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를 걸으면서 포틀랜드가 로컬 비즈니스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로컬 비즈니스를 "지역의 자연·문화 특성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사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역 기반 창의적 사업"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포틀랜드 가게의 유리창에 등장하는 단어는 세 가지다. 'Shop Local', 'Support Small Businesses', 'Independent Retailer'. 이를 조합하면, 지역 시장(Local)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소규모(Small) 독립기업(Independent)이다.
로컬, 스몰, 인디펜던트를 함께 쓴다고 해서 이 세 개념이 로컬 비즈니스의 정체성에 동등한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로컬 비즈니스가 어느 단어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자신의 경쟁력, 그리고 정부 정책에 대한 요구도 바뀌게 된다.
포틀랜드에서 로컬, 스몰, 인디펜던트가 동의어처럼 쓰지만, 각각은 다른 의미를 담는다. 스몰(Small)은 규모다. 미국 중소기업청은 대부분 산업에서 종업원 500명 미만을 중소기업으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도 리테일의 경우 5명 이하 기업을 소상공인으로 정의한다. 스몰은 기본적으로 정량적 기준이다.
인디펜던트(Independent)는 소유권이다. 체인이나 프랜차이즈가 아닌, 독립적으로 소유되고 운영되는 사업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라고 홍보하는 파월스 북스는 종업원 500명이 넘지만 가족 소유 단일 사업체이기에 인디펜던트다.
로컬(Local)은 장소다. 특정 지역에 뿌리를 두고, 그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사업체다. 기업 단위에서는 지역 자원을 활용하고 지역 가치릍 창출하는지, 생태계 차원에서는 공급망, 고용, 세금, 재투자가 지역 내에서 순환되는지가 로컬 정체성의 핵심이다.
세 단어는 겹치지만 강조점이 다르다. 던킨 도너츠 프랜차이즈는 스몰이지만 인디펜던트는 아니다. 아마존 물류센터는 로컬에 위치하지만 스몰도 인디펜던트도 아니다. 포틀랜드 소규모 양조장은 세 가지 모두를 만족한다.
포틀랜드의 로컬 비즈니스는 로컬, 스몰, 인디펜던트 중 어느 단어를 가장 강조할까? 5년 전 마지막 방문했을 때보다 '로컬'이 두드러졌다. 많은 가게가 로컬 사인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인상은 다르다. '로컬'이 줄고 '스몰'이 더 자주 보였다. 비록 통계로 입증된 변화는 아닐지라도, 현장에서 느껴지는 이 미세한 변화는 로컬 비즈니스의 정체성이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체성 변화 가설이 개연성이 높은 이유는 2018년 이후 네 가지 사회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포틀랜디아 피로감. 2011-2018년 TV 시리즈 '포틀랜디아'는 포틀랜드의 로컬 문화를 풍자했다. "이 치킨은 로컬인가요?"라는 에피소드는 로컬 푸드 운동을 힙스터 문화로 희화화했다. '로컬'은 과도하게 미학화된 소비주의로 인식될 위험이 생겼다.
둘째, Black Lives Matter와 포용성.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포틀랜드가 시위의 중심지가 되면서, ‘로컬’이라는 단어에 담긴 미묘한 배타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로컬 문화가 소수자의 삶과는 거리감이 있는, 백인 중산층의 전유물이나 취향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반면 ‘스몰’은 인종과 계급을 넘어 경제적 약자라는 가치를 포괄하는 보다 중립적인 언어로 작동했다. 이는 미래의 로컬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을 넘어, 다양성을 포용하는 ‘열린 로컬리티(Open Locality)’로 진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셋째, 팬데믹과 생존. 2020년 3월 "Keep Portland Small"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팬데믹은 비즈니스 생존을 문제로 만들었고, '스몰'은 경제적 취약성과 연대를 호소하는 직접적 언어가 되었다.
넷째, 정치적 양극화.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로컬은 진보 진영 언어로 인식되었다. 로컬 푸드, 로컬 아트는 환경운동, 반세계화와 연결되었다. 스몰 비즈니스는 양당 모두 지지하는 초당파적 개념이었다. 정치적 편의가 아니라 경제적 논리로 이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로컬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스몰로의 전환은 지속가능할까? 스몰은 대기업과의 비교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규모의 경제를 누리지 못한다는 약점을 정의할 뿐, 경쟁 우위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스몰은 성장의 딜레마를 만든다. 성공한 기업은 더 이상 스몰하지 않다. 스몰은 일시적 상태일 뿐이다.
니치 마켓 연구는 명확히 보여준다. 작은 기업이 생존하는 비결은 '작음' 그 자체가 아니라, '거대 자본'이 흉내 낼 수 없는 특화된 가치에 있다. 대기업은 니치 마켓에 진입하지 않는다. 시장이 작고, 고객 수요가 이질적이며, 필요한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디펜던트의 한계도 명확하다. 인디펜던트는 소유 구조를 설명하지만, 왜 그것이 경제적으로 중요한지 설명하지 않는다. 독립적 소유가 경쟁 우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체인은 브랜드 인지도, 구매력, 마케팅 자원에서 우위를 가진다. 지역 관점에서 인디펜던트의 경제적 가치는 '지역 내 재투자'에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디펜던트의 효과보다 로컬의 효과다. 독립적이되 타 지역에 본사를 둔 비즈니스는 이런 효과를 만들지 못한다.
로컬만이 로컬 비즈니스의 경제적 생존 논리를 명확히 설명한다. 고전적으로 로컬은 두 차원으로 정의된다. 문화적 태도와 경제적 실천이다. 문화적 태도로서 로컬은 장소에 대한 애착과 정체성이다.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그 장소의 고유성을 인식하고 가치화하는 태도다. 경제적 실천으로서 로컬은 지역 내 경제 순환이다. 원재료 구매, 고용, 투자, 세금이 지역 내에서 이루어진다. 이 두 차원은 분리될 수 없다. 문화적 정체성 없는 경제적 실천은 공허하고, 경제적 실천 없는 문화적 태도는 지속불가능하다.
이러한 로컬의 경쟁 우위는 세 가지 층위에서 작동한다.
첫째, 니치 마켓 전문화. 지역 지식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복제할 수 없는 수요를 충족한다. 경험경제 시대에 이 수요는 더욱 명확해진다. 상품, 제품, 서비스를 넘어 경험이 경제적 가치의 핵심이 되었다. 커피 원두는 상품이고 커피 추출은 서비스다. 하지만 포틀랜드 스텀프타운 카페에서 바리스타와 나누는 대화, 그 공간의 분위기, 그 동네를 걷는 경험은 복제할 수 없다. 로컬 비즈니스가 제공하는 것은 장소에 뿌리내린, 확장 불가능한 경험이다.
둘째, 장소 기반 정체성. 문화적 자산이 곧 경제적 자산이 되는 지점이다. 로컬 브랜드는 지역 정체성과 결합한다. 포틀랜드 관광객은 '포틀랜드다운' 경험을 원한다. 로컬 비즈니스가 이를 제공한다. 문화적 자산이 경제적 자산이 되는 지점이다. AI 시대에 이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표준화된 제품과 서비스는 AI와 자동화로 대체된다. 남는 것은 장소에 뿌리내린, 복제 불가능한 정체성이다. 문화경제 시대, 문화가 경제가 되고 경제가 문화가 되는 시대에 장소의 문화적 정체성이 곧 경제적 경쟁력이다. AI가 표준화된 생산을 대체할수록, 장소에 뿌리내린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높아진다.
셋째, 지역 생태계 구축. 개별 점포를 넘어 동네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가 된다. 로컬 비즈니스들은 보완적 관계를 형성한다. 펄 디스트릭트는 양조장, 갤러리, 디자인 스튜디오가 모여 하나의 생태계를 만든다. 각각은 작지만, 함께 모이면 대형 쇼핑몰이 제공할 수 없는 경험을 만든다. 모든 비즈니스가 콘텐츠 영역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여기서 콘텐츠는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의미한다. 소유 구조나 사이즈로는 충분하지 않다. 장소에 뿌리내린 정체성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로컬이 제공하는 프레임이다.
로컬 비즈니스가 스몰 비즈니스에서 정체성을 찾으면, 그것은 대기업의 축소판이 된다. 규모만 작은, 지원이 필요한 약자. 로컬에서 정체성을 찾는 로컬 비즈니스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한다. 장소의 경제를 만드는 주체. 지역 정체성의 창조자. 확장 불가능한 가치의 생산자.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전문가.
정책도 달라진다. 스몰 비즈니스 지원은 보조금, 세금 감면, 규제 완화다. 핸디캡을 메운다. 로컬 비즈니스 육성은 장소 마케팅, 다운타운 활성화, 네이버후드 브랜딩이다. 생태계를 구축한다. 포틀랜드가 "Keep Portland Weird"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문화적 슬로건이자 경제 전략이었다.
포틀랜드도 로컬 중심의 정의로 돌아가면 좋을 것 같다. 나이키(Nike), 컬럼비아 스포츠웨어(Columbia Sportswear)를 포함해 파웰스 북스(Powell's Books), 에이스 호텔(Ace Hotel), 솔트앤스트로(Salt & Straw), 펜들턴(Pendleton), 킨(Keen), 오록스 레더(Orox Leather), 스텀프타운 커피(Stumptown Coffee), 데슈츠 브루어리(Deschutes Brewery), 이스트사이드 디스틸링(Eastside Distilling) 등 포틀랜드가 배출한 수많은 기업은 단순히 작은 독립 가게가 아니라, 지역의 창의성과 문화를 사업화하는 '지역 기반 창의적 사업'이다. 로컬 개념이 로컬 비즈니스의 진정한 경쟁력을 설명한다.
로컬 비즈니스의 미래는 더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로컬해지는 것이다. 장소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지역 정체성을 더 명확히 하며, 로컬 생태계를 더 촘촘히 짜는 것. 이것이 AI 시대에 로컬 비즈니스가 살아남고 번영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