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여러 번 지나쳤던 길을 걸어서 처음 통과하는 순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난주 제주 숙소 스테이여언 주변을 걷다 그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장면 1. 걷다가 발견한 건물
평소 차로만 지나치던 길을 걸었을 뿐인데, 낯익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흰 외벽에 작은 캐릭터 그림. 제주 로컬 디저트 브랜드 우무의 남문사거리 매장이었습니다.
스테이여언과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습니다. 걷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거리였습니다.
장면 2. 사람들이 줄 선 세 곳
그런데 남문사거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걸으면서 보니 사람들이 줄 선 장소가 세 곳이었습니다.
한 곳은 우무. 또 한 곳은 바로 옆 베이커리 픽업카페. 그런데 마지막 장소가 의외였습니다. 우무 건물 앞에서 골목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게 앞도 아니고, 골목 자체가 목적지였습니다.
장면 3. 골목 끝의 성당
왜 이 골목일까 궁금해서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완만한 내리막 골목 끝에 중앙성당이 있었습니다.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볼 법한 붉은 벽돌 성당 첨탑이 제주 구도심 골목의 배경으로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국적이면서도 오래된 느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무 앞에 서면 이 뷰가 열립니다. 우무가 이 자리를 고른 것이 우연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면 4. 제주의 코엔지
골목을 더 걸으니 빈티지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세어보니 열 곳이 넘었습니다. 도쿄 코엔지의 빈티지 거리가 떠올랐습니다. 제주시에 탑동, 전농로, 산지천에 이어 제4의 골목상권이 탄생한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이 골목이 이렇게 됐을까.
장면 5. 숙소에서 찾은 기사
스테이여언으로 돌아와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우무가 이 골목에 처음 들어온 것이 2020년이었습니다. 제주 해녀가 채취한 우뭇가사리로 푸딩을 만들고, 비누와 핸드크림을 개발하는 제주 로컬 브랜드입니다. 제주 땅에서 나고 자란 재료로 제주만의 것을 만드는 브랜드가 침체한 원도심 골목을 새로운 자리로 택한 것입니다.
2023년 연합뉴스가 이 변화를 기사로 다뤘습니다. 한 브랜드가 골목에 들어간 이후 골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한 기사입니다. 아래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장면 6. '’동문시장점'‘라는 이름
마지막으로 우무를 검색하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무는 이 매장을 '’우무 동문시장점'‘라고 부릅니다. 지도로 보면 동문시장과 꽤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문시장점. 처음엔 의아했지만 생각할수록 스마트한 선택입니다. 제주를 처음 오는 사람도 동문시장은 압니다. 그 이름을 빌려오는 것만으로 위치 설명이 끝납니다. 동문시장이 그만큼 제주 원도심의 중심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무가 들어오기 전, 이 골목은 재생이 필요한 낙후 지역이었습니다. 2020년, 한 브랜드가 그 골목을 택했습니다. 그 브랜드가 트래픽을 만들자, 픽업카페, 빈티지샵, 맛집들이 따라 들어와 생태계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5년후 지금 이 골목에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정부는 골목상권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