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 대응, 골목상권 육성이 우선이다

by 골목길 경제학자

쿠팡 사태 대응, 골목상권 육성이 우선이다


동네주의자의 입장에서 최근 정부의 쿠팡 사태 대응을 보며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낀다. 당정이 13년 만에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금지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2013년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 결과적으로 365일 무휴로 영업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만 키웠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대형마트를 대항마로 세워 쿠팡을 견제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접근은 문제의 축을 잘못 잡고 있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플랫폼의 경쟁 구도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정작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골목상권은 논의의 주변으로 밀려난다. 정부안이 실행된다면 골목상권은 쿠팡과 대형마트라는 두 거대 유통 사이에서 더욱 좁은 공간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유통 질서의 재편이 골목의 입지를 더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최근 중앙일보의 “평소엔 혼밥, 기분 낼 땐 비싼 밥, 평범한 식당의 위기”라는 기사는 소비 구조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일상에서는 효율을 선택하고, 특별한 순간에는 가치를 선택한다. 중간 지대는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유통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효율을 극대화하는 온라인 플랫폼과, 경험과 장소성을 제공하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이 변화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각 영역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다. 온라인은 물류 혁신과 데이터 기반 운영을 통해 일상의 편의를 담당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오프라인은 표준화된 상품 경쟁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오프라인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동네 고유의 콘텐츠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골목상권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다. 지역의 정체성과 관계망을 형성하는 사회적 인프라이자,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도시 고유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문화 플랫폼이다. 성수동, 이태원, 홍대, 북촌, 서촌이 보여주듯, 골목은 상권을 넘어 관광 자원이 되고 도시 브랜드를 형성한다. 이는 단지 경제 활동이 아니라 도시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다.


그렇다면 규제의 방향도 분명해진다. 현재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주체는 골목상권이다. 규제 완화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와 육성의 대상이다. 대형마트 규제를 풀어 온라인을 견제하는 방식은 거대 유통 간 경쟁을 강화할 뿐, 골목의 체력을 키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온라인 플랫폼에도 새벽배송 시간 제한, 수수료 상한, 지역 상생 의무 등 최소한의 공정 규제를 적용해야 형평성이 확보된다. 동시에 심야 배송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불법 주차, 노동자 과로, 환경 부담—을 가격에 반영해 시장 왜곡을 줄여야 한다.


골목상권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전까지 대형마트의 현 수준 규제를 유지하는 것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형마트는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 문화적 매력에서는 골목에 밀리고, 가격과 편의성에서는 온라인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월마트가 예외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역시 온라인 경쟁력을 강화하며 생존 전략을 재구성한 사례다. 자영업 비중이 높고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은 미국과 다른 오프라인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결국 방향은 명확하다. 효율성의 영역은 온라인이 담당하되, 경험과 가치의 영역은 골목상권이 맡는 분업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유통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략의 문제다.


쿠팡을 견제하기 위한 단기 처방이 골목상권을 희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대 유통 간 경쟁 촉진이 아니라 유통 생태계의 균형 회복이다. 골목상권을 중심에 둔 유통 질서의 재설계, 그것이 이번 사태 대응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권과 생활권, 관리와 투자를 구분해 다시 시작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