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 단위 로컬창업 보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6년 「모두의 지역상권」 추진전략은 로컬앵커 기업이 후배 창업자를 유치하고 멘토링하는 앵커스토어 모델과, 전문투자사가 유휴 건물을 리모델링해 로컬기업을 보육하는 로컬창업 스튜디오를 핵심 수단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보육 모델의 설계와 운영 방식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로컬창업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우선 필자가 인지하는 국내외에서 시도된 사례들을 보육 주체와 거버넌스 구조에 따라 정리한다. 보육 주체는 크게 민간, 임팩트 투자사, 대기업 ESG, 공공 등 네 개 유형이 있다. 민간 보육은 거버넌스 구조에 따라 크루, 협동조합, 책임임대차, 사내벤처형 모델로 나뉜다.
여기서 소개하는 사례는 특정 지역에 거점을 두고 그 지역에서 창업할 소상공인을 보육한 사례로 한정한다. 창업 지역과 관계없이 전국이나 광역 단위로 지원하는 사례는 제외한다.
민간 보육
민간 보육의 첫 번째 유형은 느슨한 연대를 의미하는 크루 모델이다. 인천 개항로 프로젝트는 이창길 대표를 중심으로 16인의 크루가 느슨하게 묶여 움직이는 구조다. 2018년 브라운핸즈 카페 오픈을 시작으로 오래된 병원, 양복점, 공장 등 역할이 끝난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운영하며 수십여 개 매장이 자리 잡았다. 각자의 전문성을 살린 사업을 모태로 매력적인 상업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광주 1913 송정역시장은 현대카드와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기획 지원 아래 기획자가 여러 창업 팀을 시장으로 유치한 사례다. 비어있던 14개 점포를 기획서 심사를 통해 청년 창업자에게 내주는 방식으로, 기존 상인과 청년 상인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충남 홍성의 집단지성은 초록물고기 김만이 대표가 홍성에 정착해 유기농 밀키트 사업을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다. 사업 성과와 언론 노출을 계기로 청년들이 유입되면서 문화예술, 음악, 독립서점, 공방, F&B 등 10개 기업이 느슨한 연대로 협업하는 홍고통 로컬스타트업 빌리지로 발전했다.
두 번쨰 모델 협동조합의 대표 사례는 충주 관아골의 보탬플러스다. 지역재생 컨설턴트 출신 박진영 대표가 2018년 상인 다섯 명과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빈 건물을 직접 매입해 청년 창업자에게 저렴하게 임대했다. 2세대 협동조합 자작자작으로 이어져 인근 골목까지 확장 중이다. 참여 기업들이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구조가 장기 지속성의 핵심이다.
세 번째 책임임대차 모델은 운영자가 건물을 확보해 참여 브랜드에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운영자는 입주 브랜드를 선별하고 공간의 성격을 기획함으로써 실질적인 보육 역할을 수행한다. 연희정음이 대표 사례다. 군산 영화타운은 ㈜지방이 공간을 확보해 예비 창업자를 선별·입점시키고 브랜딩을 통합 관리한 사례다. 책임임대차의 변형으로는 임대료를 극히 낮게 설정해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식도 있다.
서울 성동구 송정동의 1유로 프로젝트는 임대료를 사실상 무상에 가깝게 설정해 입점 브랜드의 실험을 지원하는 구조다. 디트로이트 GREEN 인큐베이터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작업공간 임대 수익으로 운영 비용을 충당하되 외부 투자 없이 지역 내 유휴 자원을 재결합하는 local bricolage 방식으로 창업자를 키웠다. 폐타이어를 지역 디자인 학교와 연결해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편의점과 주유소를 신선식품 유통 거점으로 전환한 기업들이 GREEN에서 나왔다. 반면 같은 디트로이트의 ACCEL은 VC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한 액셀러레이터로,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대부분 디트로이트를 떠났다. 두 사례의 비교가 scale deep과 scale up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네 번째 사내벤처형 모델의 대표 사례는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Zingerman's다. 1982년 작은 델리카트슨으로 시작해 현재 10개 이상의 독립 사업체로 구성된 로컬 푸드 생태계다. Path to Partnership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이 사업계획을 개발하면 창업자가 투자하고, 새 사업체는 Zingerman's 브랜드와 공급망을 공유하며 독립 경영된다. 40년간 앤아버를 떠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생태계를 확장한 scale deep의 전형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 단계에 도달한 로컬앵커 기업이 확인되지 않는다.
편집숍 비즈니스 모델도 주목할 만하다. 보육 모델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유는 창업자를 선발하거나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의 MadeHere PDX는 2014년 지역 기업인들이 설립한 갤러리형 편집숍으로, 포틀랜드에서 만든 제품만 엄선해 판매한다. 150개 이상의 로컬 메이커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함으로써 초기 창업자가 시장에 진입하는 문턱을 낮춘다. 창업자를 직접 키우는 것이 아니라 팔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식이다.
임팩트 투자사 보육
성수동의 카우앤독·루트임팩트가 국내 대표 사례다. 임팩트 투자자가 사실상 장인 기획사로서 음식점, 소품, 디자인 등 골목 업종의 소셜벤처 창업을 지원했다. 소녀방앗간, 마리몬드 라운지 등이 이 방식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성수동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만 작동했고 전국적으로 복제되지 못했다.
해외 사례로는 암스테르담의 Boost je Buurt가 있다. Amsterdam Impact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지역 커뮤니티에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로컬 창업자에게 2만 유로 상당의 비즈니스 개발 프로그램과 최대 7,500유로의 추가 개발 예산을 지원한다.
대기업 ESG 보육
로컬라이즈 군산이 유일한 사례다. SK E&S와 언더독스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군산 영화동에 거점을 두고 인큐베이팅 트랙과 액셀러레이팅 트랙을 병행했다. 창업자의 출신이 아닌 창업 장소를 기준으로 한 국내 최초의 로컬 특화 보육 모델이었다. 대기업 사회공헌이 보육 비용을 감당한 구조로, 사업 종료 후 자생적 운영 모델을 남기지 못했다. 광주 1913 송정역시장도 현대카드가 기획과 시설 개선 비용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대기업 사회공헌이 보육의 마중물이 된 사례로 볼 수 있다.
공공 보육
프랑스의 제3의 장소(Tiers-Lieux)는 공공 보육의 해외 대표 사례다. 코뮌 단위의 농촌 지역까지 확산되어 공유 장인 작업장, 팹랩, 공동 주방, 코워킹 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된다. 주민, 창업자, 협동조합, 지역 단체가 함께 사용하는 마을 단위 공동 작업 거점으로, 공공이 운영 비용을 지원하는 구조다.
샌프란시스코의 Vacant to Vibrant는 공공이 빈 상가를 소상공인 보육 공간으로 전환한 사례다. 3개월 무임대, 최대 1만 달러 보조금, 인허가·마케팅·운영 컨설팅을 패키지로 지원하고 건물주에게도 시설 개선 보조금을 제공한다. 2025년에는 팝업을 정식 점포로 전환하는 사업자에게 최대 5만 달러를 추가 지원하는 Pop-up to Permanent를 론칭했다. 23개 팝업 중 10곳이 정식 점포로 전환됐다.
국내 공공 보육으로는 두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다. 서울시의 로컬인서울은 특정 로컬브랜드 상권에서 공간 기반 창업을 진행할 청년 예비창업가를 선발해 지역조사비와 사업화 자금 3,000만 원 내외를 지원한다. 중기부의 로컬브랜드 창출 사업은 민간 로컬크리에이터 대표기업과 지자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예비 소상공인 창업 프로그램과 교육·컨설팅을 지원하는 구조다. 장인학교는 이 사업의 일환으로 개별 상권에서 운영되는 청년 로컬 예비창업자 육성 프로그램이다.
각 모델의 장단점
민간 보육은 현장 밀착성과 자생력이 강점이다. 그러나 리더 의존도가 높고 정부 지원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갖춘 사례가 드물다. 사내벤처형은 가장 체계적인 민간 보육 모델이지만 로컬앵커 기업이 충분한 규모와 브랜드 자산을 갖춰야 작동한다.
임팩트 투자사 보육은 민간 자본으로 공익적 보육을 실현하는 구조지만 특정 지역 생태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전국적 확산이 어렵다. 대기업 ESG 보육은 초기 집중 투자가 가능하지만 지속 가능한 자립 구조를 남기지 못한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공공 보육은 지속적 지원이 가능하고 전국 확산에 유리하지만, 예산 의존 구조와 관료적 운영 방식이 현장 밀착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로컬인서울과 장인학교는 특정 상권에 투입할 창업자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맞지만 아직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로컬창업 보육은 아직 실험 단계다. 국내외에 다양한 사례가 있지만 명확한 수익 모델을 찾은 모델은 찾기 어렵다. 로컬창업 보육이 정책으로 확산되려면 거버넌스 유형과 함께 수익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더 체계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Maynard, Micheline. "A Corner Deli With International Appeal." The New York Times, May 3,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