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도시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있다. 파리, 도쿄, 런던, 뉴욕. 오래된 골목과 우연한 발견이 있는 도시들이다. 계획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상권들, 곧 자연발생적 생태계에 가까운 상권이다. 반면 정반대의 유형도 있다. 모래사막 위에 세운 카지노 스트립, 라스베이거스다. 출장이나 컨벤션 수요를 제외하면, 그 거리를 거리 자체의 매력 때문에 찾는 경우는 드물다. 강한 기획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유지되는 목적형 상권의 대표 사례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상권 정책이다. 한국인은 여행지로 파리를 원하지만, 정작 우리 상권 정책은 라스베이거스의 문법으로 작동한다. 신도시 상권이 전형적이다. 용도를 지정하고, 상가를 분양하고, 앵커 시설을 유치한다. 기획자가 그린 도면 위에 상권을 올린다. 결과는 공실과 업종 획일화다. 판교, 세종, 각종 택지지구의 신도시 상가들이 반복해서 겪는 문제다. 기존 상권의 활성화 사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브랜딩, 마케팅 캠페인, 축제와 이벤트가 방문객 유치의 핵심 수단이 된다.
그러나 주민과 상인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다양한 업종, 다채로운 콘텐츠,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시도가 섞인 골목이다. 정책이 공급하기 쉬운 것은 행사와 홍보다. 정책이 공급하기 어려운 것은 실제로 상권을 살리는 주체들, 곧 좋은 소상공인, 독립 창업자, 지역에 뿌리내린 사업자다. 생태계를 키우는 일은 오래 걸리고 불확실하다. 반면 이벤트는 빠르고 성과를 측정하기 쉽다. 정책이 후자를 선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기획만으로는 상권의 지속가능성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라스베이거스가 그 한계를 보여준다. 방문객이 줄어들자 처방은 다시 더 큰 이벤트와 더 큰 시설이다. F1, 야구장, 미술관, 초대형 공연장, 월드컵 유치. 더 크고, 더 많고, 더 화려한 기획이다. 목적형 상권은 멈추는 순간 약해진다. 인공적 자극의 강도를 계속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파리의 골목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누군가 최근에 그것을 잘 기획했기 때문이 아니다. 시간이 쌓이고,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자라난 결과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상권의 힘은 기획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누가 들어오고, 어떤 건물이 남고, 어떤 임대 조건이 유지되고, 어떤 생활문화가 축적되는가에서 나온다.
그래서 정책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상권 생태계 자체를 설계하려 하기보다, 생태계가 자랄 조건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독립 사업자가 진입할 수 있는 저렴한 공간, 오래 머물 수 있는 임대 구조, 걷기 좋은 저층 건축 환경, 지역 기반 운영조직과 창업 생태계가 그것이다. 브랜딩과 이벤트는 이런 조건 위에 있을 때만 힘을 가진다. 한국의 상권 정책이 라스베이거스의 방식으로 파리의 결과를 원한다면,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