틀랜드의 Prosper Portland처럼 싱크탱크, 코디네이터, 사업화 추진 기능을 통합했다. 2011년 "카시와노하 스마트시티 컨셉"을 발표하며 "환경공생, 건강장수, 신산업창조"를 테마로 한 도시 만들기를 추진했고, 2016년 국제 환경인증 LEED-ND에서 일본 최초로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이는 포틀랜드의 Climate Action과 Urban Design 요소를 스마트시티 프레임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마에바시는 더 직접적으로 포틀랜드 전문가들과 협력했다. 2013년 JINS 창업자 다나카 히토시가 고향 마에바시의 원도심 재생을 시작하며, 포틀랜드의 Maker 생태계에 주목했다. 그는 단순한 물리적 재개발이 아니라 "비판적 지역주의"라는 철학 기반 위에 장기 비전을 세웠다. 2017년 지역 기업 유지들이 모여 '태양의 모임'을 결성해 순이익의 1%를 매년 기부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은 포틀랜드의 민간투자 레버리지 전략을 참고한 것이다. 2020년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가 설계하고 레안드로 에를리히, 재스퍼 모리슨이 참여한 시로이야 호텔 개업은 포틀랜드 Ace Hotel의 "로컬 아티스트 협업 호스피탈리티" 모델을 일본식으로 구현한 사례다. 마에바시는 2025년부터 마에바시역과 현청을 연결하는 1.5km를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재편하며, 이는 포틀랜드의 워커빌리티 전략을 직접 적용하는 것이다.


포틀랜드 모델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전문가가 있다. 포틀랜드 시 개발국에서 근무한 야마자키 미츠히로다. 한국어로 번역된 '포틀랜드 메이커스'의 저자인 그의 접근방식은 포틀랜드의 네 가지 요소 중 일본 현실에 맞는 것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야마자키가 주목한 것은 Neighborhood와 일부 Maker 요소다. 일본 지방도시는 고령층이 대다수이고 당장의 생존이 급선무이며, "우리는 이미 장인과 공예학교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Climate Action(환경을 산업으로)은 일본 맥락에서 너무 앞서가고, Urban Design(도시성장경계)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 지속가능성도 일본에서는 환경친화적 스마트시티를 의미하며, 포틀랜드와 개념이 다르다.


그가 개발한 핵심 개념은 "Good Life Economy"다. 포틀랜드의 "Small and Creative Makers"를 경제적 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전환하며, "디자인보다 경제"를 강조한다. 지역경제 성장과 환경보전의 양립을 추구하되, 글로벌 브랜드 탄생보다는 로컬 비즈니스의 생존과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춘다.


야마자키는 포틀랜드의 "주민이 아이디어의 중심"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이나미 프로젝트에서 2년간 워크숍과 청취를 반복하고, 주민 추진협의회와 청년층 "이나미라이"를 운영하며, 주민 주도로 장기 비전을 수립했다. "마자리아이(섞임)"라는 개념으로 세대·생업·지역 경계를 넘는 통합을 시도했고, "ONE INAMI"로 지역 전체가 하나로 힘을 합치는 것을 강조했다. 대규모 포럼과 마르쉐, 지역 전통 전시로 성과를 냈다. 포틀랜드의 Neighborhood 요소, 특히 Venture Portland의 커뮤니티 주도 방식과 EcoDistricts의 주민 참여 프로세스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동시에 야마자키는 "랜드스케이프와 사람 중심", "토지 이용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강조한다. 이는 포틀랜드의 Living Lab(지역 환경을 제품 개발의 실험실로) 개념과 Urban Design(역사와 자연 특성 존중) 철학을 부분 수용한 것이다. 각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역사를 활용해 차별화된 경제 모델을 만들되, UGB 같은 물리적 성장 관리는 일본 국가 시스템에 맡긴다.


일본 적용의 한계도 명확하다. 최근 일본 지자체들은 포틀랜드보다 암스테르담 같은 커뮤니티 빌딩 모델에 관심이 이동했다. 포틀랜드의 Climate Action(환경을 산업으로)과 Global Maker(글로벌 브랜드 탄생)는 일본 지방도시에 너무 높은 목표였다. 고령 인구는 창업과 혁신보다 생존에 집중하고, 기존 장인 경제가 있어 새로운 메이커 생태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야마자키의 선택은 현실적이다. 포틀랜드의 모든 요소가 아니라 Neighborhood(주민 참여, 커뮤니티 조직화), 지속가능성(환경 가치 존중), 로컬 비즈니스 지원(소규모 경제 활성화) 요소만 적용하는 것이다.


4. 한국에의 시사점

한국은 일본과 다른 조건에 있다. 일본은 "이미 장인이 있다"라고 하지만, 한국은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며 장인 경제를 잃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메이커 경제를 구축할 기회다. 청년층은 로컬·수제·지속가능 가치를 선호하고, 청계천·을지로 같은 제조업 지구가 잔존하며, 지방소멸 위기가 강력한 정책 동기를 만든다. 성수동, 을지로 등에서 메이커·크리에이터 공간이 부상했지만 통합 전략과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포틀랜드 모델의 핵심 교훈은 "가치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친환경을 외치지 말고 그린 산업을 육성하고, 공동체를 강조하지 말고 근린지구 레버리지를 만들며, 대중교통을 확충하지 말고 워커빌리티를 부동산 가치로 연결하고, 메이커를 지원하지 말고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네 가지 영역에서 적용 가능하다. Climate Action은 환경 정책을 산업 전략으로 통합하고, Clean Tech를 타깃 산업으로 육성하며, 경제개발 조직이 환경 정책을 함께 추진하는 체계를 만든다. Maker는 창업 건수가 아니라 세계가 아는 지역 브랜드 탄생을 목표로 하며, ADX를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Portland Made를 마케팅 플랫폼으로, Living Lab을 제품 경쟁력의 원천으로 활용한다. Neighborhood는 Venture Portland처럼 로컬 상권을 네트워크로 조직화하고 민간투자 레버리지를 만들며, NPI처럼 형평성을 확보한다. Urban Design은 성장 관리로 컴팩트 시티를 만들고 워커빌리티를 부동산 가치로 연결한다.


무엇보다 Urban Design은 다른 정책의 전제가 되는 1번 조건이며, 공간 구조를 설계하지 않은 채 메이커·상권 정책만 도입하는 방식으로는 지속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의 교훈도 중요하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지 말고 지역 현실에 맞게 선택한다. 고령화·생존 위기 지역은 Neighborhood(주민 참여)부터, 청년·창업 분위기가 있는 곳은 Maker(브랜드 인큐베이터)에, 산업 기반이 있으면 Climate Action(그린 산업)을, Urban Design(성장 관리)은 장기 과제로 둔다.


포틀랜드 모델의 본질은 "위기를 주민과 함께 기회로 바꾸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가치 선언이 아니라 경제적 성과이고, 정책 나열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며, 지원 확대가 아니라 레버리지 설계다. 포틀랜드가 증명했듯, 중소도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참고문헌

ヤマザキミツヒロ(山崎光博) (2016).
『ポートランド・メイカーズ ― クリエイティブ・コミュニティをつくる』. 東京: 学芸出版社.

マガジンハウス (2025). 『BRUTUS特別編集 JINS 田中仁を知っていますか?』東京: マガジンハウス.

アーツ前橋 (2017). 『Living Locally: Reconsidering Critical Regionalism (ここに棲む―地域社会へのまなざし)』前橋: アーツ前橋.

前橋市 (2019). 『前橋市アーバンデザイン』前橋: 前橋市都市計画部市街地整備課.

Portland Development Commission (2011). City of Portland Neighborhood Economic Development Strategy: A 5-Year Plan to Support Neighborhood Vitality & Business Success. Portland: Portland Development Commission.

야마자키 미츠히로(2019).『포틀랜드 메이커스』. 제주: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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