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상권 정책의 현주소, 명분과 제도의 충돌

by 골목길 경제학자

지역상권 정책의 현주소, 명분과 제도의 충돌


2023년 이후 한국 지역상권 정책의 핵심 명분은 민간 주도 상권활성화다. 그런데 민간 주도를 뒷받침해야 할 제도는 그 명분을 따라가지 못했다. 법이 규정한 상권 사업 주체와 정책이 투입한 민간 주체가 충돌하면서 현장의 혼란은 깊어지고 있다.


1. 미로와 같은 상권 거버넌스

누가 상권 사업의 주체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식적으로는 두 법이 주체를 규정한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은 상권관리기구를 상권활성화사업의 주체로 지정한다. 비영리법인으로 설립되어 타운매니저를 두고 상권 운영을 담당한다.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자율상권조합을 상권 사업의 주체로 규정한다. 상인·임대인·토지소유자가 각각 과반수 동의로 설립하는 자치 조직이다.


그런데 2023년 이후 현장에는 전혀 다른 주체들이 등장했다. 상권기획자, 상권 기획 전담기업, 로컬크리에이터. 동네상권발전소, 로컬브랜드 창출, 글로컬 상권 육성이라는 이름의 사업에서 상권 전략을 수립하고 브랜딩을 집행하는 사업 주체가 되었다. 두 법이 규정한 상권관리기구도, 자율상권조합도 아니었다.


2026년 「모두의 지역상권」 추진전략에는 또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한다. 전문투자사, 지역관계형 기업, 로컬앵커기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2. 민간 주도, 그 일관된 노선과 제도의 공백

2023년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 종합계획」 이후 정책의 노선은 일관되다. 민간 주도 상권활성화다. 정부 주도의 획일적 지원에서 벗어나 민간이 상권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노선의 핵심 제도로 중기부가 설계한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상권기획자 제도다. 상권 발굴부터 전략 수립, 실행까지 전담하는 민간 전문회사를 등록제로 관리하고, 이들에게 상권 기획과 발전기금 운용을 맡기는 구조였다. 다른 하나는 상권형 투자펀드다. 상권기획자와 민간 투자자가 결합하여 상권에 직접 투자하고, 공공이 마중물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 두 제도를 도입하려면 지역상권법 개정이 필요했다. 개정안은 발의되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제도의 토대 없이 정책 방향만 남은 셈이었다.


중기부는 법 개정 없이 기존 소상공인 지원 법령의 포괄적 조항을 근거로 사업을 추진했다. 동네상권발전소는 상권 전략 수립 사업으로, 로컬브랜드 창출과 글로컬 상권 창출은 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사업으로 포장되었다. 상권 사업 전문 법률과 독립적으로 민간 기업이 보조금을 받아 상권을 기획·운영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2026년 모두의 지역상권 전략의 전문투자사, 지역관계형 기업, 로컬앵커기업은 이 흐름의 연장이다. 차이가 있다면, 보조금으로 수익을 내는 기획자에서, 상권의 성공에서 수익을 내는 투자자·사업자로 민간의 역할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 민간 주체들이 법적 상권 사업의 주체인 자율상권조합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여전히 규정되지 않았다. 민간 기업이 자율상권조합을 조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율상권조합 설립 자체가 상인·임대인·토지소유자 각각의 과반수 동의를 요구하는 높은 문턱 위에 있기 때문이다.


3. 문제의 근원: 관리와 투자의 혼선

현장의 혼란은 상권 사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상권 사업은 관리와 투자로 분리되지만, 중기부가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상권 관리는 주민 자치의 영역이다. 안전, 청결, 경관, 임대료 협약, 거버넌스, 마케팅 — 상권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상인 간 협력을 조정하는 일이다. 이것은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적 운영 시스템이다. 상인과 건물주의 자발적 참여와 합의가 필요하고, 이를 실행하는 주민 조직이 있어야 한다. 전통시장법의 상권관리기구와 지역상권법의 자율상권조합이 원래 이 역할을 위해 설계된 제도다. 그러나 두 법이 병존하면서 주체가 분산되고 책임이 불명확해졌다. 두 제도는 차제에 단일한 상권관리 주체로 통합되어야 한다.


상권 투자는 도시 계획의 영역이다. 상권 투자 사업은 상권활성화 사업뿐만 아니라 상권이 자라는 토양 — 역세권 접근성, 주거환경, 보행동선 — 에도 개입한다. 여기에서 민간 기업은 보조금으로 상권을 기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로서 생활권에 참여한다. 유휴공간 재생, 복합개발, 거점시설 운영, 문화행사와 축제, 건축디자인 등이 민간 기업이 주도할 수 있는 상권 사업이다.


투자는 점포 집적 구역이 아니라 행정동이나 시군구 단위 생활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생활권 계획은 상권을 넘어 주거·오피스·관광·문화시설을 포괄하는 계획이다. 15분 도시, 직주락 센터 구축이 가능한 것도 이 단위에서다. 상권과 연계된 이런 생활권 단위 사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활력타운, 도심융합특구, 지구단위계획 등 개별 도시 개발 사업들이 그 윤곽을 부분적으로 보여주지만, 상권을 생활권과 통합하는 정책 단위는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


현재의 상권활성화 사업은 이 구분을 지키지 않았다. 관리 예산이 기업 유치와 보육, 시설 투자와 같은 투자성 사업에 쓰였다. 투자는 생활권 전체가 아닌 특정 상권 구역에 갇혔다. 2023년 이후 민간 기업을 투입한 사업들도 이 혼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관리 역할을 해야 할 자리에 투자 성격의 기획자를 넣었고,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생활권 단위에는 개입하지 못했다.


민간 주도 상권활성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민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상권 관리는 상인과 건물주의 자치 조직이 담당해야 한다. 두 법에 분산된 상권관리기구와 자율상권조합은 단일한 주체로 통합되어야 한다. 민간기업의 역할은 생활권 단위 투자에 있다. 보조금을 받아 상권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유휴공간 재생·복합개발·거점시설 운영에 자본과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 구분이 서지 않는 한, 상권 사업 주체를 바꾸는 시도는 또 다른 혼선을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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