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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pr 26. 2020

농촌 지역 스몰란드의 실용주의가 이케아 기업문화의 모태

이케아 광명점에는 '낯선' 포스터 하나가 있다. 돌벽, 벌판 그리고 숲을 배경으로 '스몰란드,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 포스터를 보면 자연스레 스몰란드가 어딘지 궁금해진다. 이 매장이 운영하는 어린이 놀이방 '스몰란드'를 기억하는 소비자는 이 곳을 어린이가 노는 '작은 장소' 쯤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포스터의 스몰란드는 스웨덴 남부에 위치한 인구 72만의 작은 지방, 1943년 잉바르 캄프라드가 이케아를 창업한 바로 그곳이다.

먼 나라 한국의 매장에 전시한 포스터는 고향에 대한 이케아의 애정을 보여준다. 아니, 애정이라는 말은 기업과 지역의 관계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일지 모른다. 창업자 캄프라드는 공식적으로 "암석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정직하고 절약하며 서로 힘을 모으는 스몰란드 사람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한다. 스몰란드는 그에게 고향 이상의 존재이며 그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홍보하는 핵심 자산이다.




기업 역사와 경영 방식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지역 정체성이 왜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창업의 지향점 자체가 지역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스몰란드의 평범한 농가는 기능성이 뛰어나고 저렴한 가구를 원했고, 이케아는 그런 가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출발했다. 이런 창업 철학을 유지하는 기업이 많은 사람에게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서민을 위한 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배달 판매, 카탈로그 배포, 조립식 가구, 매장 위치와 구조 등 전설적인 마케팅 방식 역시 출신 지역의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농업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 캄프라드는 지역 환경을 고려해 카탈로그를 제작해 주문을 받고 배달하는 마케팅 방식을 선택했다. 매장을 열기 시작한 후 차로 운반하기 쉬운 조립식 가구(플랫팩)를 개발하고,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도록 매장 내 식당을 연 것도 뚜렷한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의 특성상 자동차를 타고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많은 점에서 착안했다.

지역 문화에 기반한 창업 모델과 정신을 고수하는 이케아의 '뿌리 경영'은 상품 개발과 마케팅 방식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 기업 구조, 인재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일관되게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건물을 준공할 때 화려한 기념비 대신 돌담을 쌓고 팻말을 올려놓는 것이 뿌리 경영의 상징이다. 스몰란드 농부가 바람을 막기 위해 들판에 쌓는 돌담, 광명 매장 포스터 속의 그 돌담을 재연하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이케아는 현재 세계 곳곳에 매장과 계열사를 두고 역외 지주회사도 활용한다. 이케아 그룹에서 제일 중요한 회사는 모든 이케아 상표를 소유한 인터이케아그룹(Inter IKEA Group)이다. 이 회사의 본사는 현재 룩셈부르크에 있다. 세금 등 경제적인 이유로 룩셈부르크로 이전했지만, 실질적인 이케아 본사는 스웨덴 남부 도시 알름훌트에 있다. 알름훌트는 이케아가 1943년 처음 사업을 시작한 도시다.






이케아의 가구만큼이나 단순한 알름훌트 본사


많은 사람이 알름훌트 본사를 이케아의 심장이라고 부른다. 본사의 중요한 역할은 상품 개발이다. 매년 알름훌트의 디자이너와 경영진들은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판매될 상품 라인업을 결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케아가 판매하는 모든 상품을 개발해서 테스트하고, 선택된 제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만드는 곳도 알름훌트다.


이케아는 또한 뿌리 정신을 적극적으로 교육한다. 직원들은 본사를 방문하여 연수를 받고 내부 홍보를 통해 스몰란드의 의미를 구체적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지역 문화를 승계하고자 하는 의지는 캄프라드의 인력 활용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기업 핵심 인력들은 스몰란드 출신이 많고, 1980년대까지는 회사 경영진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이었다. 지역 문화 정체성을 공유하는 인재들의 협력정신이 저비용 경영 구조를 일군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이다.


나는 알름훌트 본사가 아주 화려하리라고 상상했다. 아무리 이케아가 저가 가구를 만들고 검소함을 강조한다지만 명색이 디자인 기업 아닌가? 디자인을 만드는 기업의 본사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뉴욕 등지에서 접하는 미술관과 예술인에게서 풍기는 아우라가 느껴지리라고 기대했다.


초여름, 간이역 수준의 알름훌트 역에 도착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본사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역 반대편 쪽으로 걸어갔다. 공장, 창고, 사무실 건물이 들어선 이 지역에는 아무런 표지판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알고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알름훌트 본사 단지였다. 단지는 매우 넓고 이케아 1호점 건물, 테스트 센터, 사진 스튜디오, 이케아 은행, 이케아 호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문어발처럼 확장한 기업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곳곳에서 일하는 이케아 간부는 적어도 한 번은 알름훌트 본사를 방문해야 한다. 이케아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알름훌트 본사만 한 곳도 없다. 이케아 호텔은 알름훌트 본사를 방문하는 직원과 손님을 위해 만든 호텔이다. 미국의 중저가 호텔인 홀리데이인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소박한 호텔이다.


이케아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대해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이나 가구 박물관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것이다. 회사 호텔 지하층에 있는 박물관은 조그만 규모의 소박한 공간이다. 안내원도 없어 혼자 관람해야 하는, 정말 이케아만큼이나 실용적이고 검소한 박물관이다.



이케아 박물관과 알름훌트 이케아 매장


박물관에서 이케아의 역사에 알름훌트라는 도시적 배경이 미친 영향에 대한 정보를 찾고 싶었다.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는 1943년 17세의 나이로 우편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이케아를 창업했다. 법적으로 사업할 수 없는 나이라서 이케아는 그의 삼촌 명의로 탄생했다. 소박한 시작만큼이나 이름도 단순하게 지어졌다. 스웨덴 남부 아군나리드(Agunnaryd) 마을에 있는 엘름타리드(Elmtaryd) 농장에서 자란 캄프라드는 자신의 머리글자 IK와 그가 자란 농장 이름, 그리고 마을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케아(IKEA)라는 이름을 지었다.


1951년 회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카탈로그를 만들고, 1953년에는 알름훌트 목공소에 가구 전시장을 열어 가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플랫팩 가구는 1955년에 발명됐다. 직원 일리스 룬드그렌이 좁은 차 트렁크 안에 테이블을 넣기 위해 테이블 다리를 자른 아이디어가 지금의 플랫팩 가구를 탄생시켰다. 플랫팩 가구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이 가구는 운송이 편리해 다량의 가구를 싼 가격에 전 세계 판매장에 운송할 수 있다. 매장에서 구매한 플랫팩 가구를 소비자가 직접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으므로 배달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이케아가 지금 크기의 대규모 매장을 연 때는 1958년이다. 총 6700제곱미터 넓이의 1호점은 당시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제일 큰 가구점이었다. 2년 후 이케아는 1호점에 이어, 이케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케아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1960~1970년대 이케아는 포앙 암체어(POANG Armchair), 빌리 책장(Billy Bookcase), 클리판 소파(Klippan Sofa), 렉테이블(Lack Table) 등 현재까지도 전설이 된 가구 라인을 연달아 출시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어린이용 가구 라인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PSPsot Scriptum 컬렉션도 출시했다.


이케아는 기업 초기부터 세계 시장을 공략한 마케팅 전략을 썼다. 1963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해 현재 세계 43개 나라에서 347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총 15만 명에 이르는 종업원을 고용했다. 이케아의 세계화 전략은 많은 기업의 본보기가 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케아가 전 세계에서 고도로 표준화한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지 고객 행동의 다양한 패턴을 고려해 현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평가했다. 그래서일까? 이케아는 많은 가구 기업이 실패한 중국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박물관을 떠나 이케아 매장을 찾아 나섰다. 이 매장은 원래 본사 단지에 있던 이케아 1호점이 새로 이전한 것이다. 이케아 매장은 알름훌트와 이케아의 관계에 대해 뭔가를 알려줄 것 같았다. 본사가 있으면서도 알름훌트에서 유일한 이케아 매장이라는 사실에도 흥미가 생겼다.


버스를 타고 간 이케아 매장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건물 벽에 알름훌트 매장이라고 표시한 사인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혹시 내부에 그런 사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름훌트 매장 내부에는 이 매장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장이나 포스터라도 있을 줄 알았다. 이케아 매장은 한 번 입장한 고객이 매장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 나오도록 설계된 것으로 유명하다. 알름훌트의 특징을 찾으려고 들어간 나 역시 결국 모든 매장을 둘러봐야 했다. 그러나 이케아 매장을 다 돌아봐도 알름훌트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알름훌트라는 단어가 있는 유일한 곳은 역으로 돌아갈 때 타야 하는 버스 시간표와 매장 안내 지도였다.


알름훌트 매장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규격화된 매장과 다르지 않았다. 매장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케아는 매정해 보일 만큼 매장 디자인과 서비스를 전 세계적으로 통일했다. 지역의 특색을 찾으려고 했던 나는 이케아가 유난히 원망스러웠다. 정말 스웨덴 사람들은 소문대로 기계 같구나! 이케아도 스웨덴 기업답게 아주 정확하고 획일적이다.



작고 포근한 도시 알름훌트


이케아 매장을 나오면서 이 도시와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알름훌트는 전형적인 기업 도시다. 2012년 총인구가 8000여 명에 불과한 알름훌트에서 이케아 직원으로 일하는 지역민은 4000명에 달한다. 이케아가 알름훌트 경제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케아가 알름훌트와 같은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캄프라드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타고 매장에 오는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케아 매장은 소비자가 자신의 차를 직접 몰고 가는 곳이기 때문에 굳이 임대료가 비싼 인구 밀집 지역에 있을 필요가 없다. 도심과 떨어진 교외, 심지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도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그런 이유가 작은 도시에서도 이케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알름훌트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시 인프라, 교육, 라이프스타일로 고민하는 도시다. 알름훌트 근교에는 호수가 많아 스웨덴 사람들은 손쉽게 카누, 낚시 등 야외 활동을 즐긴다. 호수 근처에는 캠프장, 자전거 길, 산책로뿐만 아니라 도서관, 골프 코스,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있어 가족들이 함께 여가를 즐기기에 매력적이다.

알름훌트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작은 도시지만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국영철도를 통해 2시간 안에 말뫼, 코펜하겐과 같은 국제도시에 갈 수 있다. 나도 코펜하겐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편리하게 이동했다.


알름훌트 시 정부 홈페이지는 작은 도시의 포근함과 친절함을 매력적으로 홍보한다. 작은 도시에 대한 예찬을 듣다 보니 이케아 직원이 알름훌트 생활에 만족하는 것이 꽤 당연하게 느껴졌다. 작지만 여유 있고 편리한 생활을 즐기는 주민이라면 알름훌트는 제법 살기 좋은 도시일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알름훌트에서 일하는 이케아 직원 4000명 중 절반인 2000명이 다른 도시에서 출퇴근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케아 직원의 상당수, 특히 젊은 직원은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룬드 같은 대학 도시에서 통근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 도시인 룬드는 젊은이들이 많이 산다.


아무리 이케아라도 회사와 지역에 대한 충성심 없이 작은 도시의 매력에만 호소한다면 스웨덴의 젊은이를 알름훌트 같은 소도시에 붙들어 놓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케아는 알름훌트 교육을 열심히 한다. 알름훌트의 중요성에 대해 이케아 홈페이지는 “많은 기업이 작은 도시를 떠나 대도시로 갔지만, 이케아는 남아 있었습니다. 알름훌트는 항상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이케아의 심장일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케아의 창업 정신을 상징하는 스몰란드의 낡은 돌담


2018년 사망한 창업자 캄프라드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다면 그는 스몰란드 사람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스몰란드는 알름훌트가 속한 스웨덴 지역의 이름이다. 우리가 영남, 호남, 충청으로 지역을 구분하듯이 스웨덴도 역사적 배경이 같은 몇 개 주를 한 지역으로 묶어 구분한다.


이케아 홍보 자료나 문헌에 따르면, 이케아 전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알름훌트가 아니고 스몰란드다. 이케아 공식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이케아 문화는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뿌리 남부 스웨덴 지역에서 시작되고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가 모범적으로 실천한 열정, 단란함, 그리고 의지력의 문화입니다.”


스몰란드는 추위와 눈으로 자주 고립되고, 바람이 많이 불고, 숲이 많다. 즉 농사짓기에는 아주 척박하다. 농부들은 이런 환경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묵묵하고 열심히 일해야 했다. 겸손, 절약, 근면, 가족애는 스몰란드 농부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덕이었다.


이케아 박물관에서 본 ‘낡은 돌담’ 사진 하나가 기억났다. 낡은 돌담은 스몰란드 정신을 기리는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다. 이케아는 새로운 건물을 세우면 화려한 기념비보다는 스몰란드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담을 건물 앞에 쌓는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의 돌담과 비슷하게 생긴 스몰란드 돌담은 불굴의 정신, 낙관주의, 육체노동 등 이케아 창업 정신을 기리는 상징이다.


이케아 창업 이념을 교육하기 위해 알름훌트에 세운 이케아 틸사망스(IKEA Tillsammans) 건물 앞에도 예외 없이 돌담이 쌓여 있다. 돌담에 붙은 조그만 팻말에는 “돌담은 이케아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이케아 틸사망스의 개정을 기념하기 위해 잉바르 캄프라드가 이 돌을 2010년 8월 25일에 놓았다”라고 쓰여 있다.


뤼디거 융블루트의 '이케아, 불편을 팔다'에서 스몰란드 정신에 대한 캄프라드의 생각을 찾을 수 있다. “이케아의 영혼은 항상 제자리에 있습니다. 스몰란드의 농부처럼 우리의 가치는 현실적입니다. 우리도 달콤한 수확을 위해 고된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합니다.” 캄프라드는 특히 스몰란드 농부의 검소함과 단순한 생활을 강조한다. 이러한 검소한 생활 방식은 이케아 경영 방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효율적인 낭비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케아는 저비용 경영 구조를 지닌 기업으로 유명하다.


스몰란드에 대한 캄프라드의 애정은 기업 이념에서 그치지 않았다. 값싸고 편리하며 기능적인 가구라는 콘셉트 자체가 스몰란드 가구 시장에서 유래했다. 농민들이 주 고객이었기에 캄프라드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스몰란드 농가에 적합한 가구를 만들어야 했다.


기업 핵심 인력도 스몰란드 출신이 많다. 1980년대까지는 회사 경영진 대부분이 스몰란드 출신으로 채워졌다. 캄프라드도 공개적으로 스몰란드 출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오랫동안 후계자로 키운 안데르스 모베리(Anders C. Moberg)도 스몰란드 출신이다.


스몰란드 정신은 캄프라드 개인 철학과 더불어 이케아의 기업 이념과 문화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케아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지금, 앞으로도 이렇게 지역 연고에 의존하여 기업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캄프라드가 후계자로 지목했던 모배르도 1999년 결국 이케아를 떠나 경쟁사인 홈디포로 자리를 옮겼다.




이케아 틸사망스, 기업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다


이케아는 유난히 지역 마케팅을 많이 하는 기업이다. 이케아가 창업한 도시 알름훌트, 그 도시가 속한 스몰란드 지역이 이케아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웨덴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케아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기업이 아닌가? 예상대로 이케아는 스웨덴 역시 자신의 자산으로 인식한다. 이케아는 스웨덴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림 같은 어촌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진 숲까지, 스웨덴에서 자연은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스웨덴 사회는 개방적이고 혁신적이며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웨덴은 뭔가가 다릅니다.”


이케아와 스웨덴의 공통점은 이케아 기업 문화와 전략 등 여러 요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케아 가구 스타일부터가 스웨덴의 실용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인구가 적고 자연환경이 척박한 스웨덴 농촌에서 집은 삶과 인간의 중심이다.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인지 스웨덴 사람은 밝고 친근한 느낌의 재료와 바른 모습을 좋아한다. 가구와 기타 주택 설비에서도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순함과 편리함을 선호한다.


스웨덴과 이케아가 잘 맞지 않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는 스웨덴을 새로운 경제 성장 모델로 부러워한다. 잘 알려진 대로 스웨덴은 평등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사회복지 국가다. 이케아도 이런 스웨덴 사회의 정서를 인식해서 ‘민주주의 마케팅’을 특히 강조한다. 스스로 평범한 사람을 위해서 평범한 사람이 제조하는 기업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케아는 냉혹하게 이윤을 추구하고 혁신을 생활화한 대표적인 자본주의 기업이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이케아가 보여주는 철저한 기업가 정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스웨덴을 사회복지 모델 국가로 간주하는 사람은 스웨덴 자본주의의 단면만을 보았을 뿐이다. 스웨덴은 복지를 통해 개인을 지원하지만, 시장에서의 개인 간 경쟁에 개입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금한다. 즉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비용을 지출하는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자유를 보장한다. 경제 자유도가 높은 스웨덴에서는 기업을 설립하기 쉽고 무역이 자유로우며, 재산권이 보장되고 고용시장이 유연하다.


스웨덴의 창업 시장도 활발하다. 새로운 기업이 끝없이 나타나 기존 기업과 경쟁을 벌이고 시장을 개척한다. 스웨덴은 기업가 정신이 아주 강한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독특한 창업 교육 시스템이다. 스웨덴 창업 교육은 학생이 ‘흥미로운 것’을 시작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목표다.


스웨덴 창업 교육 정신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스톡홀름 기업가정신 대학이다. 스톡홀름 대학, 스톡홀름 상과대학, 카롤린스카연구소, 왕립 공과대학, 콘스트팍 대학 등 5개 대학이 1999년에 설립됐다. 스톡홀름 기업가정신 대학 창업 교육 과정은 학부, 석사, 박사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과목을 선택한다. 필수과목은 교과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다른 대학의 프로그램과 달리 학제 간 교육을 지향한다. 경영, 엔지니어링, 법, 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이 창업 교육을 받는다. 스웨덴의 창업 교육은 중등학교 단계에서도 시행된다. 지역 리그를 거쳐 탑 리그에서 경쟁하는 창업 대회가 운영된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이 창업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업가 정신을 성장과 복지의 다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현재 집권 정당인 우파연합(The Alliances)은 중도보수 정당으로 기업가 정신을 화두로 정체성을 확립한다. 진보 정당인 노동당도 일자리, 혁신, 복지 슬로건을 내세우며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동당 역시 복지는 일자리 창출에서 이루어지고, 혁신적인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창업 교육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사례로는 1985년에 시작된 니포르타갈센트럼(Nyforetagar Centrum)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체 이름을 우리말로 풀면 ‘신新기업인센터’이다. 현재 약 175개 지역에 지부를 운영하고 5000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는다. 센터는 지금까지 약 1만여 개 기업의 창업을 지원했다. 지원받은 기업의 3년 후 파산 비율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 또한 전체 창업 기업의 3년 후 파산 비율이 고작 3~4퍼센트인 것을 참작할 때, 교육·컨설팅 효과가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알름훌트에도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는 기관이 있다. 이케아 본사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기업 문화를 교육하는 이케아 틸사망스이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은 이케아가 창업 교육을 한다는 말이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케아의 모든 매장은 하나의 독립된 사업체다. 본사는 공식적으로 각 매장이 창업하는 자세로 영업에 임하기를 요구한다. 경영학에서는 기존 기업이 내부 창업을 장려하는 문화를 ‘기업 기업가 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이라고 부른다. 많은 경영학자가 이케아를 기업 기업가 정신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평가한다. 이케아도 모국 스웨덴과 같이 평등주의와 기업가 정신의 조화를 실현한다.



시골 마을의 비밀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곧 알름훌트를 떠날 시간이다. 역에서 바라본 알름훌트 도심은 전날 도착해서 본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방문한 도시 중 알름훌트만큼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기 쉬운 곳은 없다. 이케아가 스스로 자신의 고향을 ‘가난한 농부의 실용주의’로 설명했듯, 알름훌트는 검소하고 단순하며 근면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도시 문화와 기업의 관계도 알름훌트와 이케아만큼 명확한 곳을 찾기 어렵다. 알름훌트의 실용주의 문화가 이케아의 편리하고 간편한 가구를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케아와 알름훌트의 관계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는 항상 비밀이 많다는데, 알름훌트도 비밀이 많은 곳 같다. 어쩌면 이케아 비밀을 폭로한 요한 스테네보(Johan Stenebo)의 책 때문일까? 스테네보는 이케아에서 20년 동안 재직했고, 그중 3년은 캄프라드 보좌관을 역임하다가 2009년에 회사를 떠났다.


스테네보는 이케아를 사교 집단으로 묘사했다. 교주는 캄프라드, 사교 집단의 핵심 세력은 스몰란드 출신 직원, 교회의 본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알름훌트. 이케아 직원은 모두 캄프라드를 잉바르라고 불러야 했다. 실수로 그를 캄프라드라고 부르면 권위적인 조직 문화는 이를 불경죄로 간주했다.


스테네보는 이케아에 영향을 준 스몰란드와 알름훌트의 문화에 대해서도 가혹하게 평가한다. 캄프라드가 절약과 절제를 강조하는 스몰란드 문화를 자신의 부를 숨기고 직원의 임금을 억제하는 데 악용한다는 것이다. “창업자인 캄프라드도 저렇게 검소하고 평범하게 사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있나?”라는 인식을 불어넣는 것이다. 스테네보에 따르면 본사를 알름훌트에 유지하는 의도도 순수하다고 보기 어렵다. 본사를 의도적으로 허름하게 만들고 유지함으로써 비용 절감 문화를 내재화한다는 것이다. 보통사람을 위한 기업을 지향하는 이케아에게 보통사람이 사는 알름훌트는 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스테네보의 경고 중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케아가 가진 구조적 한계다. 캄프라드는 복잡한 지배 구조를 통해 이케아를 가족 기업으로 유지했다. 스테네보가 설명한 이케아의 지배 구조는 수많은 기업과 재단이 얽혀 있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다. 지배 구조가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아무도 누가 이케아를 지배하고 소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캄프라드의 재산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 스테네보는 이케아의 복잡한 지배 구조에서 분명한 것 하나는, 소비자가 이케아 상품에 지급하는 가격의 3퍼센트는 자동으로 캄프라드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스테네보의 비판을 모두 받아들여야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이케아 같은 거대 기업이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의심스러울 수 있다. 덧붙여 이케아나 캄프라드가 모든 사람이 비난할 만한 대형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나는 알름훌트에서 보고 싶었던 기업과 도시 문화의 조화를 찾았고, 동시에 기업과 도시 문화의 접목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도 나는 이케아의 친구로 알름훌트를 떠났다. 작은 도시의 기업으로서 자신의 독특한 지역 문화에 자부심을 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이케아를 계속 응원하고 싶다.


지역 문화에 기반을 둔 뿌리 경영을 통해 세계 최대의 가구 기업으로 거듭난 이케아의 사례가 기업과 도시에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지금 기술개발, 인재양성, 해외진출, 인문경영 등 차별적 경쟁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런 기업에게 지역 문화를 통해 기업 이념을 구체화하고 비즈니스 모델의 일체성을 고수하는 이케아식 뿌리 경영은 새로운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 한국 기업도 이제 뿌리 경영을 통해 다른 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제품과 문화를 창출하고, 이를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무기로 활용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케아 사례는 지역 도시에게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농업 지역인 스몰란드가 글로벌 대기업을 키울 수 있다면, 산업 인프라나 중심 지역과의 연계 등 그보다 우수한 환경을 가진 한국의 지역 도시는 더 많은 지역 산업을 개척해야 하지 않는가. 굳이 지역 도시에 필요한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선명한 지역 정체성일 것이다. 스몰란드의 성공이 보여주듯이 정체성이 뚜렷한 지역 도시만이 뿌리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작은 도시 큰 기업, 2014; 라이프스타일 도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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