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은 산업정책이다

by 골목길 경제학자

상권은 산업정책이다


정부가 대규모 지역상권 육성 사업 공모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사업 설계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상권사업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전통적 상권활성화의 틀은 미국의 메인스트리트 프로그램이 잘 보여준다. 프로모션, 디자인, 조직화(Organization), 경제 활력(Economic Vitality)의 네 가지 접근이 그것이다. 한국의 상권사업을 이 틀에 대입하면 이렇다. 프로모션은 공동 마케팅과 축제·이벤트, 디자인은 간판 교체와 거리 정비, 조직화는 상권 거버넌스 구축과 거점 공간 운영이다.


경제 활력은 네 접근 가운데 핵심이다. 단순한 매출 증대가 아니라 빈 점포를 채우고, 업종을 다변화하며, 신규 창업자를 유치하고, 기존 상인의 사업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자본과 인센티브, 부동산 개발을 통해 기업가와 혁신가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한마디로 상권의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상권활성화 사업은 오랫동안 부진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네 가지 접근 중 가장 중요한 경제 활력 사업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규모 예산으로는 외부 기업과 신규 사업자를 유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상권의 매력을 높일 수 있는 건축디자인과 문화시설 사업을 병행할 수 없는 구조였다. 결국 상권사업은 기존 상인의 매출을 늘려주는 마케팅 지원으로 수렴했고, 상권 콘텐츠에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문제는 상권 콘텐츠가 더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성수동이, 연희동이, 전주 객리단길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싼 가격이나 편리한 위치가 아니다. 그곳에만 있는 콘텐츠 때문이다. 특정한 취향, 장인의 기술, 장소에 뿌리내린 이야기. 상권의 경쟁 기반이 유통에서 콘텐츠로 이동했다. 마케팅으로 기존 상인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이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 상권활성화의 목표를 콘텐츠 개발과 콘텐츠 생산자 육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논리는 고전적 산업정책에 있다. 산업정책의 핵심 수단은 세 가지다. 첫째, SOC와 산업단지 같은 인프라 공급이다. 도로·항만·공항이 물류의 기반이고, 산업단지가 제조업 클러스터의 기반이듯, 정부는 집적 효과가 발생하는 물리적 환경을 직접 만들어왔다. 둘째, 인재와 R&D 공급이다. 대학, 연구소, 직업훈련기관을 통해 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과 지식을 생산한다. 셋째, 투자 인센티브다. 세제 혜택, 보조금, 정책금융으로 민간 투자를 특정 산업으로 유도한다.


상권도 하나의 산업이다.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상권의 인프라는 건축물과 보행환경이다. 매력적인 건물이 들어서고 걷고 싶은 거리가 조성되어야 로컬 크리에이터가 정착하고 방문자가 머문다. 상권의 인재와 기술은 지역 대학, 전문학교, 장인 교육기관과의 연계에서 나온다. 지역의 차별적 콘텐츠를 기획하고 구현할 로컬 크리에이터를 키우는 것이 상권판 R&D다. 투자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기존 상인이 매장을 추가확장하거나 신규 사업자가 새로운 콘텐츠로 입점할 때 실질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 건물 리모델링에 대한 세액공제, 로컬 콘텐츠 창업자에 대한 임대료 보조, 장기 임차 계약을 체결한 건물주에 대한 재산세 감면이 그 예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상권은 산업정책 논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매력적인 건축물과 건축환경을 보유하고, 상권 주변에 상권 인재를 공급하는 학교와 대학이 있으며, 상가와 건축물에 대한 투자가 활발한 곳이다. 대학 근처의 골목상권이 '뜨는' 배경이다. 이런 전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권은 성공하기 어렵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 소도시 거점 상권에 정부가 개입해 기본 조건을 공급해야 하는 이유다.


올해 공모의 기조는 민간 기업을 투입해 상권 기획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인 것으로 보인다. 기획력 강화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인프라가 없고, 인재 공급 체계가 없으며, 투자 인센티브도 없는 구조에서 기획 역량만으로 상권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올해는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사업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상권 거점화는 중기부의 예산과 권한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정한 대안은 부처 합동 사업이다. 상이한 목표를 가진 관련 사업의 연계로는 부족하다. 거점 상권 구축이라는 단일 목표로 건축물과 보행환경은 국토교통부가, 문화시설과 창작 공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투자 인센티브는 기획재정부가, 지역 단위 행정 체계는 행정안전부가 각각 공급해야 한다. 상권활성화를 중기부 소관 소상공인 지원 사업으로 다루는 한, 구조적 전환은 불가능하다.


현 정부는 5극 3특, 지방 주도 성장, 사회연대경제를 중심으로 지역발전의 틀을 바꾸려 한다. 소도시와 원도심에서 지역재생의 실질적 거점은 상권은 상위 전략에서 빠져있다. 상권이 지역발전 정책과 연결되지 않으면, 상권 공모 사업은 행사와 마케팅의 반복으로 끝나고, 거시적 지역발전 사업은 미시적 실행 기반의 부재로 공전할 것이다. 상권활성화의 본질이 마케팅에서 콘텐츠 개발로, 단발 지원에서 산업정책으로 이동했음을 인정하는 것—그것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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