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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pr 26. 2020

커피 기업 스타벅스의 탄생지는 커피 도시 시애틀

새로운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늘 기대를 품는 매장이 있다. 바로 스타벅스다. 요즘은 스타벅스의 희소성이 예전 같지 않아 어지간한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는 스타벅스가 자신이 사는 도시의 품격을 상징한다. 과연 자신이 사는 곳에 스타벅스 매장이 들어서길 희망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까?


스타벅스에 처음 가본 때는 1980년대 말, 시애틀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스타벅스처럼 에스프레소 커피를 파는 커피숍은 흔하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난생처음 가본 스타벅스 매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산뜻한 향과 맛, 바리스타와 손님이 친밀하게 나누는 대화, 실용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가구와 실내장식. 마치 딴 세상에라도 온 듯 우아하고 고즈넉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게 아닌가.


그 이후로 어디를 가든 스타벅스가 있기를 기대했다. 커피의 불모지인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사했던 1991년, 나는 늘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스타벅스가 없었다. 다행히 몇 년 지나지 않아 오스틴에도 스타벅스가 생겼다. 처음에는 공항에서 간이 매장을 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지에 제대로 된 스타벅스 매장을 열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스타벅스의 오스틴 상륙을 열렬히 환영했다. 마치 그제야 오스틴이 문명의 영향권에 진입한 것처럼 느꼈을 정도다.


1996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때부터 다시 스타벅스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당시 서울에는 카페가 많았다. 카페에서는 낮에는 차와 다과를, 저녁에는 간단한 술을 팔았다. 1997년 일산으로 이사했을 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풍동에 있는 한 카페를 자주 찾았다. 주인은 일산에서 여러 개의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 전문점을 시작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0.1퍼센트만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미 다들 알다시피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1999년 7월 27일, 우리나라에도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한국의 스타벅스 1호점은 이대 앞이다. 번화가에 있는 3층짜리 매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아쉬운 점은 ‘The First Starbucks Store in Korea(스타벅스 한국 1호점)’이라고 적힌 작은 동판을 제외하면, 국내 커피 전문점 문화의 선봉이었던 이 역사적인 매장의 특별함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커피 체인은 신제품을 1호점에서 제일 먼저 선보이는 등 1호점을 우선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타벅스 1호점은 여느 스타벅스 지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일까?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매장 운영 방식을 고수하고 동일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벅스의 경영 방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제 한국에서도 스타벅스 간판이 1000개가 넘어섰다. 스타벅스는 2019년 2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하며 커피 업계 1위를 고수한다.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커피맛에 눈뜬 한국은 2019년 16만 톤의 원두를 수입하는 세계 3위의 커피 시장으로 성장했다.



스타벅스의 시작을 찾아서


우리는 왜 그렇게 스타벅스를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스타벅스를 즐기고 좋아하는 진정한 이유는 스타벅스가 파는 커피 문화, 아니 스타벅스 문화에 있다. 우리는 스타벅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체험을 좋아한다. 일단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가 보라. 따뜻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고단한 일과와 도시의 복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편안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전부일까? 아니다.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그 이상을 기대하고 체험한다. 사실 스타벅스가 대변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성공한 도시인이 모이는 장소’이다. 우리는 스타벅스를 애용함으로써 자신이 도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며, 또 그만큼 성공한 사람이라고 확인받고 싶어 한다.


스타벅스와 수많은 거래를 해오는 사이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타벅스를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스타벅스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도 바로 그 유대관계다.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저서 '온워드'에서 “스타벅스 브랜드는 그 규모와 무관해야 한다. 유대감을 책임질 수 있는 공간, 커피 한잔에 영혼을 담는 공간으로 정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에 특유의 정서와 의미를 불어넣어 그 의미를 재탄생시켜야 한다. 상품에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스타벅스의 정신을 강조했다. 즉 영혼에 감동을 주고, 사람과 사람이 감정을 주고받으며 유대관계를 맺도록 돕는 것이 스타벅스의 정신이다.


스타벅스의 탄생은 지극히 평범했다. 특별히 감동적인 일화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없었다. 1971년, 스타벅스 창업자들은 단순히 미국 버클리의 유명한 커피 원두 판매 상점인 피츠커피앤드티(Peets’ Coffee & Tee)같은 가게를 시애틀에서 열고자 했을 뿐이다. 익히 알려졌듯 스타벅스의 역사는 스타벅스에 주방기기를 납품하던 하워드 슐츠가 1981년 스타벅스의 마케팅 책임자로 입사하면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커피 문화를 좋아했던 슐츠는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었다. 그러나 창업자들은 스타벅스가 계속 커피 원두를 매하는 가게로 남기를 원했다. 결국 슐츠는 스타벅스를 나왔고, 곧 밀라노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영감을 얻어 일지오날레(Il Giornale)라는 커피 바를 창업했다. 일지오날레의 원두는 스타벅스가 제공했다.


스타벅스와 슐츠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커피 바 사업에 성공한 슐츠는 1987년 스타벅스 인수에 성공했고, 드디어 자신의 철학을 스타벅스 브랜드로 실현했다. 그의 스타벅스는 1991년 캘리포니아에 진출했고, 1992년 나스닥 상장과 함께 급격히 성장했다. 결국 스타벅스는 미국 전역에 세워졌고,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수출되었다.




내가 2013년 찾은 스타벅스 본사는 예상과 달리 시애틀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부두에 있었다. 스타벅스 본사는 과거 미국 종합유통업체인 시어스로벅앤드컴퍼니(Sears, Roebuck and Company)의 창고로 쓰이던 건물로, 지금도 건물 안에는 오피스디포와 시어스 상점이 입주해 있다. 본사 건물 앞에 주차장이 넓게 자리 잡은 탓인지, 스타벅스 센터는 미국에서 흔히 보는 도로변의 스트립 몰(Strip Mall, 번화가에 상점과 식당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곳)처럼 보였다. 건물 꼭대기에 있는 로고를 보지 못했다면 스타벅스 본사인 줄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나는 스타벅스 센터 입구에 있는 매장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면서 점원에게 물었다. “이곳이 본사니, 다른 지점에서는 살 수 없는 특별한 상품이 있나요?” 점원은 이런 질문은 처음 받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내가 본점과 본사에 지나친 의미를 둔 것 같아 계면쩍었다.


본사 내부는 사무실이다. 정문 입구의 조그만 홀에는 스타벅스 본사임을 알리는 사인이나 장식물이 전혀 없다. 본사 건물에서 방문객이 가볼 만한 곳은 딱 두 곳이다. 하나는 3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다. 스타벅스 직원들에게 양질의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관광객도 이용할 수 있다. 카페테리아 옆 복도에는 본사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이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8층에 올라가면 조그만 기념품 상점이 있다. 규모는 작아도 가방, 셔츠, 문구류, 인형 등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스타벅스 기념품이 많아서 제법 둘러볼 만하다. 돌아갈 때 부담이 될 것 같아 부피 있는 물건은 집지 않았고, 하워드 슐츠가 쓴 책을 두 권 샀다. 한 남자 직원에게 스타벅스에 대한 이모저모를 물어봤다. 그는 내가 멀리서 온 것을 알고선 스타벅스 명함집을 선물해줬다. 나는 지금도 이 명함집을 들고 다닌다.


기념품 상점 앞의 대기실 중앙에는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한 소파가 있다. 벽에는 스타벅스 역사를 설명하는 글과 그림이 붙어 있다. 스타벅스 정도의 회사라면 그럴듯한 기업 역사관이 있을 법한데도, 방문객 대기실 벽면 정도만 홍보 공간으로 사용하니 조금 의외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이 대기실은 약속 있는 방문객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본사 직원이 나와서 안내하기 전까지 대기하는 장소였다. 스타벅스 본사에 업무가 없는 일반 관광객은 기념품 가게를 나오면 갈 곳이 없다.


2019년 스타벅스 본사를 다시 찾았을 때 상황은 '악화'됐다. 작은 매장과 기념품점이 리저브 로스터리로 통합된 것이다. 최근 스타벅스는 블루보틀, 스텀프타운  커피 등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에 대응하기 위해 매장 포트폴리오를 일반 매장, 리저브 스토어, 콘셉트 스토어, 리저브 로스터리 등 4개 유형으로 확장했다. 그중에서 최고 등급은 커피를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하고 식당과 바를 운영하는 리저브 로스터리다. 전 세계에 몇 개 안 되는 리저브 로스터리를 본사 건물에 오픈한 것은 본사 방문객에게 성의를 표시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과거 기념품점의 셀렉션만은 못해도 리저브 로스터리에서 스타벅스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다. 스타벅스 로스터리 스토어의 오프닝으로 이제 시애틀의 스타벅스 성지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1호점, 캐피탈힐 리저브 로스터리, 본사 리저브 로스터리 등 3곳으로 늘어났다.


소박한 스타벅스 본사를 다녀오면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낀다. 뭔가 특별한 점이 있으리라고 기대한 본사가 너무 평범해서였을까? 그보다는 스타벅스 본사에서 시애틀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나를 시애틀로 이끈 것은 도시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스타벅스를 탄생시킨 시애틀이 궁금했다. 시애틀의 무엇이 스타벅스를 만든 것일까? 시애틀과 스타벅스의 연결고리는 본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다.



여유와 낭만이 스며 있는 유니언 호수


내가 발견한 시애틀과 스타벅스의 연결고리는 바로 커피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가장 카페인을 많이 소비하는 도시다. 하워드 슐츠가 에스프레소 커피를 파는 상점을 개업했을 때, 이미 시애틀은 그 당시 다른 도시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갓 볶은 커피 원두를 많이 소비했다. 스타벅스 외에도 툴리스커피(Tullys Coffee), 시애틀스베스트커피(Seattle’s Best Coffee) 등 많은 커피 체인이 시애틀에서 시작하고 성장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 바도 많다. 그중 카페비타(Caffe Vita), 발라드커피웍스(Ballard Coffee Works) 등은 전문가가 높이 평가하는 커피의 명가다.


시애틀 커피 문화는 미국 커피 문화의 중심지답게 다양하고 풍부하다. 시애틀 시민도 커피 문화에 상당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 커피는 시애틀라이트(Seattleite, 시애틀 지역민을 지칭하는 용어)에게 단순한 음료가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시애틀에서는 날씨와 상관없이 커피 한잔과 책 한 권을 들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애틀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도시이기도 하다. 때로는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이 지루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시애틀라이트는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때론 그들도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돌진하는’ 실리콘밸리의 역동적인 문화를 부러워하지만, 아직은 여유로움을 지키면서 실리콘밸리와 경쟁한다. 시애틀의 여유로움은 스타벅스 매장에 그대로 전이됐다. 우리는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커피와 문화를 통해 시애틀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셈이다.




시애틀 라이프스타일은 날씨와 관계가 깊다. 시애틀은 자타가 인정하는 비의 도시다. 늦가을에서 늦봄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비가 온다. 해도 일찍 지기 때문에 시애틀의 가을과 겨울, 봄은 어둡고 춥고 우울하다. 비는 이미 시애틀 일상의 일부다. 비록 정해진 날은 없지만 해를 거르지 않고 매년 ‘비 축제(Rain Festival)’를 개최한다. 우중충한 기후에서 활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시애틀 주민은 유난히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화와 커피를 좋아한다. 그럼으로써 우울함을 달래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커피, 아웃도어, 안개와 비, 여유와 여가로 대표되는 시애틀 라이프스타일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부터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할리우드가 시애틀을 그냥 둘 리가 없다. 할리우드는 1990년 초반부터 시애틀을 배경으로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시애틀이 배경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이다. 시카고에 살다가 부인을 잃은 주인공 톰 행크스는 아들을 데리고 시애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가 선택한 동네는 유니언 호수, 그의 집은 호수에 떠 있는 낭만적인 보트 하우스다.


유니언 호수의 보트 하우스 지역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관광 안내 책자가 소개한 대로 유니언 호수 북쪽에 있는 가스웍스 공원이 보트 하우스를 구경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다. 안개가 짙게 깔리고 보슬비가 내리는 시애틀의 전형적인 날씨 속에서, 나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보트 하우스를 만났다. 영화의 주인공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장소로 시애틀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현재 시애틀에서 사는 주민의 41퍼센트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중 28퍼센트가량은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이사해 온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도 시애틀은 새로운 삶을 찾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19세기 시애틀은 ‘알래스카의 길목’으로 불렸다. 알래스카로 가는 사람, 그리고 그 너머 아시아로 가는 사람이 거쳐 가는 곳이 바로 시애틀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혁신 문화를 보여주는 산업역사박물관


라이프스타일을 빼고 시애틀과 스타벅스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 못지않게 스타벅스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요소가 있다. 바로 시애틀의 혁신 문화다. 시애틀은 새로운 기업이 성공하는 도시다. 시애틀에서 성공한 기업은 스타벅스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코스트코, 아마존, 어도비 등 세계적인 기업을 다수 배출했다. 새로운 기업이 계속해 출현하고, 또 그 기업들이 크게 성장하는 이유는 시애틀에 새로운 기업을 지원하는 문화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도 시애틀 투자가들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확대했다. 코스트코 창업자인 제프리 브로트먼(Jeffrey Brotman)도 스타벅스의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이다.


시애틀의 혁신 문화는 스타벅스의 기업공개(법정 절차에 따라 주식을 일반 대중에게 분산하고 재무 내용을 공시하는 일) 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워드 슐츠는 저서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에서 같은 도시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보면서 혁신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한때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을 독점한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기기와 SNS 시장에서 낙오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끊임없는 혁신으로 스타벅스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시애틀의 혁신 문화란 무엇일까? 혁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유니언 호수 남쪽에 있는 산업역사박물관(MOHAI: Museum Of History And Industry)이다. 산업역사박물관은 19세기 초의 작은 도시가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하기까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시애틀 기업들의 발전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시애틀 기업의 혁신 전통을 기념하고 교육하기 위해 1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하여 2013년 10월, 박물관 안에 시애틀이 어떻게 창조 도시가 될 수 있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베조스혁신센터가 열렸다. 베조스혁신센터에 입장하면 시애틀의 발명품을 전시한 ‘벽 집(Wall House)’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웃도어 의류업체인 에디바우어가 처음 생산한 다운재킷, 워싱턴 대학 과학자가 만든 네온등과 음파 전기 칫솔, 자전거 폴로 말렛, 레인 글러브 등 시애틀의 여러 발명품이 벽 집 안에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혁신적인 기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 포스터 한 장이 내 관심을 끌었다. 포스터에 따르면 아이디어, 자금 조달, 창업, 건설, 확장, 기업공개 등 6단계를 거친 상품화를 통해 혁신이 이루어진다. 단순히 아이디어와 연구 활동만으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이 포스터에서 혁신의 성공 사례로 소개된 기업은 모두 시애틀 기업이다. 첫 번째 사례는 스타벅스다. 카페에서 커피를 판다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기업공개로 연결되었는지를 설명한 다음, 시애틀 어린이들에게 어떤 회사인지 아느냐고 질문함으로써 아이들이 “스타벅스”라고 대답하도록 유도한다.


'시애틀 과학기술 우주'라는 제목이 달린 포스터도 인상 깊었다. 시애틀이 배출한 수많은 회사의 ‘족보’를 우주 지도로 표현했는데, 그 우주에는 6개의 항성이 자리 잡고 있다. 6개 항성은 마이크로소프트, 워싱턴 대학,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 그래픽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 앨더스, 무선 통신 분야의 선두주자 맥카우커뮤니케이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다. 알다시피 이 항성들은 많은 시애틀 벤처 기업의 모태가 된 기업 또는 기관이다. 항성을 맴도는 행성은 항성 기업에서 파생된 기업이다. 지도를 보니, 중앙에 있는 제일 큰 마이크로소프트 항성이 시애틀 첨단기술 산업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베조스혁신센터의 한 전시관은 비디오 녹화 영상을 틀어준다. 이 영상은 시애틀 혁신을 주도한 기업가와 전문가가 등장해 ‘왜 시애틀이 혁신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한다. 시애틀과 같은 창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도시의 지도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비디오 인터뷰에 참여한 인물 중 제프 베조스의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베조스는 많은 벤처 회사를 배출하는 데 기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이끌려 시애틀에 이주한 많은 인재가 시애틀 혁신 시스템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제프리 브로트먼은 1970년대 보잉의 불황이 시애틀 혁신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보잉에서 해고된 수많은 인재는 새로 창업하거나 시애틀을 떠나야 할 상황을 맞았는데, 이는 오히려 시애틀의 혁신 문화가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주장한다. 비가 많이 오는 시애틀에 사는 사람은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덕분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창조할 수 있었다. 결국 날씨에서 비롯된 반강제적인 여유로움이 시애틀 혁신의 원동력이 됐다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주장이다. 평소 혁신에 필요한 시간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 역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는 시애틀의 개방성도 혁신 문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시애틀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곳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음악가, 이민자 등이 카페, 산책로, 야시장에서 어울리면서 친구가 된다. 서로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시너지가 시애틀이 가진 또 하나의 혁신 자산이다. 산업역사박물관에서 시애틀 혁신 문화의 모든 비밀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혁신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게 된 한 가지 진실이 있다. 혁신에 대해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이다. 베조스혁신센터 입구에는 질문 하나가 걸려 있다. ‘What’s Next’, 즉 다음 혁신 산업은 무엇인가?



문화적 독립 정신이 녹아 있는 대중음악


라이프스타일과 혁신 문화는 시애틀 문화의 표면일지도 모른다. 시애틀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기본 가치와 정신은, 어쩌면 시애틀 문화의 더 깊숙한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시애틀뿐만 아니라, 애초에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한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나는 문화적 독립 정신이 그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시애틀의 문화적 독립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는 바로 대중음악이다.


시애틀의 역사와 혁신을 간직한 산업역사박물관에는 시애틀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가 유난히 많다. 시애틀 출신 음악가와 밴드를 혁신 사례이자 문화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시애틀 시가 시애틀센터(Seattle Center)에 새로 만든 음악체험박물관(EMP: Experience Music Project)도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시애틀 대중문화를 활발하게 홍보한다.


시애틀이 사랑하고 자랑해 마지않는 음악가는 27세에 요절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너바나(Nirvana)다. 많은 음악평론가와 잡지는 지금도 헨드릭스를 역사상 최고 위대한 기타 연주자로 꼽는다. 헨드릭스는 1967년 영국에서 '아 유 익스피리언스드(Are You Experienced)' 를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그 후 연이어 '애식스: 볼드 애즈 러브(Axis: Bold as Love)'와 '일렉트릭 레이디랜드(Electric Ladyland)' 등의 히트 앨범을 발표하면서 음악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활동한 기간은 4년에 불과했다. 1970년 9월, 헨드릭스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사실 시애틀이 그토록 자랑하는 헨드릭스와 시애틀의 관계는 생각보다 깊지 않다. 헨드릭스가 시애틀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란 건 맞지만, 그 당시 시애틀 음악과 음악 시장은 그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의 규모나 특색을 갖추지 못했다. 시애틀이 독립적인 음악 도시로 등장한 때는 1990년대다. 시애틀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디밴드 너바나는 얼터너티브 록을 미국 전역에 대중화시켰으며, 1990년대 초에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1991년 너바나의 두 번째 앨범 '네버마인드(Nevermind)'가 일주일에 40만 장 이상 팔리는 공전의 기록을 세우며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너바나는 얼터너티브 록에서 파생된 음악 장르인 그런지(Grunge) 록 시대를 열며 대중음악의 중심부에 진출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뉴욕의 주요 레코드 회사는 얼터너티브 록의 상업적 가능성을 보자 “민소매 셔츠, 헤진 청바지를 입고 이상한 포즈로 남이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시끄러운 곡을 연주하는” 대안 밴드를 발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인디밴드가 뉴욕 레코드 회사의 초대에 응한 것은 아니다. 음악의 진정성과 저항적인 인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거대 레코드 회사의 손을 뿌리친 인디밴드도 많았다. 너바나가 중요한 이유는 이 밴드가 시애틀 음악의 독립적 전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시애틀은 그전부터 독립 정신이 강한 도시였다. 지리상 고립된 탓에 이전부터 독립적인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 왔다. 어떻게 보면 시애틀에는 애초에 독립 정신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1990년대에 음악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애틀 곳곳에는 시애틀의 음악을 기념하는 장소가 있다. 그중 여행자가 접근하기 쉬운 곳은 헨드릭스 동상이 서 있는 캐피탈힐(Capitol Hill)이다. 캐피탈힐은 1970년대 히피 사업가들이 커피 바, 와인 바, 식당, 부티크 상점을 열면서 발전한 지역이라서 보헤미안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현재는 젊은이들을 위한 오락 및 쇼핑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시애틀의 강한 개성이 녹아 있는 인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존중이 도시의 정체성을 지킨다


시애틀은 분명 독특한 문화를 가진 ‘다른’ 도시다. 우리는 인디음악에서 시애틀의 문화적 독립 정신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그 독립 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역사를 보존하고 이해하려는 시애틀의 노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역사를 잘 보존한 도시로 손꼽힌다. 역사 보존에 대한 시애틀의 의지를 체험하기 제일 좋은 곳은 파이오니어 광장(Pioneer Square)이다. 시애틀은 19세기 파이오니어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무역, 목재, 알래스카 금 채굴 등으로 시애틀은 경제 발전의 호황을 누린다. 당시 서부에는 보기 어려웠던 마천루가 파이오니어 광장에 들어설 정도였다. 광장의 랜드마크인 파이오니어 빌딩(Pioneer Building)은 1889년에 일어난 큰 화재 직후 잿더미 위에 지어진 건물이다. 시애틀 시 정부가 파이오니어 광장에서 역사 자원으로 지정한 건물과 공간은 무려 60개다. 광장 전체가 역사 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거나 다름없으며, 단일 역사 보존 지역으로는 미국에서 제일 크다.


시애틀의 근대 역사가 그대로 보존된 파이오니어 광장은 시애틀이 자랑하는 관광 자원이다. 시 정부는 이 거대한 도보 관광 코스를 3가지로 나누어 운영한다. 또한 관광 상품을 개발해 많은 관광객에게 광장과 시애틀의 역사를 소개한다. 파이오니어 광장에서 도보 관광이 시작되는 장소는 옥시덴탈 공원이다. 파이오니어 광장 보존 운동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시 정부가 도시 재개발을 위해 광장에 새로운 도로와 주차장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시민운동의 노력으로 1970년 파이오니어 광장 전 지역이 역사 보존 지역으로 지정받았다. 현재 볼 수 있는 광장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대부분 1970년 이후 보수 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시애틀이 역사를 관광 자원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1970년대 시애틀의 부흥은 파이오니어 광장에서 시작했다. 파이오니어 광장의 역사적 빌딩이 보수 작업으로 새롭게 변신하자, 고급 식당과 상점이 들어섰다. 광장에 처음부터 많은 가게가 몰린 것은 아니다. 1969년 피츠버그 식당이 파이오니어 빌딩에서 개점한 이후부터 문화 변신이 시작되었다. 한 식당이나 가게가 지역 전체를 바꾸는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조용한 주택지였던 삼청동을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중심지로 바꾼 것은 15년 전 삼청동에 처음 개점한 ‘더 레스토랑’이다.


지금도 파이오니어 광장은 중요한 비즈니스 중심지다. 광장 주변을 걷다 보면 많은 첨단기술 기업의 본사를 발견한다. 시애틀에서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는 컴퓨터 게임 산업의 중심지도 파이오니어 광장이다. 시애틀은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역사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됨을 보여준다. 새로운 문화를 개척한 스타벅스도 예외가 아니다. 스타벅스는 1호점을 시애틀의 역사적 랜드마크인 파이크플레이스마켓(Pike Place Market, 1907년에 문을 열어 매우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에 열었다. 역사적인 지역에 개점한 스타벅스 1호점은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새로운 역사 자원이 되었다.


역사를 중시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애틀의 태도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새로움에 대한 열정과 갈망은 자신이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역사만큼 우리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역사는 우리에게 ‘다름의 정체성’을 제공한다.



보잉의 위기를 ‘창조적 파괴’로 극복하다


내가 이 책을 1970년에 썼다면 책 제목은 ‘시애틀과 보잉’이 되었을 것이다. 1970년대까지 시애틀 경제의 중심은 보잉이었다. 현재 시애틀과 스타벅스가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면, 1970년대에는 시애틀과 보잉이 그랬다. 1960년대 보잉은 인구가 35만 명에 불과한 시애틀에서 10만 명 이상을 고용했다. 대부분의 시애틀 지역민이 보잉에서 일하거나 보잉과 관련된 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큰 불황을 맞은 보잉은 시애틀 직원의 3분의 2를 감원했다. 보잉에서 감원된 사람들은 다행히 다른 도시로 가지 않고 시애틀에 남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시애틀은 도시를 사랑하는 주민의 노력으로 ‘보잉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많은 전문가가 보잉의 위기가 지금의 시애틀을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보잉이 남긴 공백을 문화 산업과 첨단산업으로 성공적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보잉의 위기가 없었다면 시애틀이 지금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도시로 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보잉은 여전히 시애틀에 많은 사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본사는 더 이상 시애틀에 없다. 지난 2001년, 시애틀에서 보낸 85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하고 시카고로 본사를 이전했다. 자신이 자라고 자신을 키운 고향인 시애틀을 떠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처럼 냉혹한 것일까? 그러나 이런 냉혹함이 있어 지금의 시애틀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애틀은 미국 경제학자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성공한 사례다.




스타벅스 탄생과 성장의 배경에는 시애틀이 있다. 스타벅스와 시애틀을 연결하는 매개는 커피 소비다. 스타벅스가 1987년 재창업하기 전에도 시애틀은 이미 커피 소비가 높고 커피 전문점이 많은 도시였다. 스타벅스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세계적인 커피 도시가 세계적인 커피 기업을 배출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어반복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도시 정체성의 중요성을 잊어버린 한국의 지역 혁신가와 창업가가 계속 반복해 말해도 좋은 지역발전의 기본 원칙이다. 도시의 특색은 로컬 소비로 어어져야 의미 있는 로컬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커피 소비만으로는 스타벅스 스타일과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기 어렵다. 시애틀의 라이프스타일도 주목해야 할 변수다. 비와 온도가 대표하는 기후, 중심 지역을 벗어난 도시의 여유로움, 알래스카 개척과 동서양 교류를 주도한 도시의 개방성, 항공산업과 하이테크 산업이 잉태한 혁신 문화 등 시애틀의 자연환경, 역사문화, 지리장소, 공동체를 기반으로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이 에스프레소 카페 기업의 창업과 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과거가 반복된다면 스타벅스도 언젠가는 시애틀을 떠날 수 있다. 그리고 시애틀은 새로운 기업을 만들 것이다. 이 도시는 커피와 여가 문화, 혁신 생태계, 개방성, 인디음악, 역사 정체성으로 다른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었다. 나는 시애틀이 앞으로도 계속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면 보잉 위기 때와 같이 스타벅스 후의 경제도 새로운 산업으로 극복하리라고 믿는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한 기업이, 한 산업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기업, 다음 산업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결국 다음 산업이 무엇인가이다. 시애틀을 떠나며 베조스혁신센터의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다음의 혁신 산업은 무엇인가?






출처: 작은 도시 큰 기업, 2014


1차 수정 20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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