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포틀랜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미국 도시에 비판적인 영국의 도시 잡지 Monocle이 미국에서 유일하게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포틀랜드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훨씬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첫째, 포틀랜드는 메이커와 크리에이터의 도시였다. ADX 같은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주말 목공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이 전문 가구 제작자가 되었다. Portland Made는 300명 이상의 로컬 메이커를 연결하는 협동조합으로, "Made in Portland" 브랜드를 만들어 품질을 보증했다. 포틀랜드에는 70개 이상의 수제맥주 양조장이 있었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였다.
둘째, 포틀랜드는 동네의 도시였다. Alberta Arts District는 한때 위험한 동네였지만 1990년대 예술가들이 값싼 공간을 찾아 모여들면서 갤러리, 스튜디오, 카페, 독립 상점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Mississippi Avenue도, Division Street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았다. 예술가들이 먼저 왔고, 그들을 위한 카페가 생겼고, 카페 손님들을 위한 가게가 생겼고, 가게가 많아지자 더 많은 사람이 왔다. 생태계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셋째, 포틀랜드는 아웃도어 산업의 도시였다. 나이키는 포틀랜드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가 되었다.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펜들턴, 킨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이면서도 30분만 나가면 산과 강, 숲이 펼쳐지는 지리적 조건이 아웃도어 문화를 낳았고, 그 문화가 산업이 되었다.
넷째, 포틀랜드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도시였다. 스텀프타운 커피는 작은 로스터리에서 시작해 프리미엄 커피 산업을 재정의했다. 파웰스 북스는 세계 최대 독립서점이 되었다. 에이스 호텔은 포틀랜드의 DIY 미학을 글로벌 호텔 브랜드로 만들었다. 솔트앤스트로(Salt & Straw)는 수제 아이스크림으로, 데슈츠 브루어리(Deschutes Brewery)는 크래프트 맥주로, 이스트사이드 디스틸링(Eastside Distilling)은 증류주로 각자의 영역에서 혁신을 만들었다.
이 모든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포틀랜드의 문화와 정체성을 사업화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포틀랜드의 가치—진정성, 지속가능성, 장인정신, 커뮤니티—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했다. 당시 2포틀랜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Keep Portland Weird" 슬로건이 상징하듯, 이 도시는 다르게 살고 다르게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로컬 비즈니스는 단순히 작은 가게가 아니라, 포틀랜드다움을 만드는 주체였다. 그리고 그것이 곧 포틀랜드의 경쟁력이었다.
공고하게 보였던 포틀랜드 모델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이상 기류를 맞았다. 한편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과 문화의 희화화 등 성공이 낳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숙자와 마약 문제 대응 실패로 거리의 안전과 쾌적함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2020년대 초, 위기 징후를 보이던 포틀랜드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경험했다. COVID-19 팬데믹,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의 인종정의 시위, 다운타운 쇠퇴. 이 위기 속에서 포틀랜드는 두 개의 상반된 내러티브로 갈라졌다.
포틀랜드의 힙스터 문화가 실제로는 배제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2016년, 페미니스트 서점 In Other Words는 《포틀랜디아》를 맹비난하는 "Fuck Portlandia" 블로그를 올렸다. 쇼가 트랜스젠더를 조롱하고, 유색인종을 무시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서점 이사회 멤버 Nam Kennedy는 말했다. "쇼 때문에 온 방문객들은 좀처럼 고객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문 앞에 서서 우리가 광고하는 것들을 조롱합니다."
서점이 위치한 Albina 지역은 역사적으로 흑인 거주 지역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흑인 커뮤니티가 밀려났다. 진보적 가치를 표방한 포틀랜드 문화가 실제로는 백인 중산층 중심이며, 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는 1960년대 반문화(counterculture)와 신좌파(New Left) 사이의 긴장을 연상시킨다. 문화적 자유와 미학을 강조하는 반문화가 실제로는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고, 구조적 불평등과 소수자 권리라는 신좌파의 의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이다.
《포틀랜디아》의 인기가 역설을 낳았다. 쇼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포틀랜드로 몰려왔다. 그들은 "힙한 포틀랜드"를 소비하려 왔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유입이 포틀랜드를 덜 힙하게 만들었다. 임대료가 올라 예술가들이 밀려났고, 로컬 가게가 문을 닫고 체인점이 들어섰다. 이 축은 포틀랜드의 정체성이 더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적 진정성만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소수자 권리가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포틀랜드의 경제적 쇠퇴와 치안 악화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는 전형적인 계급 갈등의 양상을 띠었다. 포틀랜드 언론 Mercury의 칼럼니스트 Wm. Steven Humphrey는 2025년 1월 "Welcome to Team Portland"라는 칼럼에서 이 시기를 이렇게 회고한다. 팬데믹과 인종정의 시위 이후, 포틀랜드의 우파 성향 비즈니스 리더들, 정치인들, 자칭 "중도파"들이 냉소적인 정치행동위원회를 만들고, 전국 언론에 폄하하는 기고문을 쓰고, 편향된 여론조사를 만들어내며, 포틀랜드가 "지옥"이라고 전 세계를 설득하려 온갖 힘을 다했다는 것이다.
보드로 막힌 상점 창문, 증가하는 노숙자, 다운타운 범죄. 이들은 포틀랜드가 "불타는 지옥(burning hell hole)"이 되었다는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트럼프가 포틀랜드를 "불타는 지옥(burning hell hole)"이라고 부른 것도, Humphrey의 표현을 빌리면, "포틀랜드 비즈니스 리더들이 은쟁반에 담아 제공한 내러티브"였다.
이들이 반대한 정책은 무엇이었나? 세금 인상, 경찰 개혁, 노숙자를 위한 인도적 정책. 이들은 포틀랜드가 지나치게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며 경제와 안전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축은 포틀랜드가 경제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 친화적 정책, 치안 강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분열의 심화: 포틀랜드 문화 전쟁
두 축은 같은 현상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놓고, 한쪽은 힙스터 문화와 부동산 개발이 원주민을 밀어낸다고 비판했고, 다른 쪽은 과도한 규제와 세금이 개발을 막아 주택 공급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노숙자 문제를 놓고, 한쪽은 인도적 접근과 주거 우선 정책을 요구했고, 다른 쪽은 범죄화를 통한 질서 회복을 주장했다. 경찰 개혁을 놓고, 한쪽은 경찰의 과잉 대응과 인종차별을 문제 삼았고, 다른 쪽은 경찰 인력 부족과 치안 공백을 우려했다.
이것은 단순히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고전적 계급 갈등을 넘어선다. 1960년대부터 좌파 진영 내부에 내재되어 온 두 가지 긴장—문화적 자유를 추구하는 반문화와 구조적 평등을 추구하는 신좌파 사이의 긴장, 그리고 진보적 가치와 경제적 안정 사이의 긴장—이 도시 정치의 장에서 증폭된 것이다. 포틀랜드는 이러한 긴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무니시펄 문화 전쟁(municipal culture wars)의 현장이 되었다.
포틀랜드는 더 이상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지 않았다. "Keep Portland Weird"라는 슬로건 아래 있던 합의는 깨졌다. 포틀랜드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비전이 사라졌다.
2025년 초, Humphrey는 흥미로운 변화를 목격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면서, 포틀랜드에서 예상치 못한 수렴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트럼프의 무능한 공포 통치 덕분에, 포틀랜드는 갑자기 다시 자신을 찾았다. 광기 어린 독재자가 포틀랜드 모두를 같은 편으로 만들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포틀랜드를 비판하던 비즈니스 리더들과 보수 성향 인사들이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포틀랜드에 대한 부정적 논평이 줄어들었다. Humphrey의 표현으로는, 끝없이 둔감한(terminally tone-deaf)" 오레고니안(Oregonian) 편집위원회를 포함, 심지어 일부는 ICE 시설 폐쇄와 이민자 보호 같은 진보적 이슈에도 "마지못한 지지"를 표명했다. 관광객들이 다시 포틀랜드를 찾기 시작했고, 팬데믹 이전 처음으로 백만장자들이 "시민적 자부심"을 보이는 조짐이 나타났다.
무엇이 이 변화를 만들었나? 연방 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 환경 규제 완화, 도시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공통의 우려를 만들어냈다. 포틀랜드 내부의 차이보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수렴이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는 불확실하다. 일부 관찰자들은 이것이 진정한 화해가 아니라 일시적 휴전에 불과하다고 본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 다시 분열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로 근본적 갈등 요인은 여전히 남아있다. 새로운 12인 시의회를 둘러싼 논쟁, 노숙자 정책에 대한 이견, 부동산 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이 모든 것에서 두 축 사이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다른 가능성을 본다. 위기가 대화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2020-2023년의 극심한 분열을 겪으며, 양측 모두 대립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했다. 비즈니스 리더들이 포틀랜드를 공격했을 때, 포틀랜드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았다. 관광객이 줄고, 투자가 줄고, 인재가 떠났다. 결국 공격한 측도 손해를 봤다.
현재 포틀랜드에서는 조심스러운 대화가 시작되고 있다. 경제 성장과 포용성이 양립할 수 있는가? 비즈니스 친화적 정책과 진보적 가치가 함께 갈 수 있는가? 개발과 커뮤니티 보존의 균형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Team Portland"가 가능한가? 그 대답은 포틀랜드가 앞으로 어떤 합의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2000년대로 다시 돌아가자. 당시 포틀랜드의 진정한 차별성은 대안적 가치로 산업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나이키는 포틀랜드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가 되었다. 컬럼비아 스포츠웨어도 마찬가지다. 스텀프타운 커피는 작은 로스터리에서 시작해 프리미엄 커피 산업을 재정의했다. 파웰스 북스는 세계 최대 독립서점이 되었다. 에이스 호텔은 포틀랜드의 DIY 미학을 글로벌 호텔 브랜드로 만들었다. 펜들턴, 킨, 데슈츠 브루어리, 이스트사이드 디스틸링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단순히 작은 독립 가게가 아니라, 지역의 창의성과 문화를 사업화한 '지역 기반 창의적 사업'이다. 포틀랜드의 가치—진정성, 지속가능성, 장인정신, 커뮤니티—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했다.
나는 "로컬 비즈니스"를 "지역의 자연·문화 특성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사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역 기반 창의적 사업"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서 핵심은 '로컬'이다. 로컬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장소에 뿌리내린 정체성과 그것을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Pro-Business이면서 Pro-Progressive일 수는 없는가? 일부는 이분법적으로 본다. 비즈니스 성장은 곧 젠트리피케이션이고, 기업가는 곧 탐욕스러운 자본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포틀랜드의 역사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보적 가치—다양성, 공정성, 지속가능성—와 경제적 성공—혁신, 성장, 고용—은 양립 가능하다. 아니, 양립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강화할 수 있다.
포틀랜드가 "Keep Portland Weird"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문화적 슬로건이 아니라 경제 전략이었다. 포틀랜드다움을 지키는 것이 곧 포틀랜드 경제를 지키는 것이다. 그 포틀랜드다움을 만드는 것은 비즈니스와 커뮤니티가 함께였다.
스텀프타운 커피가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좋은 커피를 팔아서가 아니다. 포틀랜드의 커피 문화, 장인정신에 대한 집착, 로컬에 대한 자부심을 체현했기 때문이다. 파웰스 북스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히 큰 서점이어서가 아니다. 포틀랜드 사람들이 독립서점을 지키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로컬 모델"이다. 비즈니스가 커뮤니티의 적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실현하는 주체가 되는 것.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창조자를 육성하는 것. "Local vs Business"가 아니라 "Local Business"인 것.
그렇다면 "Team Portland"란 무엇인가? 분열의 시기를 겪으며 포틀랜드가 배운 것이 있다면, 내부 공격은 모두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이 포틀랜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했을 때, 포틀랜드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았다. 관광객이 줄고, 투자가 줄고, 인재가 떠났다. 결국 공격한 측도 손해를 봤다.
반대로 지금 공동의 위협 앞에서 포틀랜드가 단합의 조짐을 보일 때, 모두가 이득을 볼 가능성이 생긴다. 관광객이 돌아오고, 시민적 자부심이 회복되고, 포틀랜드의 브랜드가 다시 빛날 수 있다. "Team Portland"는 대기업도 로컬 비즈니스도, 비즈니스 리더도 커뮤니티 활동가도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공통의 가치가 필요하다.
그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열린 로컬리티(Open Locality)"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첫째, 포용적 로컬이다. In Other Words 서점이 제기한 비판은 정당했다. 로컬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어야 한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함께 번영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창조적 로컬이다. 로컬 비즈니스는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아니다. 장소 기반 창의적 경제의 주체다. 로컬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지속가능한 로컬이다. 경제 성장이 커뮤니티 파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성장과 보존의 균형이 필요하다.
포틀랜드가 2020년대 위기를 겪으며 배운 것이 있다면, 분열은 모두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단합은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21세기 도시 경제의 경쟁력은 얼마나 강한 로컬 이코노미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강한 로컬 이코노미는 비즈니스와 커뮤니티가 대립할 때가 아니라, 함께 창조할 때 만들어진다.
《포틀랜디아》 종영을 앞두고 캐리 브라운스타인은 말했다. "포틀랜디아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마인드셋입니다. 그리고 그 마인드셋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 마인드셋은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용기, 함께 창조한다는 기쁨이다. "Team Portland"는 그 정신을 어떻게 21세기에 재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언제나 그랬듯이, 동네에서 시작될 것이다.
Humphrey, Wm. Steven. “Welcome to ‘Team Portland.’” Portland Mercury, November 2025.
Brownstein, Carrie. Quoted in Aaron Scott, “‘Portlandia’ Is Ending, And Portlanders Are OK With That.” NPR, January 18, 2018. https://www.npr.org/2018/01/18/577674577/portlandia-is-ending-and-portlanders-are-ok-with-that
“Feminist Bookstore Made Famous on Portlandia Posts ‘Fuck Portlandia’ Sign.” Willamette Week, September 2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