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 황정원 기자의 최근 보도는 흥미로운 디테일을 포착했다. 쿠팡 로켓배송 고객이 받는 배송 문자에는 "[쿠팡] 로켓배송 1박스 문 앞(으)로 배송했습니다"라는 문구만 남는다. 판매자 이름도, 상품명도 사라진다. 반면 CJ대한통운을 이용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셀러의 배송 문자에는 "[OO상점] XX상품" 형태로 판매자 상호와 상품명이 명시된다. 앱 내 UI도 마찬가지다. 쿠팡에서는 '로켓배송' 마크가 시선을 사로잡고, 네이버 쇼핑에서는 스토어명이 상단에 굵은 글씨로 노출된다.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는, 사실 두 가지 유통 생태계의 근본적인 철학 차이를 드러낸다. 한쪽은 플랫폼 브랜드로 모든 것을 통합하고, 다른 쪽은 개별 판매자의 브랜드를 각인시킨다. 황정원 기자는 이를 "브랜드를 지우는 쿠팡 vs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CJ·네이버"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소비자의 기억, 셀러의 생존, 나아가 유통 생태계의 구조를 결정한다.
최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보안 관리의 문제로 논의됐지만, 이 사건이 던진 질문은 그보다 훨씬 넓다. 쿠팡 사태는 단순히 한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유통 구조를 선택해왔는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성찰의 핵심에는 황정원 기자가 포착한 '브랜드 주권'이라는 쟁점이 자리한다. 플랫폼 집중형 이커머스는 효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소상공인의 브랜드 주권을 빼앗아왔다. 이제 우리는 묻게 된다. 유통의 효율은 반드시 브랜드의 소멸을 대가로 해야 하는가?
그동안 이커머스는 종종 하나의 기술 진보, 하나의 방향으로 설명돼 왔다. 빠른 배송, 낮은 가격, 중앙집중 물류는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진화 단계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는 서로 다른 철학과 구조를 가진 이커머스 모델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단순한 서비스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오프라인 상권과 소상공인의 운명을 가르는 구조적 선택이다.
쿠팡이 대표하는 모델은 직접구매와 중앙집중 물류, 그리고 플랫폼 주도의 데이터 통합을 특징으로 한다. 이 모델이 이룬 성과는 분명하다. 새벽배송과 로켓배송은 소비자의 시간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대량 직접구매를 통한 가격 인하는 실질 구매력을 높였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유통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며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2024년 기준 이커머스 거래액 점유율은 쿠팡 22.7%, 네이버 20.7%다. 수치상 박빙이지만, 쿠팡은 판매·물류·데이터를 수직 통합한 단일 사업자로서 구조적 지배력을 갖는다. 머니S 보도에 따르면, 압도적인 트래픽 때문에 많은 셀러들이 쿠팡 입점을 필수로 여기며, 높은 수수료(27.5%, 업계 평균의 2배)에도 이탈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효율의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 쿠팡은 플랫폼 운영자인 동시에 직매입·PB 상품을 판매하는 '플레이어'다. 구조적으로 입점 셀러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황정원 기자의 분석에 따르면, 쿠팡은 '안심번호'를 도입해 셀러와 고객 간의 직접 소통을 차단하고, 구매 데이터를 독점한다. 소비자는 '쿠팡에서 샀다'는 기억만 남기고, 개별 셀러는 익명의 공급자로 전락한다. 이는 단순한 UI 설계가 아니라, 플랫폼이 브랜드를 지우고 판매자를 종속시키는 전략적 선택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바로 이 지점, 즉 집중된 효율이 집중된 취약성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례들은 개인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는 유통 생태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핵심은 물류와 재고, 데이터와 리스크를 단일 플랫폼이 독점하지 않고, 다수의 주체가 각자의 브랜드를 유지하며 협력하는 구조다.
네이버의 이커머스는 오픈마켓을 기반으로 한다. 2024년 기준 네이버의 이커머스 거래액 점유율은 20.7%로 쿠팡과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는 재고를 직접 소유하지 않고, 수많은 판매자들이 온라인에 진입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물류는 주로 CJ대한통운과 연계되는데, 머니S 보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배송 문자에는 판매자 상호와 상품명이 명시되며, 네이버 쇼핑 검색 화면에서도 스토어명은 상단에 굵은 글씨로 노출된다. 이는 단순한 정보 표기 방식이 아니라, 셀러의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생태계 철학의 표현이다.
황정원 기자는 CJ대한통운이 물류업을 본업으로 하기에 셀러의 성장이 곧 자사 물동량 증대로 이어지며, 배송 과정에서 축적된 고객 데이터를 셀러에게 제공하는 개방형 구조를 취한다고 분석했다. 쿠팡이 구조적으로 입점 셀러와 경쟁 관계에 놓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네이버 모델도 완벽하지 않다. 높은 수수료 구조, 검색 순위 알고리즘에 대한 의존, 광고비 부담 등은 소상공인에게 여전히 진입장벽과 비용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이 모델의 의의는, 유통의 위험과 책임을 분산시키며 다수의 판매자가 독자적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 있다. 집중형 모델과 달리, 한 플랫폼의 사고가 전체 유통 생태계의 마비로 이어지지 않으며, 개별 셀러는 자신의 상호와 브랜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다.
또 다른 방향은 당근(구 당근마켓)이 보여준다. 당근은 2023년 8월 서비스명을 '당근'으로 변경하며 '지역 생활 커뮤니티'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당근을 전통적 이커머스와 같은 범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당근은 중고거래 중심의 로컬 플랫폼으로 출발했고, 원거리 물류를 전제로 한 일반 이커머스와는 구조가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상거래라는 본질이다. 거래는 디지털로 성립되지만, 실제 교환은 생활권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원거리·중앙집중을 전제로 한 전통적 이커머스의 대척점에 있는 모델이며, 물류와 데이터의 과도한 집중을 피하면서 동네 단위의 상거래와 오프라인 생활경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개인 브랜드가 성공하는 유통 생태계의 또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개인 브랜드가 성공하는 유통 생태계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로컬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이 독자적 브랜드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 자원을 소재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혁신 창업가다. 이들이 만드는 개별 브랜드가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할 때, 국가 경제의 창의적 다양성도 확보될 수 있다.
플랫폼 독점 체제일수록 셀러들은 멀티 호밍(Multi-homing) 전략을 취해야 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머니S 인터뷰에서 "일반 소비재가 아닌 로컬 브랜드나 고유의 경쟁력을 가진 셀러라면 쿠팡 의존도를 낮추는 멀티 호밍 전략이 필수적"이라며 "네이버, 자사몰 등 브랜드 노출이 보장되는 채널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브랜드 자산을 축적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머니S 보도가 지적하듯, 압도적인 트래픽을 보유한 쿠팡에 입점하지 않고서는 매출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됐다. 그럴수록 당장의 매출 증대를 위한 플랫폼 의존과 장기적인 브랜드 자립 사이에서 내리는 전략적 선택이, 향후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다.
쿠팡 모델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효율은 속도와 가격, 표준화라는 매우 제한된 기준에 근거한다. 유통을 사회적 시스템으로 본다면, 효율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어야 한다. 지역경제의 지속성, 소상공인의 생존 가능성, 브랜드 다양성, 소비자 신뢰와 데이터 안전성까지 포함한 효율 말이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든 효율을 하나의 플랫폼에 집중시키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그리고 그 비용은 소비자와 소상공인, 지역 상권 전체에 분산돼 전가된다. 이 점에서 이번 논쟁은 단순히 보안 강화나 사후 보상의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커머스를 규제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의 이분법이 아니다. 어떤 이커머스 모델을 사회적으로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장기적인 유통 생태계와 소상공인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답은 분명해진다.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이커머스가 아니라, 개인 브랜드가 성공하는 유통 생태계가 확산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지원 방향은 명확하다. 오픈마켓 구조를 통해 소상공인의 온라인 진입을 돕는 모델에는 세제 혜택과 물류 인프라 공유 지원을, 로컬 기반 플랫폼에는 지역 상권 연계 공공 프로그램과 데이터 주권 보호 정책을 제공해야 한다. 반대로 직접구매 중심의 집중형 모델에는 오프라인 상생 의무를 강화하고, 판매자 브랜드 노출 보장과 데이터 관리 책임을 더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이는 규제가 아니라 사회가 선택하는 유통 구조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정책 신호다.
오픈마켓을 통해 소상공인의 온라인 진입을 돕는 네이버의 방식, 생활권 경제를 유지하며 거래를 디지털로 연결하는 당근의 방식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은 완벽한 모델이 아니라, 집중 대신 분산을, 대체 대신 공존을 선택한 모델이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논쟁은 한 기업의 책임을 넘어 한국 유통이 어떤 구조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돼야 한다.
황정원(2025.12.29), "쿠팡 '로켓' vs CJ대한통운 '스토어명'… 배송 문자의 비밀", 머니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