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브랜드 생태계의 3층 레이어

by 골목길 경제학자

로컬 브랜드 생태계의 3층 레이어


포틀랜드 곳곳에는 "Keep Portland Weird!"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직역하면 "포틀랜드를 이상하게!"라는 뜻으로, 개성 있는 포틀랜드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의지가 담긴 구호다. 이 슬로건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포틀랜드가 어떤 도시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거리를 걸으면 금방 느낄 수 있다. 편의점, 패스트푸드 등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틀랜드는 커피, 수제 맥주, 자전거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2018년 인포그룹 수제 맥주 도시 1위, 바이시클링 매거진 자전거 도시 5위, 월렛 허브 커피 도시 4위로 선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획일적인 문화와 소비를 거부하는 독립문화와 힙스터 문화의 영향으로 포틀랜드는 여행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리테일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로컬 브랜드를 다수 배출했다. 스텀프타운 커피(Stumptown Coffee), 에이스 호텔(Ace Hotel), 뉴 시즌즈 마켓(New Seasons Market) 같은 브랜드들이 포틀랜드에서 시작해 전국적, 국제적 브랜드로 성장했다.


포틀랜드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는 3단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레이어는 인디문화와 로컬문화로 대표되는 문화적 토양이다. 두 번째 레이어는 로컬 브랜드가 실제로 잉태하고 성장하는 동네 경제다. 세 번째 레이어는 메이커 스페이스, 교육기관, 로컬 편집숍, 투자사, 정부 지원으로 구성된 지원 시스템이다. 이 세 레이어가 상호작용하며 포틀랜드 특유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레이어 1: 인디문화, 장인정신, 기업가정신

포틀랜드의 환경주의와 로컬 문화는 1960년대 반문화(Counter Culture)를 통해 형성되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히피들이 새로운 생활 문화를 개척하기 위해 지나치게 상업화됐다고 판단한 캘리포니아를 떠나 오레곤으로 이주했다. 자연주의, 평화, 공동체를 표방한 히피 반문화 전통이 오레곤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히피 반문화를 승계한 것이 힙스터(Hipster) 문화다. 힙스터 정의에 대한 합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주류 사회와 상업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을 힙스터로 정의할 수 있다. 포틀랜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힙스터 도시다. 무브 허브(Movehub)가 매년 발표하는 힙스터 도시 랭킹에서 포틀랜드는 늘 최상위권을 지켰다. 수제 맥주 기업, 비건 식당, 커피전문점, 독립 서점, 자전거 통근자, 타투 스튜디오, 바이널 레코드 가게 등의 통계로 힙스터 도시 순위를 매기는데, 포틀랜드가 이 모든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포틀랜드가 힙스터들의 도시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80년대 초반 불황 이후 도시 경제가 침체되면서 값싼 주택을 찾는 예술가들과 공예가들이 추가적으로 진입했다. 포틀랜드에는 젊은이가 많이 살고 대중교통과 친환경 문화가 잘 발달해 있으며, 힙스터가 좋아하는 문화적 인프라가 풍부했다. 독립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도시 분위기는 획일적인 삶을 거부하는 힙스터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포틀랜드만의 인디문화, 로컬문화, 장인정신, 기업가정신이 꽃 폈다. 도시 경제학자 조 코트라이트(Joe Courtright)는 뉴욕 타임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젊고 유능한 청년들이 창업하기 위해 포틀랜드에 온다. 평균적으로 50% 이상의 청년들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자가 사업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 3위다." 포틀랜드의 창업가들은 푸드, 공예 분야에서 빠른 성장을 이루고 지역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


로컬 성향의 포틀랜드 시민들은 물질적인 부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충분히 쉬고 즐길 줄 안다. 밴드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시를 쓰며, 스노보드를 타고, 서핑을 한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캔두(can-do) 정신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창업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레이어 2: 동네 경제 - 로컬 브랜드가 성장하는 공간

포틀랜드는 하나의 통합된 도시라기보다는 여러 동네가 네트워크를 형성한 도시다. 그만큼 동네와 동네 상권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독립적인 경제 단위로 중요하다. 포틀랜드는 지역을 중심부, 산업지역, 대학지역, 동네 상권(Neighborhood Business District)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지원한다. 현재 50개 지역이 동네 상권으로 지정돼 있다.


동네 상권은 포틀랜드 총고용의 1/4을 담당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동네 상권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은 2만 명에 이른다. 시정부는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이 협동조합 등 주민 협의체를 조직해 상권에 필요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지원한다. 이러한 동네 중심 경제 구조가 로컬 브랜드가 실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포틀랜드는 전통적으로 스몰 비즈니스와 독립 상점을 보호하는 도시로 유명하다. 2006년 월마트 매장의 진입을 저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 상품 구매를 독려하는 "바이 로컬(Buy Local)" 소비자 운동도 활발하다. 로컬 소비와 동네 상권 문화는 지역 환경운동을 통해 축적되어 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로컬에서 생산하는 독립 기업과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이다.


동네의 이웃들이 만든 핸드메이드 상품과 공예품을 주로 구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것이 로컬 브랜드가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초기 시장을 제공한다. 동네 카페, 동네 서점, 동네 편집숍에서 먼저 제품을 팔아보고, 동네 주민들의 반응을 보며 제품을 개선하고, 점차 다른 동네로, 그리고 포틀랜드 전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포틀랜드 로컬 브랜드의 전형적인 성장 경로다.


레이어 3: 지원 시스템 - 메이커 스페이스, 교육, 편집숍, 투자, 정부

하바드 경영대 마이클 포터 교수가 운영하는 ICIC 연구소에 의하면 소상공인 생태계에는 주민단체, 정부, 경제개발청, 금융기관, 직업훈련 기관, 소상공인 단체가 중요하다. 포틀랜드는 이 6개 분야 모두에서 활발한 지역 단체를 찾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포틀랜드 소상공인 생태계가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계가 아닌 메이커, 아웃도어, 로컬푸드 등 개별 분야를 지원하는 생태계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메이커 산업이 대표적이다. 메이커 협동조합 '포틀랜드 메이드 컬렉티브(Portland Made Collective)'가 메이커 스페이스 ADX, 메이커 편집숍 '메이드 히어 PDX(Made Here PDX)'와 협력해 지역 메이커를 지원한다. ADX는 2011년 켈리 로이(Kelly Roy)가 설립한 메이커 스페이스로, 약 400평 규모의 공간에서 학생, 퇴직자, 숙련된 디자이너가 함께 지식을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다. 생산 장비, 공간, 지식, 경험을 공유하며 새로운 직업, 새로운 생산 라인,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포틀랜드 메이드 컬렉티브는 2011년 ADX에서 출발해 빠르게 성장하는 포틀랜드 메이커 산업을 지원하는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플랫폼으로 포틀랜드 메이커 운동을 홍보하고, 신생 기업을 위한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하며, 포틀랜드 로컬 생산자와 소매점을 연결한다.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한 달에 30달러, 1년에 300달러를 내면 교육, 팝업 스토어, 플리마켓 등 행사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지난 8년간 100개 이상의 교육 행사를 진행했으며, 세일즈, 마케팅, 소셜 미디어 전략, 제조·물류, 재무·법률 자문 등 기업 성장에 필요한 주제를 다룬다.


메이드 히어 PDX는 포틀랜드에 매장을 두 개 운영하는 로컬 브랜드 편집숍이다. 자기 물건을 팔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 가게를 찾아오는 사업자가 매일 있을 정도로 포틀랜드 메이커 기반은 탄탄하다. 이 편집숍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신생 브랜드가 소비자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


운동화 창업 생태계 역시 독보적이다. 나이키 디자이너 출신 드웨인 에드워즈(D’Wayne Edwards)가 2010년 설립한 ‘펜솔 풋웨어 아카데미(Pensole Footwear Academy)’는 포틀랜드 운동화 창업 생태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여 미래 디자이너들이 기업 발주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도록 훈련하는 독특한 실무 교육 모델을 구축했다. 10여 년간 포틀랜드 올드타운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전 세계 디자인 인재들을 끌어모았던 펜솔은,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지역 메이커 산업과 글로벌 기업을 잇는 핵심 거점으로 기능했다.*


로컬 푸드 생태계도 잘 발달해 있다. 환경단체 에코트러스트(EcoTrust)가 로컬 푸드를 장려하기 위해 운영하는 로컬 푸드 인큐베이터 '레드 온 새몬스트리트(Redd on Salmon Street)'가 대표적인 기관이다. 비영리 환경단체이기 때문에 투자금 회수라는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창업자를 지원할 수 있다.


세 레이어의 상호작용

포틀랜드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는 이 세 레이어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작동한다. 힙스터와 히피 문화, 독립문화는 "다르게 살고 싶다",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어낸다. 이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열거나, 작은 작업실에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동네 주민들이 초기 고객이 되어주고, 동네 편집숍이 제품을 받아준다.


이 과정에서 메이커 스페이스는 물리적 공간과 장비를, 협동조합은 교육과 네트워킹을, 편집숍은 판로를, 정부는 동네 상권 지원과 규제 완화를 제공한다. 성공한 브랜드는 다시 동네 경제를 활성화하고, 더 많은 창업가를 끌어들이며, 생태계를 강화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2019년, 포틀랜드 기반 브랜드인 ‘슈미츠 내추럴스(Schmidt’s Naturals)’를 글로벌 기업에 매각하며 성공 신화를 쓴 제이미 슈미트(Jamie Schmidt)와 크리스 칸티노(Chris Cantino)가 포틀랜드 메이드를 인수했다. 로컬 브랜드의 글로벌 확장을 직접 증명한 이들이 다시 지역 생태계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넘어 ‘브랜드 파운드리(Brand Foundry)’와 같은 현대적인 액셀러레이팅 모델을 도입하고, 크립토 결제 시스템을 비롯한 디지털 커머스 기술을 접목하며 포틀랜드 메이커들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포틀랜드 모델은 실리콘밸리 모델과 대비된다. 미국의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를 기술을 최우선으로 하는 스타트업 문화로 정의한다면, 포틀랜드는 예술, 사람, 커뮤니티에 가치를 두는 비즈니스 중심의 반항적인 대안문화에 가깝다. 기술 집약적인 실리콘밸리 모델과 동네가 살아 있는 커뮤니티 기반의 포틀랜드 모델. 두 모델 모두 창조경제의 중요한 형태지만, 포틀랜드가 보여주는 것은 하이테크가 아니어도, 거대 자본이 아니어도, 동네를 기반으로 한 로컬 브랜드 생태계가 도시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후 펜솔은 교육의 전문성을 제도권 안으로 확장하기 위해 2021년 큰 변화를 선택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폐교 위기였던 역사적 흑인 대학(HBCU) ‘루이스 비즈니스 대학’을 인수하며 교육 거점을 디트로이트로 완전히 이전한 것이다. 2022년 ‘펜솔 루이스 디자인 대학(PLC)’으로 재개교하며 미국 최초의 디자인 중심 HBCU로 거듭났으며, 이를 통해 아카데미를 넘어 정식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대학 체제로 승격되었다. 이는 포틀랜드에서 시작된 로컬 교육 모델이 미국 사회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고등 교육 시스템과 결합하여 전미 단위의 영향력을 확보한 진화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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